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 푸틴이여, 이래서 나라 살림살이 나아지겠소?" [글로벌 플러스-러시아 GDP 갉아먹는 '푸티니즘']

2021. 5. 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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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언론·반정부 매체, 정체·악화하는 러시아 경제 지적
아스룬드 "생활수준 7년간 11% 하락..루마니아보다 어려워"
펌프로 물 긷고 나무땔감으로 난방하는 러 "우린 선진국"
'안전·개인적인 화장실' 접근하지 못하는 비율 27.8% '1위'
인구 55만 산업도시 '툴라' 5분의 1이 하수처리시스템 미비
언론인 가제타 "3000여만명 재래식 화장실로 고통" 폭로
전문가, 푸틴 정책모델로 GDP 2%P 이상 날렸다고 지적
美 제재·위협 대비..자국경제 격리방법 모색에만 골몰
수출대금 결제 달러화 비중 48.3%..절반 이하로 낮춰
러시아 매체 노바야 가제타가 보도한 러시아 내 재래식 화장실 사진들. [노바야 가제타 제공]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삐걱대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올해 취임한 뒤 냉기가 삽시간에 퍼졌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물렁했던 것에 비하면 돌기(突起)가 여기저기 박힌 발언이 바이든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외교관 추방과 경제 제재도 가했다.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측이 미 대선 개입·정부 기관 해킹을 주도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다만, 미국·중국 사이와 달리 미·러의 긴장은 아직 신(新)냉전 수준으로 번지진 않은 듯하다. 바이든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로 밀고 당기는 와중에 대화의 공간은 열어 두려는 노력을 보여서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 개최 여부 관련, “우린 그걸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작년 치른 미 대선 전후로 푸틴 대통령에게 ‘폭력배(thug)’, ‘살인자’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푸틴 대통령도 “레드 라인을 넘지 말라”고 받아쳤다. 당장이라도 육탄전을 벌일 거 같은데 대화는 하겠단 메시지를 양쪽 모두 발신했다. 살벌한 광경 속에 이들 ‘외교 고수’의 치열한 수싸움의 향방에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반정부 성향 매체와 서방 언론은 이미 푸틴 대통령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이 21세기에 걸맞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식이다.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의 경제도 정체하거나 악화하고 있다는 수치를 들이댄다. 현대판 ‘차르(러시아어로 황제)’로 불리는 푸틴 대통령의 무능을 증폭시켜 러시아 국민의 민심 이반 혹은 현실 자각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버티기도 만만치 않다.

▶디지털 시대에, 선진국이라 주장하면서...= “화장실 대신 옥외 변소가 있다. 물을 얻으려고 모퉁이 펌프를 쓴다. 나무를 땔감 삼아 난방을 한다. 개별 하수 트럭을 불러 모든 것을 퍼올린다. 2000루블(약 3만원) 정도 한다.”

러시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으로 알려진 노바야 가제타(Novaya Gazeta)가 최근 낸 기획기사의 내용이다. 러시아엔 중앙하수처리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에 3000여만명의 국민이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고발이다. 과학·군사 강국 이미지가 강하지만, 속살을 들춰보면 민망한 구석이 하나 둘이 아니란 지적이다.

러시아 땅 덩어리가 워낙 넓기에 촌구석의 열악한 처지라고 넘겨 짚을 수 있는데, 노바야 가제타는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예로 든 도시가 툴라(Tula)다. 수도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00㎞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이 산업도시엔 54만9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5분의 1이 중앙하수처리시스템이 없다고 한다.

이나 슈발로바는 “할머니가 윗층에 사는데, 화장실에서 쓰는 양동이를 창문 밖으로 버린다”고 했다.

주민들은 지방정부가 하수처리 시스템을 손봐 주길 바라지만, 당국은 어떤 것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고 모든 건 기밀에 부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나이다 바트코바는 “그들은 2023년까지 우리가 난방, 물, 배수장치 없이 살 거라고 말했다”며 “지역 언론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불만을 묵살하고, 모든 게 훌륭하고 모두가 행복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툴라 주민은 계속 야외 변소와 오물통에 배변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약 600만명의 러시아인도 실내 배관이 없는 아파트 건물에 살고 있다고 한다. 노바야 가제타에 따르면 러시아 농촌 가구의 75%가 외부 변소를 갖고 있다. 마을 주민의 38%가 구덩이 변소나 정화조를 쓴다. 도시 거주자의 23%가 안전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고, 100만명 이상의 도시 거주자가 칸막이 없는 화장실에서 배변을 하고 있다. 물·위생 관련 비영리조직인 워터에이드에 따르면 러시아는 주요 선진국 가운데 ‘안전하고 개인적인 화장실’에 접근하지 못하는 비율이 27.8%로 1위(2015년 기준)다. 러시아가 현재의 투자율을 유지하면 낡은 하수도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데 175년이 걸린다는 추정이다.

