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중앙일보

문경 양파밭 폐가에 8만명 몰렸다..90년대생 5인의 기적

한은화 입력 2021. 05. 07. 13:02 수정 2021. 05. 07. 22:31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화수헌'은 어떻게 '핫플'이 됐나
90년대생과 소멸도시의 만남
경북 문경시 산양면 현리에 있는 한옥 카페 화수헌의 모습. 20년간 방치되던 고택을 90년대생 다섯이 되살렸다. [사진 리플레이스]

경북 문경시는 29년 뒤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만든 지방소멸 위험지수로 따지면 지난해 전국 시 단위 지역 중 3위에 올랐다. 상주시(0.24)ㆍ김제시(0.25)ㆍ문경시(0.26) 순이다.

이 지수는 지역의 20~39세 여성 인구수를 65살 이상 고령 인구로 나눈 값으로, 0.5 이하면 30년 뒤 이 지자체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류된다. 이런 지자체가 지난해 전국 105곳, 전국 228개 시군구 중 42%에 달한다.

그런데 인구가 7만1000명인 문경시의 한 카페에 지난해 약 8만명이 방문했다. 방문객들이 다녀간 카페가 있는 곳은 14개 읍면동 중 가장 작은 산양면으로 4000명의 주민이 산다.

산양면에 유명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산 많고 볕 잘 들어 산양(山陽)이름을 가졌고, 양파 농사가 잘된다는 이 동네가 갑자기 떴다. 20년 넘게 방치되던 폐가가 방문객을 끌어당겼다. 폐가였던 고택을 ‘화수헌’(花樹軒)이라는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로 매만져 2018년 문을 열면서다. 카페 운영은 처음이라는 90년대생 다섯명이 만든 성과다.

카페 '화수헌' 주변에는 오래된 집과 양파밭 밖에 없다. 문경에서도 시골로 꼽힌다. 한은화 기자

지난달 22일 화수헌을 찾았다. 화수헌은 산양면 현리에 있다. 대체 이렇게 가다가 뭐가 나오긴 할까 갸우뚱하게 하는, 드넓은 양파밭 옆 마을 입구에 난데없이 있다.

마을에는 40명이 산다. 이런 동네에 지난해 코로나 19 상황에서 8만명이 찾았다. 화수헌에서 만난 박옥란(72ㆍ문경시 거주) 씨는 “여기는 문경에서도 시골 동네인 데다가 양파밭밖에 없어서 올 일이 별로 없는데 오히려 서울 사는 딸들이 집에 오면 놀러 가자고 해서 오다가 오늘 또 놀러 왔다”고 말했다.


1막-고자재로 해체될 뻔한 200년 된 한옥

한옥은 인천 채씨의 집성촌이던 동네 입구에 있다. 1790년에 지어졌으니 올해로 230살이다. 소멸하는 도시에서 사람은 떠나고 공간은 방치된다. 한옥도 수십 년 전 그렇게 됐다. 개인 소유의 집이었지만 집주인은 떠났고, 오가며 살피는 관리인이 있었지만 사람 살지 않는 집의 끝은 뻔했다.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폐가는 동네에서 골칫거리가 됐다. 그러던 차에 이 집을 사겠다는 소위 ‘업자’가 나타났다. 고재상이었다. 집을 해체해 옛 자재를 팔려고 했다. 보다 못한 마을 주민들이 문경시에 SOS를 쳤다. “이러저러하니 관에서 이 집을 좀 매입해주면 안 될까요.”

20년간 방치돼 무너져 내리고 있는 화수헌의 옛 모습. [사진 문경시]
왼쪽 안채는 대수선을 했고, 오른쪽 사랑채는 옛 그대로를 거의 살렸다. [사진 리플레이스]

엄원식 문경시 문화예술과장이 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학예 연구직으로 재직하며 인천 채씨 집성촌에 이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다. 엄 과장은 “현리는 문경의 정체성을 보여줄 고택이 많은 동네였고 민속 마을로 언젠가 지정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고 전했다. 남들에게는 그저 폐가 또는 흉가인 집이 엄 과장에게는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보물로 보였다.

“살던 사람이 떠나고 집이 무너져버리면 역사는 통째로 사라져버리잖아요. 우리나라가 해외보다 가장 취약한 것이 이야기이고, 그 지역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이어가려면 옛 공간이 정말 중요합니다.”

고윤환 문경시장도 이 고택을 살려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그래서 시가 매입해 리모델링했다. 남은 과제는 이 고택을 어떻게 쓸 것인가였다. 여타 다른 지자체처럼 관이 직접 운영하거나 용도를 정해 놓고 대충 맡기지 않았다. 공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찾기로 했다. 2018년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고택 활용을 위한 공모사업을 추진했다.


2막-폐가가 어떻게 핫플이 됐을까
도원우(29), 김이린(31)씨는 90년대생 부부다. 대구가 고향인 도 씨는 대학 재직 중 보험 영업에 뛰어들었고, 부산이 고향인 김 씨는 일본 도쿄 IT 회사에서 일했다. 도 씨는 “일을 꽤 잘했지만 5년 차에 탈진했고, 나이 들어서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됐다”고 말했다. 대학교 캠퍼스 커플이던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결혼 후 할 일, 정착할 곳을 찾고 싶었다.

