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핵심기술 거저 먹는다"..백신 특허면제 '산 넘어 산'

하윤해 2021. 5. 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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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 백신 특허 면제 방침에 ‘걸림돌’ 속출
‘메신저 리보핵산’ 핵심기술…‘요리책’처럼 공유 ‘우려’
“중국, 생명공학 분야서 미국 우위 침해 가능성”
중국, 백신 자체 생산…그러나 핵심기술 없어
메르켈 총리 “백신 품질 통제 안 되면, 위험 더 커”
화이자 CEO도 “특허 면제로 원료 쟁탈전”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에 중국 국유기업 시노팜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20만 회분이 처음으로 도착했던 지난 2월 15일, 짐바브웨 주재 중국대사관 직원이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국제공항에서 중국 국기를 들고 서 있다.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야심차게 꺼낸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 논의가 난관에 부딪혔다.

먼저, 독일과 유럽연합(EU)이 지식재산권 면제 방침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도 바이든 행정부의 구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여기에다 중국과 러시아가 지식재산권 면제를 틈타 미국의 민감한 생명공학 기술을 도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걸림돌로 떠올랐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9일 미시간주에 위치한 제약회사 화이자의 백신 생산시설을 방문해 백신 보관을 위한 냉동시설 내부를 걷고 있다. AP뉴시스

중국, ‘메신저 리보핵산 기술’ 없어…미국 신기술 침해 우려

많은 기업들과 일부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백신 특허 면제로 인해 중국이 몇 년 간의 기술 격차를 뛰어넘고, 생명공학 분야에서 미국의 우위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최우선 사항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특허 면제가 효력을 발휘하기 이전에 그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미국은 특허 면제가 중국과 러시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제약업계의 한 소식통은 로이터통신에 특허 면제가 중국에 대한 미국의 기술 우위를 침해할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바이든 행정부가 작성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는 보고서에서 세계무역기구(WTO)의 협정들을 통해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으나 그 구체적인 방법은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정부의 기관들 사이에서는 대처 방법론을 놓고 이견이 노출됐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특히 ‘메신저 리보핵산(mRNA·전령RNA)’ 기술이 최대 쟁점이다. 이 기술은 화이자와 모더나가 개발한 백신의 핵심으로, 최근에 개발된 생명공학 기술이다. 이 기술은 백신을 뛰어넘어 코로나19 치료에도 희망을 불어 넣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자체적으로 백신을 개발했으나 메신저 리보핵산 신기술을 사용하지 못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지적했다.

미국 상무장관과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게리 로크는 “이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화이자와 모더나는 오랜 시간을 투입했다”면서 “중국과 러시아, 인도 등은 이 기술에 접근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의 푸싱 제약그룹은 바이오엔테크와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는 잠재적으로 중국이 일부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어 “중국은 의약 산업에 강한 열망을 갖고 있으며 이미 자체적인 메신저 리보핵산 기술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신 제조 과정에서 온도 등 민감한 영업 기밀들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요리책처럼 이 정보들이 공유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미국 정부가 백신 개발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날 경우, 미국이 또 다시 약속을 어긴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지적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AP뉴시스

독일·프랑스 정상들 “미국, 특허보다 수출 규제부터 풀어라”

EU 회원국 정상들은 포르투갈에서 EU 정상회의 이튿날 회의를 가졌다. 유럽 각국의 정상들은 백신 지적재산권 면제보다 미국이 백신과 그 원료에 대한 수출 규제부터 풀 것을 촉구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백신) 특허가 무상으로 주어지고, 그 품질에 대한 통제가 더 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나는 기회보다 위험성이 더 많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허권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백신이 공급될 수 있는 해법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어 “지금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면서 “백신 원료에 대한 자유로운 교환이 있기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럽은 항상 유럽에서 생산된 백신들의 많은 양을 전 세계에 수출해왔다”면서 “이것이 규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가 백신 지재권 면제에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독일이 메신저 리보핵산 기술의 종주국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화이자와 백신을 공동개발한 바이오엔테크와 백신 임상을 진행 중인 제약회사 큐어백이 독일에 있다”고 지적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금, 전 세계에 있는 공장이 가난한 나라들을 위해 백신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특허 문제 때문이 아니다”라며 “(백신 특허 면제 논의는) 잘못된 토론”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러면서 “나는 백신 (완제품)과, 백신 생산을 막고 있는 백신 원료에 대한 수출 금지를 중단한 것을 미국에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우리는 단기적으로 그것(백신 특허 면제)이 특효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부정적인 입장에 동참했다.

독일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엔테크의 독일 마르부르크의 생산시설 내부 모습. 바이오엔테크는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코로나19 백신을 공동 개발했다. AP뉴시스

백신 제약사도 “특허 면제하면 원료 쟁탈전…위험 더 크다”

백신 제조회사들도 미국 정부 입장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7일 직원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그것(특허 면제)은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원료들에 대한 쟁탈전을 촉발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백신 제조 경험이 전혀 없거나 매우 부족한 기업들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원재료를 쫓아다니면서 모든 안전이 위험에 처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불라 CEO는 이어 “백신 지재권 면제는 거대한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이자와 공동으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독일 바이오엔테크도 반기를 들었다. 바이오엔테크는 “특허는 우리의 백신 생산 공급을 제한하는 요소가 아니다”라며 “그것(특허 면제)이 단기적으로나 중기적으로 백신 생산 공급을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오엔테크는 이어 “백신 제조공정을 개발하는 데 10년 이상이 소요됐다”면서 “백신을 복제해 생산하기 위해선 숙련된 인력과 차질 없는 기술 이전 등 특허 면제를 뛰어넘는 여러 요인들이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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