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말 바꾼 오세훈, 서울 '다시' 공사판 될라

김규원 2021. 5. 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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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토건 빚잔치'였던 10년 전.. 기후위기 시대 걸맞은 도시·교통정책 대전환 필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숨진 뒤에 서울시 공무원들이 강행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는 오세훈 시장 취임 뒤에도 그대로 추진된다.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돌아왔다. 2011년, 오 시장은 학생 무상급식에 반대하다 주민투표가 무산되자 스스로 그만뒀다.
오세훈 시장은 1기(2006~2011년) 때 ‘개발’에 힘썼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한강변 정비구역 사업엔 각각 5천억원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3천억원이 들어간 서울시 새 청사를 지으려 등록문화재였던 옛 시청사를 파괴했다. 개발주의 반달리즘(훼손 행위)이었다. 31조원 규모가 예상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2013년 대출이자를 갚지 못해 청산됐다. 1390억원을 쓴 세빛둥둥섬은 부실 공사로 완공 뒤 3년간이나 문을 열지 못했다.
주거정책도 대단지 아파트를 만드는 뉴타운·재개발 사업(683곳)이 중심이었다. 다만 임기 말인 2010년 기존 주거지를 유지하면서 소규모 개발하는 ‘휴먼타운’ 사업을 시도했으나 확산되지 못했다. 그가 추진한 뉴타운·재개발 사업 가운데 394곳(57.7%)은 지지부진했고 후임 박원순 시장 시절에 취소됐다.
오 시장 뒤에 취임한 박원순 전 시장은 도시재생과 친환경 교통, 한강 재자연화 등 ‘보존’을 새로운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도시재생은 주거의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다. 기후위기 시대의 친환경 교통도 승용차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한강 재자연화는 9년 동안 보고서만 두 권을 펴내고 끝나버렸다. 박 전 시장은 주거와 교통, 하천 정책의 방향을 바꿨지만 그 속도는 더뎠다.
2021년, 다시 오세훈 시장에게 서울의 미래를 그릴 권한이 주어졌다. 재개발, 재건축, 용적률, 한강변 높이 제한을 모두 풀겠다는 제안에 집값이 벌써 들썩인다. 하지만 서울과 경쟁하는 세계의 도시들은 오세훈 1기의 개발과 박원순의 보존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섰다. 오히려 기후위기를 맞아 대담한 2030년, 2050년 도시 계획을 내놓고 도전한다. 갈림길에 선 오세훈 시장의 선택, 그 미래를 전망해본다._편집자주

오세훈 서울시장은 4월27일 박원순 전 시장 사후 서울시장 대행 체제에서 강행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 대해 밝혔다. “광화문광장 조성 공사를 진행하되 현재 안을 보완·발전시켜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전체 791억원가량인 이 사업 예산 중 250억원이 투입됐고, 광화문광장을 원상 복구하려면 150억원이 추가로 든다고 오 시장은 밝혔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광장이 공사장이 되는 비합리적이고 소모적인 역사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 3월8일 9개 시민단체의 공개 질의에 당시 오세훈 후보가 답변한 내용을 뒤집은 것이다.

당시 답변에서 오 시장은 “박 전 시장 사후 추진 중인 광화문광장 사업에 반대한다. 새 광화문광장 조성 내용과 방식, 시기에 대해 시민과 시민단체, 시민위원회와 시간을 두고 폭넓게 협의해 새로 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대행 체제에서 어떻게 저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지 취임 즉시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2003년 영국 런던에 도입된 혼잡통행료는 교통혼잡과 대기질을 크게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런던 킹스크로스의 혼잡통행료 표지판. 김규원 선임기자

791억원은 ‘새 발의 피’?