▶루마니아·터키보다 못 살게 된 러시아=러시아의 형편은 거시(巨視)로도 체면이 말이 아니다. 국제문제 싱크탱크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의 앤더스 아스룬드 선임펠로는 최근 기고 전문 매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낸 글에서 이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러시아는 2014년 이후 실제 성장을 기록하지 않은 나라라고 지목했다. 러시아 국민은 루마니아인과 터키인보다 살림살이가 더 나쁘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부각하기 위해 중유럽과 동유럽의 경제적 차이를 비교했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한 국가는 경제 거버넌스를 개선해 국내총생산(GDP)이 서유럽에 수렴하기 시작했다고 봤다. 2014~2019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는 GDP가 각각 연평균 3.9%, 4.1%, 4.7% 성장했다. 반면 러시아 경제는 연평균 0.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러시아는 2009년까진 크로아티아, 폴란드, 루마니아, 터키보다 1인당 GDP(구매력 평가기준)가 높았지만 이후 모두 추월당했다. EU 회원국 가운데 불가리아만 아직 러시아보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러시아가 뒤뚱대는 건 풍부한 인적자원을 낭비했기 때문이라고 아스룬드 선임펠로는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이 건전한 경제정책을 추구했다면 성장률이 더 높았을텐데, 법 집행 기관 등을 정치화해 민간투자와 사업 개발의 전제조건인 법치를 와해했다고 분석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20년 기준 러시아의 부패인식지수는 176개국 가운데 129위로 나타났다. 폴란드(45위), 루마니아, 헝가리(이상 공동 69위)보다 한참 뒤진 순위다.

아스룬드 선임펠로는 “안전한 재산권이 부족하고 서방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외국인직접투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14~2019년 1.4%에 불과하다”며 “2008~2013년의 3.1%에서 급감한 것”이라고 했다.

아스룬드 선임펠로는 “푸틴 대통령의 극심한 긴축 정책 때문에 러시아의 생활 수준은 지난 7년간 11%나 떨어졌다”며 “2014년 이후 러시아의 잠재 성장률이 연간 5%였어야 했다. 그 가운데 절반(연간 GDP의 2.5~3%)이 서방의 제재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CNN에서 특파원으로 일했던 프리다 기티스도 최근 워싱턴포스트(WP)에 낸 칼럼에서 푸틴 대통령을 저격했다. 러시아의 과거 영광을 되찾으려는 목표를 숨기지 않는 푸틴 대통령은 ‘글로벌 왕따’가 돼 가고 있다면서다. 부패가 만연해 있고, 소득 불평등 수준이 심하다고 했다.

이웃 국가에 대한 침략도 문제로 꼽았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이끄는 중국은 급속한 경제발전이라도 하는 중이지만, 러시아는 권력자가 부를 독점하는 도둑정치(Kleptocracy)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결론은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는 누구에게도 본보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달러 줄이는 러시아...수출 대금 결제 비중 첫 50% 아래로= 러시아중앙은행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작년 4분기에 수출 대금에서 미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48.3%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50% 아래로 내려온 것이다. 3분기엔 56.6%였다.

러시아가 무역을 주로 중국과 하면서 결제 통화로 유로화를 사용한 결과다. 유로화 비중은 작년 3분기에 24.4%였는데 4분기엔 36.1%로 크게 늘었다.

블룸버그는 이와 관련, 러시아의 달러화 노출을 줄이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다년간의 노력이 큰 이정표를 세웠다고 표현했다. 대결 국면이 본격화하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실행에 옮긴 셈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부과한 여러 차례의 제재와 향후에 있을 위협을 염두에 두고 미국의 방해로부터 자국 경제를 격리할 방법을 모색해왔다. 러시아중앙은행도 국제준비금에서 미 국채를 없애고 대신 금과 유로를 쌓았다. 많은 중견 기업도 현재 미 달러화에 대한 노출을 줄일 방법을 모색하면서 위안화와 루블화로 무역대금 결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르게이 라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지난 2월 인터뷰에서 “영구적인 적대 행동의 원천에 대한 의존을 없애기 위해 달러화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긴급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홍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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