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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저주받은 전투기', 뒤늦게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

파리/손진석 특파원 입력 2021. 05. 07. 03:04 수정 2021. 05. 0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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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와 30대 5.3조원 판매 계약, 인도 등 6개국 325대 도입 협상중
美 F-35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리비아전 등 실전서 우수성 입증
인도 정부 도입 기종인 프랑스 라팔 전투기의 비행 모습.

프랑스군의 최신예 전투기 라팔(Rafale)이 최근 들어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2001년 실전 배치된 이후 수출이 신통치 않아 ‘저주받은 전투기’라는 말도 나왔지만 뒤늦게 해외 판매에 탄력이 붙으며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프로그레는 “오랫동안 수출이 부진해 저주받았다는 오명을 갖고 있던 라팔 전투기가 드디어 해외에서 잘 팔리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라팔 수출 현황

이집트 국방부는 지난 3일 라팔 30대를 제작사인 프랑스 다소그룹에서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도입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프랑스 언론들은 총 계약 규모가 39억5000만유로(약 5조340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집트는 2015년 해외 국가로는 라팔을 처음으로 24대 구매했으며, 이번에 두 번째로 사들였다. 앞서 작년 9월 그리스가 라팔을 18대 들이는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인도·인도네시아·크로아티아·아랍에미리트(UAE)·핀란드 등 여섯 나라가 모두 325대의 라팔을 도입하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뉴스채널 BFM이 보도했다.

프랑스의 핵 항공모함 샤를드골호 활주로에 계류중인 라팔 전투기들/AFP 연합뉴스

라팔은 프랑스군의 자존심이 담긴 전투기다. 핵 미사일을 장착하고 반(半)스텔스 상태로 공대공, 공대지 작전을 수행한다. 연료와 무기를 기체 무게의 1.5배까지 실을 수 있어 무기 탑재 능력은 세계 최고로 꼽힌다.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이 ‘유로 파이터’ 전투기를 공동 개발한 것과 달리 프랑스가 독자적인 길을 고집해 내놓은 결과물이었다. 라팔은 ‘돌풍’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라팔은 프랑스의 야심작이었지만 실전 배치된 지 14년이 지난 2015년에야 이집트가 구입하면서 첫 수출이 이뤄졌다. 이집트 외에도 2015~2017년 사이 카타르와 인도가 각 36대를 구입했다. 하지만 2018~2019년에는 수출 소식이 끊겼다. 수출량이 프랑스군에 배치된 192대에 비해 훨씬 적었기 때문에 내수용이라는 비아냥도 받았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지난달 라팔 전투기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터키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그리스는 지난해 라팔 전투기 18대를 구매하는 계약을 맺었다./AP 연합뉴스

라팔 판매가 신통치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국력을 앞세운 미국에 비해 무기 판매 시 열세를 극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당 가격이 적어도 1500억원이 넘기 때문에 미국산 전투기보다 저렴하지도 않았다. 특히 프랑스어를 쓰는 옆나라 벨기에가 2018년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를 들여오는 계약을 맺으면서 상처를 입었다.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장관/AFP 연합뉴스

하지만 작년 9월 그리스와의 판매 계약 체결 이후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한국형 전투기(KF-X)를 공동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도중에 라팔 구입을 논의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라팔이 뒤늦게 인기 몰이를 하는 이유는 우선 실전에 배치해보니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라팔은 리비아 및 아프가니스탄 내전과 사하라사막의 테러 세력 제거에 투입돼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특히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서방국가들이 테러단체 IS(이슬람국가) 제거 작전을 벌일 때 돋보였다고 군사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은 “미군 전투기보다 라팔이 무서웠다”는 IS 포로들의 인터뷰를 보고서로 만들었다.

주변 정세가 민감해 미국산 전투기를 구입할 경우 주변국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나라에서 갈등을 줄이기 위해 라팔을 선택하는 경향도 프랑스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로이터 연합뉴스

프랑스 정부의 전략적인 ‘무기 세일즈’ 노력도 돋보였다. 지난해 그리스 및 이집트가 터키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며 긴장이 고조되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그리스·이집트를 지원하는 외교 전략을 펼쳐 라팔 판매를 성사시켰다. 인도가 중국과의 국경 분쟁을 계기로 전투기 도입을 늘리려고 하자 이 틈도 프랑스가 재빨리 비집고 들어갔다. 2012년부터 5년간 국방장관을 지낸 장이브 르드리앙 외무장관은 외교 무대에서 ‘라팔 판매상’으로 통한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 프랑수와 올랑드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르드리앙은 라팔 판매에 적극적이다./로이터 연합뉴스

예산이 빠듯한 나라들에 프랑스가 후한 판매 조건을 내건 것도 효과를 내고 있다. 이번 이집트와의 30대 판매 계약금 중 85%는 프랑스 정부가 장기로 대출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그리스와 계약할 때는 전체 18대 중 12대를 프랑스군이 쓰던 중고품을 싸게 넘겨 주기로 했다. 일간 르피가로는 “라팔 수출로 프랑스가 우방들과 전략적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라팔 수출은 일자리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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