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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요청으로 구글 콘텐츠 5만4000개 지웠다

홍성용 입력 2021. 05. 09. 17:51 수정 2021. 05. 0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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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美의 5.7배, 日의 50배
표현의 자유 제한 과도 지적

지난해 우리 정부가 구글에 삭제를 요청한 콘텐츠 개수가 미국보다 5.7배, 일본보다는 50배 넘게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행정기관을 통한 사적 구제 제도가 발달했다는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령들이 외국에 비해 광범위하고 모호하게 적용되는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구글의 2020년 국가별 투명성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작년 한 해 동안 정부가 구글에 5만4330건의 콘텐츠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9482건이나 일본 1070건을 크게 앞지른 수치다. 이들은 구글 검색이나 유튜브, 블로그 등에 올라온 콘텐츠다. 인터넷 정책 관련 비영리 사단법인인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행정기관이 인터넷 정보에 대해서 삭제나 수정 요구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위헌 소지가 많아 유엔의 수정 권고를 받아왔다"며 "범위가 너무 넓고 포괄적이어서 정부 판단에 따라 남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구글에 삭제를 요청한 콘텐츠를 항목별로 보면 개인정보 보호·보안을 위한 삭제 요청이 43.5%로 가장 많았고, 규제 관련 39.2%, 선거법 위반 소지 4.6%, 명예훼손 2.5%, 외설·과도한 노출 2.3% 순이었다.

툭하면 삭제되는 구글 콘텐츠…알고보니 한국정부 입김 탓

구글 투명성 보고서…韓정부, 유튜브 등 5만4천개 삭제요청

美·日 등 선진국 대비 압도적
25%는 없는 콘텐츠까지 요청

외국은 소송으로 피해구제 이용
한국은 행정력 통한 대응 많아
자율규제 영역조차도 법 규제
구글 투명성 보고서는 우리나라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삭제하는 인터넷 콘텐츠 규모가 선진국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한국 정부가 구글에 콘텐츠 삭제를 요청한 건수는 2397건이었다. 주요 7개국(G7)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작게는 3배, 크게는 12배까지 차이가 났다. 개별 요청 건에 포함된 콘텐츠 항목으로 보면 수치는 더욱 폭증한다. 우리 정부가 구글에 삭제를 요청한 콘텐츠 개수는 2020년 한 해에만 5만4330건이었다. 미국(9482건), 일본(1070건), 독일(1941건), 영국(829건), 프랑스(5475건)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주요 사례로 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성매매를 조장하는 것으로 판단한 블로그 6개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북한군 개입설 등 가짜뉴스를 유포 중인 유튜브 영상 100개에 대해 삭제를 요청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동의를 얻지 않은 노골적인 이미지 545건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39개의 명예훼손성 블로그 글 50건의 삭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마저도 35%는 구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65%만 삭제됐다. 콘텐츠를 찾을 수 없다(1만3398건), 콘텐츠가 이미 삭제됐다(1135건),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821건)는 이유로 삭제되지 않은 일도 많다. 그만큼 정부가 삭제 요청을 남발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유독 한국에서만 콘텐츠 삭제 요청이 도드라지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행정기관을 통한 사적구제 관련 제도가 발달해 있기 때문으로 진단했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 2에 규정한 '임시조치'가 대표적이다. 임시조치는 특정 게시글로 자신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해당 게시글을 30일 동안 무조건 차단하도록 돼 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임시조치로 연간 45만건, 일평균 1250건이 넘는 인터넷 게시글이 차단되는데, 대부분 공적 인물이나 업체 대표에 따른 요청"이라고 말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임시조치가 사실상 삭제 기능과 같은데 정치인이나 기업에 대한 비판과 합리적 문제제기조차 과도하게 차단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처럼 소송을 통한 피해구제보다 국가를 통한 절차적 피해구제 수단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제도를 통한 심의에서 '불법정보'나 '유해정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광범위한 것도 문제로 꼽혔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불법정보에 포함되는 항목이 통신시스템 방해, 음란정보, 비방, 공포심 등으로 너무 광범위하고 주관적인 판단의 여지가 크다"며 "혐오표현 등 유해정보도 다른 나라는 포털 등을 통한 자율규제 영역인 데 반해 한국은 행정적, 형벌적 집행의 법적 규제 항목으로 두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정지요청이나 처분이 내려지는 게 일반적"이라고 진단했다. 황 교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등도 우리나라에만 있다. 음란정보라는 기준도 너무 포괄적으로 돼 있어서 '콘돔' 등은 청소년이 알아야 할 정보인데도 음란정보로 분류되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홍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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