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의 반려배려] 가습기살균제로 죽어간 반려동물들

고은경 입력 2021. 5. 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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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만 안 썼어도 로키는 지금 내 옆에 있을 텐데, 나 때문에 죽은 것 같아요."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반려동물을 떠나 보낸 한 반려인이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가습기살균제로 몸 상태가 나빠진 반려동물을 병원에 데려갔더니 원인을 찾지 못하고 가습기를 쐬어 주라는 수의사의 요구에 가습기를 더 틀어준 경우도 있었다.

당시에는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2011년 사건이 공론화된 후에야 반려동물을 떠나 보낸 반려인으로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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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가습기살균제 사용 후 저산소증,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반려견 '행운이'. 사참위 제공
"가습기살균제만 안 썼어도 로키는 지금 내 옆에 있을 텐데, 나 때문에 죽은 것 같아요."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반려동물을 떠나 보낸 한 반려인이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얼마 전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은 반려인들의 인터뷰를 모은 사례집과 관련 영상을 공개했다.

반려인들은 한결같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차라리 조금만 덜 부지런했다면', '괜히 그런 걸 써가지고'라고 한숨 지으며 가습기살균제를 '열심히' 쓴 자신을 자책했다. 가습기살균제로 몸 상태가 나빠진 반려동물을 병원에 데려갔더니 원인을 찾지 못하고 가습기를 쐬어 주라는 수의사의 요구에 가습기를 더 틀어준 경우도 있었다.

사참위가 배포한 가습기실균제 반려동물 피해 기록 '끝에서 시작하다, 미안해 우리가 바꿀께' 표지. 사참위 제공

죄책감과 가해의식이 더해지며 이들은 반려동물의 실종이나 죽음으로 상실감, 슬픔, 우울감, 절망감 등을 느끼는 현상인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펫로스)을 지금도 심하게 겪고 있다. 반려동물의 죽음과 가습기살균제의 연관성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그만큼 억울함도 컸다. 하지만 이들을 억누르는 게 또 있다. '아직 사람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데', '동물보단 사람이 먼저'라는 주위 시선이다. 자식같이 키운 아이들인데, 동물 피해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치부되는 것에 슬퍼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2011년 4월이 돼서야 산모, 영유아가 폐손상 등으로 사망하거나 폐질환에 걸린 게 밝혀지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가습기살균제가 판매된 지 무려 17년이 지나서였다.

2차 진료기관인 해마루동물병원에 원인 미상의 폐손상을 입은 동물이 내원한 시점은 2006년. 당시에는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2011년 사건이 공론화된 후에야 반려동물을 떠나 보낸 반려인으로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 2006년 원인 미상의 소아 사망이 있었는데 반려동물을 떠나 보낸 사례가 사람의 의료기록과 함께 검토되고, 정부의 역학조사가 빨리 진행됐다면 그 이후의 피해는 막았을지도 모른다.

2019년 사참위에 신고된 반려동물 피해사례는 100마리. 하지만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던 830가구 중 33가구가 반려동물의 건강상 피해를 경험했다는 자료에 기반해 사참위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11년 사이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반려동물은 약 87만 마리에 달하며, 심각한 건강상 피해를 입은 수는 9,800마리로 추정했다. 비록 한계가 많은 추산이라도 건강상 피해를 본 반려동물의 숫자가 결코 적지 않았음은 여러 근거로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가습기살균제 사용 후 폐섬유화, 천식이 확인된 고양이 '구구'. 사참위 제공

반려동물 피해 조사에 참여했던 이들은 피해 입은 반려동물을 보고 '광산 속의 카나리아'를 떠올렸다. 19세기 유럽 광부들은 일산화탄소 등 유해가스에 취약한 카나리아를 데리고 탄광으로 들어갔는데, 새가 울지 않거나 움직임이 둔해지면 바깥으로 신속하게 대피했다고 한다.

1950년대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도 고양이들이 불규칙적 움직임을 보이며 죽어갔는데, 1년 후 주민들에게도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사건이 있었다. 비료회사가 수은 성분을 폐수에 섞어 흘려보낸 게 원인으로, 이는 최악의 공해병 '미나마타병'으로 기록됐다. 카나리아와 고양이처럼 동물들은 인간에게 나타날 수 있는 위기에 대한 징조로 여겨진다.

이처럼 사람과 동물, 환경은 동시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 '사람이 동물보다 먼저'라는 식의 접근보다 동물, 환경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 사례집은 사참위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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