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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90대 노부 숨지게 한 딸.."아버지가 성폭행 시도"

김종서 기자 입력 2021. 05. 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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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 부인하다 법정서 깜짝 진술.."고인 명예 지켜주려 침묵"
1심, 정당방위 참작해 무죄→2심에선 '징역 5년 선고' 반전
© News1 DB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90대 아버지를 폭행해 결국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딸에게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놀랍게도, 재판에 넘겨지기까지 약 8개월간 침묵하던 피고인이 법정에서 던진 "아버지가 나를 성폭행하려 했다"는 진술 한마디가 1심과 2심의 판단을 극명하게 갈랐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19년 5월 1일 오후 2시50분께 대전 대덕구의 한 가정집에서 딸 A씨(52·여)와 아버지 B씨(93)는 함께 낮술을 마시고 만취해 말다툼을 벌였다.

딸인 A씨는 "고령의 어머니가 아직도 아버지를 피해 소일거리를 찾아 집 밖을 전전한다"며 아버지 B씨에 대해 쏘아붙였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정을 꾸리고도 거주가 불분명했던 딸 A씨에게 빈집을 내주기도 한 아버지 B씨였지만, A씨에겐 고마움보다 오랜 세월 쌓인 원망이 더 컸다.

언성을 높이던 둘 사이에 몸싸움까지 벌어지자, 집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선이 끊어진 전화기는 내동댕이쳐져 바닥에 굴렀고, 방 안에 있던 전신거울은 박살나 흩어졌다.

부녀간 싸움은 곧바로 끝났지만, 너무 취한 탓에 주변을 정리할 정신이 없었다. 이후 쓰러지듯 잠든 딸 A씨가 이날 밤 어머니의 통곡소리에 잠에서 깼을 때는 B씨가 피를 흘린 채 바닥에 누워 숨져 있었다.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돼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된 A씨는 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면서 아버지 B씨와 술을 마시던 중 기억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어머니 얘기를 하다 말다툼을 했다", "싸운 사실이 없다"는 등 진술을 조금씩 번복하기도 했다.

그날 두 부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검찰은 B씨 시신에서 골절 등 다수의 상해 흔적이 발견된 점, 사망 추정 시간 및 부검 결과, 집 앞 CCTV 영상 등에 비춰 혐의가 충분히 입증된다고 봤다.

가족들은 딸 A씨의 편을 들고 나섰다. 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했던 A씨의 어머니는 당시 딸인 A씨에게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재판에 넘겨지기까지 약 8개월간 침묵하던 A씨가 법정에서 돌연 아버지 B씨의 성폭행 정황을 털어놓으면서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A씨는 그날 밤 B씨가 자신을 덮치려 했던 상황을 수차례에 걸쳐 점점 구체적으로 떠올렸다.

"고인의 명예를 위해 침묵했다"는 A씨에게 가족들은 황당하다 못해 괘씸하다며 등을 돌렸지만, 1심 재판부는 딸인 A씨의 법정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로는 혐의를 명백히 입증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A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재판부는 딸인 A씨의 진술을 완전히 믿기는 어렵지만, 아버지 B씨가 치매 치료제를 복용해왔고, 사망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172%의 만취상태였던 점, 성폭행 정황에 대한 A씨의 진술과 사건 현장이 어느정도 부합하는 점 등을 참작해 정당방위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경찰 조사를 받기 전 정신과 상담에서 "치매 때문에 그러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나를 억울하게 만든다"는 말을 했다는 기록도 A씨의 진술에 힘을 더했다.

반면, 검찰 항소로 2심을 심리한 대전고법 제3형사부는 지난달 20일 A씨의 성폭행 정당방위 주장을 일축하고, A씨에게 원심을 파기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딸인 A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끝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A씨를 법정 구속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스스로도 술에 취한 자신의 기억력을 의심하고 있고, 수사기관에서부터 1심과 2심에 이르러서까지 진술을 계속 번복하고 있다"며 "아버지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까지 된 상황에서, 가족들과 사이도 좋지 않았던 A씨가 B씨의 명예를 위해 성폭행 사실을 숨기려 했다는 주장을 선뜻 믿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B씨가 당시 옷을 벗고 자신의 치마를 벗겼다고 주장하지만, 혈흔 등 정황상 B씨는 옷을 입고 있었고, A씨는 치마를 입은 상태로 상해를 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의 패륜적 범행을 모면하기 위해 숨진 아버지를 성폭행범으로 몰았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딸인 A씨는 판결에 불복해 즉각 상고했고,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guse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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