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소원수리' 홍수에 곤혹스런 군.. 휴대전화는 무죄다 [박수찬의 軍]
휴가 후 코로나19 예방차원서 격리된 군인에 대한 부실급식, 코로나19 과잉 방역, 가혹행위를 비롯한 군 내 부조리들이 익명 제보로 육대전 계정에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지난해 7월부터 전면 허용된 병사 휴대전화 사용이 이같은 추세를 활성화했다는 관측이다.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가 7일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육군의 다수를 차지하는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를 군 당국이 정확히 이해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진 첨부한 ‘디지털 소원수리’ 쏟아져, 휴대전화 ‘불똥’
육대전에 제보가 쏟아지는 것은 모바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병사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SNS로 외부에 알리면, 불특정 다수에 빠르게 퍼진다. 부실한 식단을 담은 사진 1장은 백 마디 말보다 더 강한 전달력을 갖는다.
문제가 공개되면 추가 사례가 더해지고, 여론의 공분이 확산하면 군도 방관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해 일부 지휘관은 보안 등을 이유로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육대전 계정에는 일부 부대에서 격리 장병의 휴대전화 사용을 통제했다는 게시물이 눈에 띤다.
문제가 잇따르자 국방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부승찬 대변인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휴대전화가 열린 병영을 만들어가는 도구이자 장병 개개인의 복지와 기본권을 보장하는 도구가 되도록 지속해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실급식과 과잉방역 대책도 내놨다. 7일 국방부는 △코로나19 예방차원에서 격리된 장병에게 일반 장병과 같은 급식을 제공하고 △노후 격리시설을 수리하며 △훈련병에 대한 인권침해 요소를 없애고 △익명이 보장되는 휴대전화 앱 기반 신고 채널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같은 방침이 일선 부대에서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일선 간부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육대전 계정에는 배식 논란이 터진 한 부대에서 “간부들이 ‘이런 거를 제보하면 너희만 힘들어진다’고 한다”는 말이 올라와 있다.
기자가 육군 병사로 복무했던 2000년대 초 부대 간부들에게 들었던 말과 똑같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제보한 사람을 탓하는 인식에는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리더십이 MZ 세대 병사들에게 통할까. 디지털에 익숙한 MZ 세대는 모바일을 주로 사용한다. 사람과의 대면보다는 문자나 채팅 등 비대면 소통을 선호한다. 불공정과 불합리에 민감하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적극적이다.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소통방식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 메시지에 익숙한 MZ 세대 병사들에게 국방헬프콜이나 병영생활상담관 상담, 지휘관 보고 등의 기존 방법은 한계가 있다.
참모총장부터 대대장에 이르기까지 MZ 세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인식을 전환, 적절한 소통방식을 찾는 것이 급선무인 이유다.
◆자정능력 상실했나…갈등 폭발 우려도
조직 내 문제가 외부로 노출되는 일이 많은 것은 그 조직의 자정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병사들의 SNS폭로에 직면한 육군도 마찬가지다.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면 병사들이 SNS에 폭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담없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수평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MZ 세대는 상명하복으로 대표되는 수직적 사고의 전형인 군 조직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문제를 제기해도 이를 군 조직과 간부들이 신속하게 해소하지 못하고, 인식의 변화도 없다면 병사들은 SNS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군 소식통은 “영관 장교들은 ‘위관급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위관 장교들은 영관급을 ‘꼰대’라고 보는 시각이 과거보다 늘었다”며 소통 부족에 따른 계급별, 세대별 갈등 악화를 우려했다.
일부 육군 주임원사가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에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을 제소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육군의 수장인 참모총장이 부하들로부터 인권위에 제소당한 것은 전례가 없다.
남 총장은 이 무렵 주임원사들과 가진 화상회의에서 “나이 어린 장교가 나이 많은 부사관에게 반말로 명령을 지시했을 때 왜 반말로 하냐고 접근하는 것은 군대 문화에 있어서는 안 된다.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 쓰는 문화, 그것은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언급해 제소를 당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국방부가 휴대전화 앱 기반 신고 채널을 신설해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익명성을 강조해도 군 채널로 신고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군대의 특성과 맞는 수직적 지시와 사고로 성공을 거둔 기성세대와 달리 여러 사람과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거둔 성과에 익숙한 MZ 세대에게 기성세대의 수직적 지시나 사고는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고위간부에 있다. MZ 세대인 병사나 초급 간부들이 ‘내 의견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면서 지휘관의 결정을 받아들이게 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수직직 리더십을 수평적 리더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SNS를 통한 부실급식과 코로나19 과잉방역 폭로는 군의 소통과 융화, 자정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계기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닌 혁신과 인화(人和:여러 사람이 서로 화합함)다. 인화가 이뤄지지 않은 군대는 내부에서 무너진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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