시민단체들은 다음날인 4월28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단 한 차례의 협의도, 의견 청취도 없이 시민 대신 관료의 손을 들어줬다. 2009년 광화문광장에 대한 잘못된 결정이 2021년에도 반복됐다. 오 시장의 잘못된 결정에 책임을 묻고 광화문광장이 지속가능한 광장이 될 때까지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 시장의 결정은 의외였다. 기존 광화문광장은 2009년 1기 오세훈 서울시장 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사방이 차도로 둘러싸인 광화문광장은 개장 직후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비아냥에 직면했다. 또 세종대왕 동상, 플라워카펫, 역사 물길 등 시설물이 너무 많아 광장 노릇을 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당시 오 시장은 이 광화문광장 조성에 477억원을 들였다.

어쩌면 477억원짜리 애초 광화문광장이나 현재 공사 중인 791억원짜리 광화문광장 예산은 오 시장에겐 ‘새 발의 피’일 수도 있다. 2009년 이수정 서울시 의원(민주노동당)이 밝힌 내용을 보면, 2006~2010년 오세훈 시장의 5대 주요 사업에 모두 7조9958억원이 투입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2006년 13조원이던 서울시 부채는 2010년 25조5천억원으로 12조원 이상 급증했다.

이렇듯 오세훈 시장의 1기(2006~2011년)는 토건(토목건축) 빚잔치였다. 주요 사업인 한강 르네상스 사업에 서울시 예산 5488억원, 한강변 정비구역 사업에 5200억원, 세빛둥둥섬에 1390억원이 투입됐다. 디자인서울의 대표 사업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엔 4840억원, 서울시 새 청사엔 2989억원이 들었다.

예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 시장의 사업은 갖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한강 르네상스에 따른 총사업비 31조원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2013년 사업자가 대출이자를 내지 못해 청산됐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사업비가 애초 900억원에서 5배로 불어났다. 문화재인 옛 청사를 일부 부수고 지은 서울시 새 청사는 2013년 도시·건축 전문가들이 선정한 최악의 현대 건축물 1위에 올랐다. 세빛섬은 2011년 부실 공사 등의 이유로 폐쇄됐다가 2014년 다시 문을 열었다.

오세훈 시장 1기는 이명박 시장(2002~2006년) 시절과 함께 통상 ‘신개발주의’ 시대로 평가받는다. 신개발주의는 균형발전이나 생태·역사·문화·복지 등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독재 시절의 개발주의와 비슷한 토건 이념을 말한다. 그나마 전임자인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버스 개혁, 시청 광장 조성 등은 친환경 측면도 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1기 오 시장의 사업은 친환경 측면은커녕 토건, 개발사업으로 점철됐다.

1기 오세훈 시장의 실패는 환경운동에 참여했던 그의 이력에 비춰 더 이해하기 어렵다. 오 시장은 1992년부터 2000년까지 환경운동연합에서 시민상담실장, 법률위원장,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환경위원,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을 지냈다. 그러나 1기 서울시장 시절 그가 보여준 환경정책이나 기후위기 대응 도시정책은 없었다.

혼잡통행료 등 기대에 못 미친 박원순표 정책

2011년 오 시장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다 스스로 물러나자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전 시장이 당선됐다. 박 전 시장은 오 시장과 달리 토건정책을 자제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침 2011년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폭우로 도심 잠김, 우면산 산사태, 늦더위로 인한 대규모 정전 등 기후위기와 관련한 사건이 잇따랐다.

이에 맞춰 2012년 미니 태양광으로 대표되는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2020년까지 원전 3기 이상의 대체 효과를 거뒀다고 서울시는 자평했다. 당시 극심했던 미세먼지 대응에도 나섰다. 2019년엔 서울 도심 녹색교통진흥지역에서 5등급 공해 차량 운행을 금지했다.

그러나 박 시장의 친환경 도시·교통정책이나 기후위기 대응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특히 기후위기와 직결된 교통정책에서 소극적 대응에 그쳤다. 대표적인 게 혼잡통행료 정책이다. 박 전 시장은 2014년 서울시의 도심(한양도성) 혼잡통행료 연구 결과를 보고받았다. 이 보고서는 도심에서 6천~8천원의 혼잡통행료를 부과하면 승용차가 50~60% 줄어든다고 밝혔다.

