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신라시대 제사용 구덩이에서 발견된 '펭수'의 정체는?
1500년 전 신라시대의 제사용 구덩이 속에서 발견된 ‘펭수’의 정체는 뭘까?
2019년 11월 경북 경산 소월리의 고신라 농경 유적에서 발견된 사람 얼굴 모양(인면문) 토기는 단숨에 ‘국민 문화재’로 떠올랐다. 최근 인기를 모은 펭수 캐릭터를 닮은 덕분에 ‘펭수 토기’란 별명도 붙었다. 이 토기와 함께 나온 국내 최장의 나뭇가지형 목간 등의 정체를 놓고 지난달 27일 경북대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경북대 인문학술원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이 주최한 이 학술대회에는 한 점의 목간과 한 점의 토기를 놓고 한·중·일 학자들의 관련 논문이 12건이나 쏟아졌다.
펭수 토기의 실체가 어린아이 신의 얼굴이라는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사의 논고 ‘소월리 목간의 종합적 분석’이 우선 눈길을 붙잡았다. 이는 고대 일본의 인면 토기와 경산 등 영남 일대의 전통 풍속, 민간신앙에 대한 고찰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에밀레종’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국보 성덕대왕신종의 어린아이 공양 전설처럼 어린아이를 특별한 신앙의 대상으로 여겼던 고대인의 의식 세계가 투영됐다는 것이다.
이 학예사는 일본의 얼굴형 토기 비교 연구를 통해 논거를 제시한다. 일본에선 인면 묵서 토기 수천여점이 발굴돼 전해지고, 이에 대해 역병신, 용신, 조왕신, 해신 등 다양한 해석들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토기엔 어느 신에게 제사 지낸다는 글귀도 있기 때문에 펭수 토기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실제로 이번 학술대회에서 히라카와 미나미 등 일본인 연구자들은 인면 장식 토기가 고대 일본에서 주술적 성격을 띤 부적 성격을 갖고 있었고, 중국에서 유래한 도교 계통의 영향을 받은 제사용 도구로서 소월리 목간과 맥락이 연결된다는 논고를 내놓아, 이 학예사의 견해를 뒷받침했다.
이 학예사는 경산 지역에 전해지는 ‘전동신’(田童神)이란 토착신을 주목했다. 잘 토라지고 화도 잘 내는 아이 얼굴의 신이어서 성질을 부리면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진다는 구전이 전승돼왔다. 펭수 토기의 삼면 얼굴 표정이 각기 다른 모습, 그러니까 웃음, 성냄, 묵묵함으로 바뀌며 나타나는 것은 이런 아이 신의 심기 변화를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으냐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목간은 용도 폐기되면서 제사용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는 논고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그렇게 보는 이유로는 첫째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목간이 길다는 점, 둘째로 곡식 소출량이 적혀 있다는 점을 들었다.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기풍제 행사에서 의례용 구덩이에 제물을 묻는데, 목간을 함께 넣은 것은 목간에 기록된 예년만큼의 소출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옆에 싸리비처럼 풍성한 나뭇가지 다발을 붙인 것은 많은 소출을 기원하는 상징품으로 봤다. 처음엔 문서로 쓰이다 제례용으로 들어갔다는 해석이 되는 셈이다.
출토 목간과 유구(구덩이)를 해석하면서 얼굴 모양 토기를 용왕신의 상징으로 본 이동주 경북대 인문학술원 교수의 해석도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그는 소월리 유적의 핵심인 목간과 펭수 토기가 나온 구덩이가 골짜기의 지하 물길이 서로 만나는 곳에 자리한다는 점에 착안해 펭수 토기의 뚫린 눈·코·입 얼굴상이 땅의 신을 넘어 물의 신인 용왕신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봤다. 그래서 마을 전체의 풍년을 비는 제의 때 구덩이 위에 설치돼 솟구치는 지하수맥 물을 눈·코·입으로 내뿜는, 일종의 분수 제의 시설로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게 그의 파격적 주장이었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이외에도 펭수 토기 아래서 출토된 국내 최대 목간의 용도를 놓고 설왕설래가 펼쳐졌다. 판독 결과 ‘득’(得), ‘매’(買) 등의 글자가 판독돼 국내 초유의 사적인 토지 매매용 기록이라는 주장(홍승우 경북대 교수)이 나왔고, 이용현 학예사는 목간에 적힌 논밭 가운데 밭에 해당하는 ‘전’(田)은 상전, 하전, 차전 등으로 세밀하게 등급화됐다는 견해를 제기하기도 했다.
발굴 당시부터 독특한 유적과 유물들로 관심을 모았고, 캐면 캘수록 더욱 색다른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소월리 유적의 펭수 토기와 목간의 미스터리는 앞으로도 계속 동아시아 학계의 단골 연구거리가 될 듯하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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