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선호씨 부친 "직원들, 숨 끊어져가던 아들 중계하듯 보고"

류원혜 기자 2021. 5. 1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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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제공)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철판에 깔려 숨진 대학생 고(故) 이선호씨(23)의 아버지가 아들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회사 측의 사과를 요구했다. 유족들은 사고 이후 19일째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선호씨는 군 전역 후 용돈을 벌기 위해 아버지가 일하는 컨테이너 검역소 하청업체에서 1년 넘게 아르바이트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지난달 22일 FRC(날개를 접었다 폈다하는 개방형 컨테이너) 나무 합판 조각을 정리하던 중 컨테이너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무게 300kg에 달하는 FRC 철판 날개에 깔려 숨졌다.

사인은 외부 압력에 의한 두부 및 늑골 다발성 골절에 의한 뇌기종 및 혈흉으로 나타났다. 사고 당시 선호씨는 안전관리자와 수신호 담당자 등이 없는 현장에 배치됐고, 안전 장비도 지급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직원들은 숨 끊어져 가던 아들 보면서 중계하듯 보고"…아버지의 호소
선호씨 아버지 이재훈씨는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사고 당일에 대해 "(제가 일하는 현장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다. 업무를 끝내고 잠시 쉬던 중에 작업 책임자로부터 인력 1명만 보내달라는 전화가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는 담당자인 외국인 근로자한테 연락하면 됐는데, 장비가 있는지 몰라서 아들에게 '책임자 아저씨한테 가서 이 내용을 전달해달라'고 했다"며 "이후 아들한테 '장비가 없다'고 전화가 왔고, 아들이 장비 들고 따라갔다가 사고가 났다"고 했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를 도우려 하다가 이렇게 됐다"며 "저도 8년간 근무하면서 컨테이너 해체 작업에 투입된 적이 없는데 (아들이 보조로 처음 투입됐다)"고 강조했다.

이씨에 따르면 이날 지게차 두 대가 등장했다. 선호씨와 외국인 근로자는 안전핀을 제거하고 철수하려던 참이었다. 이때 한 지게차 근로자가 FRC 날개 밑에 있는 쓰레기를 주우라고 지시했다. 이에 외국인 근로자가 쓰레기 안 주워도 되니 그냥 가자고 했으나, 선호씨는 지시에 따랐다.

이후 다른 지게차가 FRC 날개를 접으려고 현장에 진입했다. 그러나 날개를 접는 순간 오른쪽 날개가 땅으로 떨어졌고, 이 진동으로 인해 선호씨 앞쪽에 있던 FRC 날개가 무너지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선호씨가 사고를 당한 직후부터다. 이씨는 "(아들이 사고 당한 직후) 현장 책임자는 119에 신고하지 않고 윗선에 보고부터 했다"며 "같이 있던 외국인은 119에 신고하라면서 아들을 깔고 있던 날개를 들려고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인간의 극과 극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직원들은 현장에서 숨이 끊어져 가는 아들 모습을 중계하듯 보고했다"며 "너무 참혹하고 잔인하다. 저한테 연락했어야 했다"고 분노했다.

이씨는 사고 당시 현장 인근에 있었지만 선호씨의 사고 소식을 바로 전해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날 119 신고 등 대응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고 선호씨는 몇십분 가량 현장에 그대로 방치돼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 이선호씨가 사고 당시 일했던 FRC 개방형 컨테이너 모습./사진=뉴스1(대책위 제공)

이씨는 회사 측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아들이 이렇게 되기까지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며 "둘 중 한 명은 용서를 구했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업무를 지시한 적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회사 측은 선호씨에게 '쓰레기를 주우라고 지시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이씨는 "아들이 자발적으로 들어가서 쓰레기를 주웠다고 해도 사건의 본질은 회사에서 인건비를 줄이려고 안전요원을 투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적정 안전인원만 현장에 있었다면 쓰레기 주울 일은 없었던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씨는 끝으로 "아들을 강인하게 키워보려고 했는데, 제가 아들을 사지로 몰았다는 죄책감에 많이 힘들다"며 "더 이상의 산재 사망사고는 이번 일이 마지막이길 희망한다. 관계자들은 두 번 다시 희생자가 안 나오게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음의 행진' 부르는 노동구조…산재사고 비정규직, 정규직 약 2배
선호씨는 평택항에서 세관 검수 업무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였다. 그러나 사고 당일 원청 지시로 갑작스럽게 컨테이너 관련 업무를 돕다가 참변을 당했다. 이에 하청노동, 단기계약 등 외주화에 비롯된 노동 구조가 이 같은 비극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단기 공사의 경우 계약기간이 대부분 1년 미만인 만큼, 노동자들이 작업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간접고용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간 산재 사고로 다친 비정규직은 38%로 정규직(21%)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2018년 충남 태안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씨(당시 24살), 2016년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모군(당시 19살)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그나마 김용균씨 등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대부분 산재 사망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는다"며 "일상다반사처럼 일어나는 산재 사망사고에 사람들이 무뎌져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총 2062명이다. 이 중 사고 사망자는 882명이고 나머지는 질병으로 숨졌다.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지난 1월에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1명 이상 사망하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에 적용된다. 사망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상 및 질병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부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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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원혜 기자 hoopooh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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