때마침 두 사람은 경북도에서 소멸하는 지방 도시를 살리기 위해 만든 ‘청년 유턴 일자리 사업(현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 을 알게 됐다. 청년 다섯이 한 팀을 이뤄 경북도에 정착해 사업을 하면 1인당 1000만원의 생활비와 2000만원의 사업비를 1년 간(연장하면 최대 2년) 인당 주는 사업이었다. 부부는 지인을 모아 팀 ‘리플레이스’를 꾸렸고, 경북도에서도 처음 시도하는 사업의 첫 90년대생 사업자가 됐다.

화수헌의 대지면적은 2310㎡에 달해 마당이 널찍하다. 그래서 반려동물과 함께 갈 수 있는 카페로도 소문났다. [사진 리플레이스]

경북도 내 어디든 자리 잡으면 됐다. 리플레이스 팀은 도 내를 6개월간 샅샅이 훑고 다녔다. 번듯한 곳을 찾기엔 자금 여유가 없었다. 폐교, 폐 기차역, 폐가를 둘러봤다. 버려진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다 만난 것이 문경시의 화수헌이었다. 도 대표는 “외지인에게 배타적이었던 다른 곳과 달리 마을 이장님과 문경시가 정말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산양면 현리에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상권은 하나도 없지만, 문제없다고 봤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SNS 홍보에 집중하기로 했다.

카페를 열자고 했지만, 팀에서 해 본 사람은 없었다. 문경시에서 화수헌을 어느 정도 리모델링 했지만, 카페로 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보험 영업맨이었던 도 씨는 공간기획 전문가, 프랜차이즈 카페 사업가 리스트를 뽑아 찾아다녔다. “거절당하면 다른 데 또 부탁하면 된다”며 부딪혔고, 배웠다. 소품을 어떻게 배치하면 되는지, 공간을 어떻게 꾸미면 되는지 알게 됐다.

무엇을 팔지는 리플레이스팀이 연구해 개발했다. 마을의 농산물과 지역 특산물을 직접 가공해 식음료를 만들고, 세세하게 스토리텔링 했다. 문경산 8곡을 방앗간에서 빻아 만든 미숫가루, 문경 동로면의 청정한 오미자밭에서 딴 오미자로 만든 오미자 에이드…. 흔한 재료에 청년의 감각을 입혔다. 도 씨는 “오래 살고 싶어서 그러기 위해 마을과 경제적 상생을 하자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폐가가 될 뻔한 양조장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문경시가 매입했고, 리플레이스가 운영하고 있다.[사진 리플레이스]
1940년대 금융조합사택(적산가옥)이었다가 의상 대여 및 사진 스튜디오로 운영하고 있는 ‘볕드는 산’. [사진 리플레이스]

양파밭 옆 한옥 카페는 입소문을 서서히 탔고, 평일에는 50~100명, 주말에는 최대 800명까지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방문객의 30% 이상이 서울·경기에서 온다. 그 새 직원 수는 다섯에서 13명이 됐다. 늘어난 식구 8명 중 2명은 서울, 6명은 문경 출신이다. 직원 이승환(23) 씨는 “서울의 삶에 메리트가 있을까 생각이 들던 차에 지방에서 일해보고 싶어 내려왔다”고 말했다.

운영하는 공간도 늘었다. 산양면의 옛 양조장을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 ‘산양정행소’, 1940년대 금융조합사택(적산가옥)이었다가 사진 스튜디오로 쓰는 ‘볕드는 산’ 등이다. 모두 방치됐던 문경시의 유휴공간이다.


3막-지자체의 SOS

리플레이스가 문경시에서 자리 잡고 있을 무렵, 숙박서비스업 스타트업인 H2O호스피탈리티의 이웅희 대표는 지자체의 SOS를 여럿 받고 있었다. 이 대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토대로 호텔 운영을 자동화ㆍ무인화하는 플랫폼을 개발해 고정비를 절감하는 서비스로 일본에서 성공했다.

일본 최대 여행업체인 라쿠텐의 ‘라이풀 스테이’(객실 3800개)를 현지에서 위탁 운영하다 그중 폐가나 다름 없던 고택을 숙박시설로 리모델링해 운영하던 것이 국내에 알려졌다. 이 대표는 “지자체에서 관광객용 한옥마을을 만들어놨다가 방치하거나 지방소멸로 골칫덩이가 된 고택을 대신 관리해달라는 요청이 왔지만, 우리가 직접 이를 맡기엔 역부족이라 고민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던 차에 리플레이스를 알게 됐고, 만났고, 최근 인수했다.

'볕드는 산'에서 근대의상을 대여해 입고 촬영한 리플레이스 팀. 리프레이스는 당일치기 문경 여행 프로그램도 만들고 있다.[사진 리플레이스]

두 회사는 지역의 방치된 고택과 한옥마을에 이야기를 입히고, 기술력을 더해 운영해나갈 참이다. 현재 경북 영양군 서석지 일대의 고택과 산촌마을의 초가집여러 동의 공간기획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방의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세련되게 발굴해 이야기를 엮으면 젊은 층이 분명 반응할 거라고 확신한다”며 “리플레이스가 문경을 시작으로 소멸 지역 곳곳에 ‘로컬크리에이터’를 키우고 거점을 만들어 연결해 나가면 소멸하는 지방에도 소생의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수헌의 가능성을 처음 발굴한 엄원식 문경시 문화예술과장은 “지방의 남겨진 공간들의 문제는 너무 심각하고, 빈집 수준을 넘어 빈 마을이 생기는 지경”이라며 “적어도 동네의 기준이 될만한 공간은 살려서 이야기와 문화 정체성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수요와 공급이 잘 만난다면, 소멸 가능성 큰 지역이 위기에서 벗어날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문경=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