라면만? 떡볶이만? 6000원 가지고 뭘 먹으라고..'보여주기식' 서울시 결식아동 꿈나무카드

김하나 2021. 5. 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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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식아동 이용 가맹점 가보디..짜장면·짬뽕 7000~9000원대, 순두부 찌개·김치찌개 8000원
점주들 "식재료·인건비·임대료 부담에 밥값 낮추기 어려워"..한끼 5만원대 음식, 술 파는 가맹점도
전문가 "꿈나무카드 제휴 식당 수만 늘리는 건 보여주기식 행정..현실적인 물가 반영 돼야"
서울시 "7월부터 한 끼 사용금액 증액 목표..결식아동 이용 적합 매장인지 검증中"
꿈나무카드 가맹점.ⓒ데일리안

서울시가 지난달 30일부터 결식아동들에게 제공하는 '꿈나무카드'를 서울 지역의 모든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결식아동들이 쓸 수 있는 돈은 한 끼에 6000원, 하루 1만2000원이라서 요즘 물가 실정에 비춰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꿈나무카드는 밥을 거를 우려가 있는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식비 지원을 위해 지난 2009년 만들어졌다. 기준중위소득 52% 이하 가구 등 저소득층이거나 보호가 필요한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가 일반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시가 지원하는 카드인데, 서울시와 각 자치구가 절반씩 예산을 부담한다.


현행 서울시 아동 급식 단가는 한 끼에 6000원이지만, 자치구가 추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종로구·서초구는 강남구만 각각 9000원, 8000원이다. 서울시는 7000여곳 수준의 꿈나무 카드 가맹점을 4월 30일부터 20배 가까운 13만여곳으로 늘렸다. 사실상 주점이나 포차, 카페 같은 아동 급식 부적합업소를 빼면 서울 시내 모든 음식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꿈나무카드가 결식 아동들의 영양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이들 대부분이 편의점과 제과점에서 빵, 컵라면, 삼각김밥 등 즉석식품이나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가 지난 3월 내놓은 꿈나무카드 지원 예산 결제액 분석 결과, 결식아동들이 이용한 꿈나무카드 사용 내역 중 75.2%가 편의점·제과점 등 즉석 조리 식품 판매 업종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된 주된 원인은 물가가 오르면서 일반 식당가에서 60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한끼 음식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포구 A 중식점의 짜장면·짬뽕 가격은 7000~9000원대다. 6000원보다 더 싼 음식은 5000원 만두뿐이다. 중구 B 음식점에서 파는 가장 싼 음식, 돈가스도 7000원이고, 서대문구 C 한식점의 순두부 찌개·김치찌개·두부찌개는 8000원, 된장찌개가 7000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식아동이 꿈나무카드 가맹점 식당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사례도 많았다. B 음식점과 C 한식점에는 결식아동이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C 한식점 점주 홍모(66)씨는 "아직까지 결식아동이 온 적은 없었다"며 "우리 매장은 음식 가격이 대부분 7000원대다 보니 결식아동들이 우리 매장을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꿈나무카드 가맹점.ⓒ데일리안

음식점 점주들은 한결같이 아동 급식 단가가 물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 중식점 점주 허모(62)씨는 "현실적으로 라면, 떡볶이 말고 6000원에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별로 없을 것"이라면서 "배달 앱 주문도 상당히 많아 수수료 부담도 있는데, 6000원 밑으로 음식 단가를 맞춰주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B 음식점 점주 안모(47)씨 역시 "계란 한 판에 8000~1만원으로 식재료 단가도 많이 오른 데다가 시간당 최저임금도 1만원이라 인건비가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임대료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음식 가격을 낮출 수 없다"면서 "물가가 비싼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살인적인데 결식아동 급식 단가에는 현실 물가가 전혀 반영되지 않아 단가를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꿈나무카드 가맹점들 가운데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은 곳도 있었다. 영등포구의 D 한식점은 2만9000원~5만5000원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중구에 있는 E 한식점 메뉴 가격은 안심한우 생등심 3만7000원, 양념왕갈비 3만6000원, 점심특선 돼지갈비정식은 1만2000원이었다. 제일 싼 메뉴가 버섯모듬으로 7000원이었다.


심지어 술을 파는 꿈나무카드 가맹점도 있었다. 꿈나무카드 사용처라고 소개된 중구의 F 음식점은 주메뉴가 한치 1만2000원, 육포 1만5000원, 모둠전 2만원 등 대부분 안주 메뉴였다. 식사 메뉴도 있었지만 가격은 최소 6500~7500원 이상이었고, 6000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주류가 유일했다. 해당 꿈나무카드 가맹점에는 결식아동이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전문가들은 보여주기식 행정이 아닌, 아이들이 실질적으로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물가를 반영해 급식 단가를 지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6000원으로 밥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별로 없다"며 "아이들이 6000원으로 한 끼를 때우려고 인스턴트 매장을 돌아다니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결식아동들이 금액을 맞추려고 식당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다"며 "한 끼에 9000원을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금액이 6000원으로 한정돼 결식아동들이 즉석조리식품으로 때우게 된다"며 "한끼 때우는 방식이 아닌,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꿈나무카드 제휴 식당 수만 늘리는 건 보여주기식 정책이 될 수 있다"며 "현실적인 물가가 반영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첫 끼에 6000원 이상 쓰면 다음에는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식품을 먹을 수 밖에 없다"며 "올해 7월부터 한끼 사용 금액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또 "현재 특정카드사와 제휴된 매장은 다 이용할 수 있어 술을 파는 매장과 한 끼가 아주 비싼 매장들도 섞여 있는데, 결식아동들이 이용하기 적합한 매장인지 검증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최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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