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씨 살아있을 때 찾아드렸어야 하는데..죄송합니다"

백수진 기자 2021. 5.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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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실종된 의대생 시신 찾아낸
차종욱 민간구조사와 오투
한강에서 실종된 손정민씨의 시신을 경찰보다 먼저 발견한 차종욱 구조사와 구조견 오투. /독자 제공

어린이날이던 5일, 민간구조사 차종욱(54)씨는 이날도 한강을 찾았다. 지난달 25일 한강에서 실종된 대학생 손정민씨의 친구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서다. 전날인 4일에도 차씨는 맨발로 강물에 들어가 파손된 아이폰을 발견해 경찰에 제출했지만, 안타깝게도 친구의 것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차씨는 “오늘은 자원봉사자 한 분도 도와주셔서 둘이 같이 금속탐지기로 휴대전화를 찾고 있는데 바람이 많이 불고 물까지 차올라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경찰이 할 일을 시민이 나서서 한다”는 비판과 차씨에 대한 응원이 쏟아졌다.

그는 경찰보다 먼저 손씨의 시신을 찾았다. 실종 엿새째였던 지난 30일 오후, 한강에서 떠내려오는 검은 물체를 본 차씨는 구조견 오투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투는 순식간에 약 30m를 헤엄쳐 갔다. 오투가 검은 물체를 뒤집자 실종 당시 손씨가 입고 있던 옷이 드러났다. 차씨는 주저앉았고, 수색 활동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차씨는 “신고를 해야 하는데 너무 떨려서 휴대전화를 들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언론에 얼굴도 공개한 적이 없는데 장례식장에 가니 아버님이 바로 알아보시더라. 울면서 고맙다고 큰절을 올리시는데,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살아있을 때 찾아서 보내드렸어야 하는데….”

차씨는 손씨의 실종 사건을 뉴스로 접하고 지난달 28일부터 한강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마지막으로 휴대전화 신호가 잡힌 다리 너머 강북 지역까지 육상 수색했다. 그는 손씨가 물속에 있을 가능성을 고려했다. 만조로 인해 물길이 다시 역류할 것으로 판단하고 실종 지점 근처에서 수중 수색을 시작했다. 차씨는 “이 근처에서 매일 구조견 훈련을 해서 물때나 물길을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요구조자가 놀라지 않게 조끼에 이름과 구조견임을 알리는 글씨를 새겨넣었다. /차종욱씨 제공

◇ 눈비와도 매일 한강에서 투신자 구하는 훈련

-언제부터 구조견을 키우셨나.

“4년 전부터. 처음엔 한강에 투신한 사람들을 구조하려는 목적이었다. 투신 사건이 발생하면 골든 타임이 5분을 넘지 않는다. 항상 5분 안에 구조한다는 마음으로 훈련했다.”

-수중 구조 훈련은 어떻게 하나.

“야간에 투신 사건이 자주 발생하니까 주로 밤에 훈련한다. 칠흑 같은 밤에 테니스공을 강으로 던지면 오투가 공을 물고 나온다. 수심이 깊고 차가운 강물에서 그렇게 빨리 헤엄치기가 쉽지 않다. 비 오는 날에도, 영하 10도의 추운 날에도 빠지지 않고 매일 훈련했다.”

-영하 10도의 강물에 들어가도 괜찮은가.

“학대 아니냐고, 신고도 많이 당했다. 말리노이즈 견종은 털이 방수 코트 역할을 해서 탈탈 털면 금방 말라버린다.”

-신고를 한다고?

“오투가 크고 무섭게 생겨서 신고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욕하시는 분도 있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하루는 119 구조 차량이 삐뽀삐뽀 울리면서 달려왔다. ‘한강에 늑대가 나타나서 시민을 위협하고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다더라. 훈련보다 그런 선입견이 힘들었다.”

한강 인근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다 얼굴과 몸에 가시에 박힌 오투. /차종욱씨 제공

◇ “단 한 명이라도 돕고싶었다”

올해 네 살인 오투는 35~40kg 정도 되는 큰 개다. 차씨는 “사람을 잘 따르고 활발한 성격이지만, 훈련만 하면 눈빛이 달라질 정도로 집중력이 좋다”고 했다. 고양에서 실종된 발달장애인 장준호씨 사건 때도 차씨는 오투와 함께 한강 인근을 수색했다. “당시엔 영하 13도에 눈까지 내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 방한복을 입고 갔는데도 풀밭의 도깨비바늘 수백 개가 박혀 옷을 버려야 했다.”

-민간구조사들은 경찰의 협조 요청을 받고 출동하나.

“연락이 먼저 오진 않는다. 보통은 실종 뉴스를 보고 찾아가거나, 한강에 수상구조선이 떠 있을 때 실종자 수색을 돕는다.”

-구조 활동에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을 제안한다면?

“현장에서 수색견 한 마리가 열 사람, 스무 사람 이상의 몫을 한다.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수색견을 적극 투입해야 한다.”

-공원 관리 소홀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안 그래도 지난주에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해놨다. 사고 현장 부근에 위험천만한 시설물이 많았다. 배수로 근처에 땅이 푹 꺼지는 부분이 있는데 주변에 경고문 하나 없더라. 깜깜한 밤에 발을 잘못 헛디디면 바로 추락할 수 있다.”

-보수도 없이 열심히 구조 활동을 하는 이유가 있나.

“나이 50 넘게 살았는데, 세상에 기여한 게 하나도 없더라. 그나마 개를 좋아하고 훈련시키는 재주가 있어서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그걸 보고 구조견 이름을 산소라는 뜻의 ‘오투’로 짓고 활동을 시작했다. 단 한 명이라도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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