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악 내 전세금, 당할 수밖에 없다' 세모녀의 수법

박장군,김판 2021. 5. 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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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전세금, 안녕하십니까] ①빌라 500여채 빨아들인 '모녀 투기단'


세 모녀가 소유한 임대주택에서 전세보증금 미반환 피해가 발생한 빌라 전세입자들은 대부분 전세금 마련이 어려운 주거 취약계층이었다. 생애첫주택이나 신혼부부 특별공급 분양을 기다리면서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신축 빌라 전세를 얻은 경우가 많았다. 두 딸 박현주(가명·32)·박민희(가명·29) 명의로 돼있는 주택의 실제 전세 계약을 전담했던 어머니 김모(56)씨는 전세 계약 종료 의사를 밝힌 세입자들에게 “집이 팔려야 준다”거나 “보증보험을 통해 받아 가라”는 적반하장식 대응을 하기 일쑤였다.

‘갭 투자’ 아닌 ‘무자본 투기’
국민일보가 접촉한 세 모녀 소유 주택 전세 피해자 70여명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들은 대부분 신축 빌라를 노려 전세 계약을 진행했다. 피해자들이 새로 지은 빌라의 건축주와 직접 전세계약을 맺은 후 입주할 시기가 되면 집주인이 김씨의 두 딸로 바뀌어있는 것이다. 대리인이라며 계약일에 등장하는 김씨는 임대차계약서를 새로 쓰자고 요구했다.

신축빌라의 경우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가 매우 적거나 비슷해 기존 전세를 이어 받는다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주택을 소유할 수 있다.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액을 부담하고 주택을 소유하는 ‘갭 투자’를 넘어 자기 자본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주택을 사는 ‘무자본 전세 투기’까지 가능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김씨 세 모녀가 수백 채가 넘는 빌라의 전세 투기에 나선 배경에 건축주와 공인중개사가 연관돼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피해자는 “(건축주가) 김씨 세 모녀와 같은 임대사업자에게 넘겨 빌라를 처분하고, 김씨는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 반환 대신 소유권을 떠넘기는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피해자 이모(31)씨는 “부동산에서 ‘빌라 건축주가 서울 강서, 부천 쪽에 자본이 많은 사람이라 건물이 문제된 적이 없다’고 말해서 그 말을 믿고 전세 계약했다”며 “임차인 입장에서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신뢰감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제가 된 매물을 다수 중개한 서울 구로·양천구의 공인중개사 사무실 3곳도 보증금 반환 사고가 터지자 자취를 감췄다. 이 중 2곳의 사무실에서 계약한 피해자가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봉동 빌라 피해자 김모씨는 “개봉역에 있던 부동산과 계약했는데 1년 만에 도망갔다”며 “주변 공인중개사들에게 수소문해보니 ‘사기꾼한테 걸려들었다’고 하더라”며 씁쓸해 했다.

엉뚱한 ‘임대차 3법’ 들먹여
어머니 김씨는 최근 시행된 ‘임대차 3법’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며 세입자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인천 계양구 신축빌라에 전세로 살던 최주연(가명)씨는 계약을 갱신하려고 김씨에게 연락했다가 ‘전세금을 5% 올려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전세금을 5% 올리면 빌라의 매매가를 넘기게 돼 최씨는 “매매가보다 높게 전세금을 줄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그랬더니 김씨는 대뜸 임대차 3법을 들먹였다. “전세금 5% 인상이 안되면 이사 나가는 게 임대차 3법입니다”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김씨가 언급한 ‘임대차 3법’은 ‘전월세 5%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을 의미한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세입자가 전세 계약을 한 차례 연장할 경우 집주인은 5% 이내로 보증금을 인상할 수 있다. 5% 이내로 인상하는 경우에도 합의를 통해 인상률을 정하고, 갱신 청구가 우선이다. 그런데 김씨는 이 규정을 근거로 ‘무조건 5% 인상’을 고집했다. 빌라 세입자였던 이영민(가명)씨는 “김씨가 법을 거론하면서 임대 사업에 능통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줬다”고 떠올렸다.

김씨는 전세 계약 만기가 다가오면 ‘전세금 5% 인상’을 꺼내지만 이는 계약을 해지하려는 핑계에 불과했다. 전세가율이 높은 신축 빌라에서 전세 보증금을 5% 올려줄 세입자는 거의 없었다. 결국 다른 전셋집을 구할 수밖에 없는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면 김씨는 돌변했다. 세입자에게 ‘임대사업자 등록을 승계 받아 직접 (주택을) 구매할 의사가 있냐’고 묻는 식이었다.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으니 집을 처분해야 하는데 세입자가 넘겨 받으라는 의미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세입자를 오히려 나무라기도 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이모(60)씨는 “집 주인이 오히려 ‘보증보험 같은 것도 들지 않고 뭐 했냐’고 따졌다”고 말했다. 이씨가 항의하자 ‘차단하겠다’라는 문자를 보내고 연락을 끊었다. HUG는 보험에 가입된 세입자에게 보험 상품에 가입한 이들을 대상으로 미반환 보증금을 대신 변제해 준다.

“계약 당시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피해자들은 계약 당시 꼼꼼히 따져봤는데도 ‘불량 임대사업자’ 매물에 걸려들 수 밖에 없었던 구조를 원망하고 있다. 생애 첫 전세 계약이어서 신경썼는데도 피해를 막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경우도 많다.

안모(39)씨는 올해 1월 전세 계약을 종료하고 이사를 결정했지만 김씨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김씨는 안씨에게도 임대승계 조건으로 매매를 권했다. 거절한 안씨에게 김씨가 ‘전세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문자로 통보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는 일만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이후 김씨의 연락이 끊겼다.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세 모녀의 의사를 확인한 은행은 계약이 종료됐다고 보고 안씨에게 전세금 대출 상환을 요구했다. HUG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안씨는 김씨로부터 돈을 돌려받지 못한 채 대출금을 연체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안씨는 카드와 계좌까지 정지돼 신용불량자가 됐다.

안씨는 결국 변호사를 선임해 지난달 5일 서울남부지검에 김씨의 둘째 딸 박민희(가명)씨를 상대로 고소장을 냈다. 빌라를 경매로 처분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막막하기만 하다. 승소 판결을 받고 빌라를 경매에 넘기기까지 평균 1년은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안씨는 “은행에서 전세 대출을 받으면 전세금 보증을 받을 수 있는 줄 알았다”며 “다시 집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피해자들은 본인이 ‘깡통 전세’ 피해자가 될 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안씨는 계약 당시를 떠올리며 “의심할 만한 게 없었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는 계약 직전 뗀 등기부등본을 보여주며 “집 주인이 빌라 5채 정도를 세주는 평범한 임대사업자”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집주인인 둘째 딸 박민희씨는 이미 245채의 임대주택을 운영할 때였다. 안씨 입장에서는 집주인이 수백 채의 임대주택을 운영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중개사는 “갭 투기꾼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며 안씨를 안심시켰다. 근저당이 모두 말소된 것을 확인했고, 확정일자도 받았고, 전입 신고까지 마쳤다.

지난달 23일 또 한 명의 세입자가 피해자들이 모여있는 메신저 단체대화방에 들어왔다. 서울 관악구 빌라에 사는 그는 “(세 모녀에게) 전세 사기를 당했어요. 이사 계획이 없어 묵시적(갱신)으로 진행하다 대출 연장 이틀 전에 사기 당한 걸 알게 됐어요. 많이 당황스러워요”라고 하소연했다. 피해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불어나는 상황이다.

박장군 김판 기자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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