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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아동학대 범람 속 맞은 어린이날..부끄러움은 어른들 몫이다

연합뉴스 입력 2021. 05. 0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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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오늘은 아흔아흔번째로 맞은 어린이날이다. 평소의 무관심을 생각한다면 이날 하루만이라도 신록 같은 우리 어린이들을 종일 예찬하기만 해도 부족할 판이다. 하지만 올해 어린이날은 전에 없이 무겁고 착잡한 마음으로 접하게 된다. 코로나19의 와중에 두 번째 찾아온 기념일이어서 어린이들이 마스크를 쓴 채 지내야 하는 게 먼저 마음이 아프다. 예쁜 재잘거림은 차단되고 해맑은 입가의 미소는 가려져서다. 그리고 범람하는 아동폭력과 학대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게 어른 입장에서 미안하다. 최근 들어 아동학대는 그 수위와 빈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 양천구의 '정인이 사망 사건', 경북 구미의 '보람이 사망 사건'은 우리의 가까운 이웃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소름 돋게 전해준다. 공권력이 현관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는 집안 내 폭력은 아동학대의 사각지대로 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CCTV를 설치해 놓은 어린이집에서도 아동학대가 자행되기 일쑤이니 사적공간인 가정 내 폭력은 아동이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가 아니면 고약하고 은밀하게 반복 지속하는 구조다.

인도주의적 입양의 덕목까지 망가뜨린 정인이 학대사망 사건은 양모에게 사형이 구형될 정도로 무자비한 것이었다. 생후 16개월짜리 여자아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속적 폭력은 정인이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입양모 가정에서 지금도 잔혹하게 계속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구미의 보람이는 어땠나. 세살이던 보람이는 보호자가 이사 가버린 텅 빈 빌라에 홀로 내팽개쳐졌다가 굶어 숨졌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어서 아사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는 바람에 숨이 끊겼다는 사실은 패륜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실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본질은 제쳐 두고 미디어가 '진짜 친모' 취재에 열을 올린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DNA 염기서열까지 동원해 99.9% 친자의 의미가 무언인지 팩트체크하는 일은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심각한 아동학대를 개선하려는 실천이 담보되지 않은 공분도 동감은 가지만 왠지 공허하다. 집단적 감정의 표출만으로는 부족하고, 현상을 바꿀 수 있는 조직화한 행동이 이어져야 한다. 최근 일군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아동학대 근절 대책 특별법안 제정'을 국회 앞에서 호소한 것은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입법기관이 굼뜨다면 민간이 재촉하고, 또 압박하고 나서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저출산 국가다. 이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동학대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112 신고 건수는 1만6천여 건으로 전년보다 11.5% 증가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커져 신고가 늘어난 것이라면 고무적이다. 이웃이 신고했다면 더 좋은 신호다. 미국에선 어린이를 집이나 거리에 홀로 두면 이웃들이 여지없이 신고한다. 이런 일을 각박하다고 여기는 우리의 '좋은 게 좋은 거지' 정서는 아동학대 문제에서만큼은 예외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메신저의 활약도 필요하다. 과연 그동안 어느 종교지도자가, 시민단체의 장이, 정치권의 어른이 아동학대 문제에 천착해 공감의 동심원을 넓히는 목소리를 냈는지 도통 기억이 없다. 온 국민이 감독이다시피 한 정치에는 메시지가 넘쳐나고 있으니, 인플루언서들은 눈높이를 어린이 키로 낮춰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챙기고 보듬길 당부한다. 영국의 시인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통찰했다.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은 세속에 오염된 손으로 순수함의 결정체인 어린이들을 때려선 안 된다. 그들에게는 어른들이 오염되기 전의 원형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날 하루만 그들을 상전인 것처럼 받드는 시늉을 하고, 나머지 364일은 무관심과 무신경으로 방치하려면 차라리 100돌을 맞는 내년에 허울뿐인 어린이날을 폐지하는 문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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