특히 도심은 2017년 녹색교통진흥지역으로 지정돼 혼잡통행료 부과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2019년엔 시민단체들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맞춰 혼잡통행료를 도입하자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운전자들의 반발을 우려한 박 전 시장은 혼잡통행료 부과를 중장기 과제로 넘겨버렸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은 “혼잡통행료는 교통혼잡과 대기오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박 전 시장은 반대 여론이 두려워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7년 개장한 ‘서울로7017’도 도시 교통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로7017이 지나는 서울역 앞은 도심에서도 차량 통행량이 많은 대로이고 보행 환경이 최악으로 꼽히는 곳이다. 네거리 가운데 두 거리에 건널목이 없고, 서울역 광장도 환승센터 설치로 거의 사라져버렸다. 김은희 도시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서울에서 최악인 서울역 앞 지상의 보행 환경을 보행고가인 7017로 덮어버린 꼴이다. 진정 보행자를 생각했다면 보행고가가 아니라 지상에 건널목을 놓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도입했으나, 자전거 차로를 적절히 공급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종로의 자전거 행사에 나온 시민들. 서울시

개발사업으로 ‘비틀린 한강’도 걱정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 교통수단으로 꼽히는 자전거 정책은 반쪽짜리에 그쳤다. 박 전 시장은 2020년까지 대여소 2228곳에 3만7500대의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보급했다. 그러나 자전거만 공급하고 인프라 구축엔 나서지 않았다. 김진태 자전거문화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려면 자전거 차로가 확보돼야 하고 주차대도 필요하다. 그런 점이 많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종로엔 양방향 도로 중 한 방향에만 자전거 차로가 설치됐다. 청계천로는 차도에 있던 자전거 차로를 인도로 옮겼다.

세계 주요 도시들은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시대에 맞게 도시 교통 정책을 대전환하고 있다. 2020년 3월 프랑스 파리 시장에 재선한 안 이달고는 5천억원을 투자해 파리의 지상 주차장 6만 면을 없애고 자전거 도로 400㎞, 자전거 주차대 10만 개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파리의 모든 도로에 자전거 차로를 설치할 계획이다. 도시를 자동차 중심에서 보행, 자전거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대표 정책인 ‘하천 재자연화’ 정책도 박 전 시장 시대에 멈춰버렸다. 청계천 복원 뒤 한강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환경단체에서 재자연화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박 전 시장은 9년 동안 검토만 하다가 떠났다.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는 “1기 오 시장 시절에 개발사업으로 비틀린 한강을 박 전 시장 때도 개선하지 못했다. 오 시장이 다시 와서 또 한강을 개발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자동차 대신 걷고 자전거 타자”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맞춤형 도시·교통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인용된 파리의 ‘15분 도시’는 어느 지역에서나 걷기로 15분 안에 시민들에게 필요한 시설을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장거리 이동을 줄이고 동네에서 모든 일을 해결하겠다는 정책이다. 우리 도시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는 오 시장이 와서 서울이 다시 공사판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서울이 국내의 다른 도시와 공존할 생각을 해야 한다. 다른 도시를 다 무너뜨리면서 서울도 망쳐서는 안 된다. 이미 서울은 부강하다. 이제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김현우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은 서울도 기후위기에 진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처럼 지방에서 생산한 위험하고 저렴한 에너지를 쓰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비용이 오르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동차 대신 걷고 자전거를 타야 한다.”

참고문헌:

김현우, 오세훈의 명품도시, 2008

변창흠, 신개발주의의 구조적 특성과 유산 극복을 위한 정책 과제-민선 3기와 4기 서울시정을 사례로, 2014

최임광, 정책결정이 정책집행에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청계천복원사업과 한강르네상스사업을 중심으로, 2015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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