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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작은 플라스틱·멸균팩·실리콘.. "모아서 가져오세요"

김현종 입력 2021. 05. 11. 14:00 수정 2021. 05. 1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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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플라스틱, 멸균팩, 실리콘, 비닐 완충재(뽁뽁이)···. 충분히 재활용이나 재사용이 가능하지만 수거 시스템이 없어서 버려지는 폐기물들이 많다. 재활용이 거의 100% 가능한 코팅 종이조차 공공 분리배출 시스템이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쓰레기 줄이기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모인 온라인 제로웨이스트 카페 등엔 종종 재활용·재사용 통로를 소개하는 '팁'이 공유된다. “모아서 갖다 드리면 받아주시더라고요!” 물론 씻고, 말리고, 모아서, 직접 가져다줘야 하는 수고를 거쳐야 하지만,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반응이다. ‘폐기물 받아주는 곳’을 소개한다.


작은 플라스틱 모아 업사이클링… 전국 ‘수거공간 지도’ 만들기도

서울환경연합 프로젝트인 '플라스틱 방앗간(방앗간)'이 폐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재활용품들. 방앗간은 공공 재활용 시스템에서 버려지는 '손바닥보다 작은 플라스틱'을 모아 컵받침·열쇠고리·벽고리 등을 만들어 재활용한다. 김현종 기자

서울환경연합의 프로젝트인 ‘플라스틱 방앗간(방앗간)’은 손바닥보다 작은 플라스틱을 수거한다. 직접 재활용하기도 하고, 지역별 ‘수거 공간’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현행 공공 재활용 시스템은 플라스틱을 재질별로 손수 분류하는데 작은 플라스틱까지 일일이 선별하지 못한다.

방앗간은 ‘고품질 소량생산’ 방식이다. 주민들로부터 병뚜껑ㆍ가공햄 뚜껑 등 작은 플라스틱을 모으고, 이를 정교하게 재가공해 부가가치를 붙여 판매하는 식이다. 소량으로 다루는 대신 완성품의 품질을 높이는 '업사이클링' 전략이다.

다만 재활용 과정에서 생기는 유해물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교적 안전한 PPㆍHDPE 재질만 받고 있다. 또 너무 많은 폐기물이 모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참새클럽’이라는 이름의 참가자를 별도로 모집한다. 3월 제3차 참새클럽 6,000명을 모집했는데 약 4만5,000명이 지원했다. 지난해 7월과 9월에 진행한 1ㆍ2차 모집에서 수거한 플라스틱만 약 800㎏이다. 플라스틱 재활용을 향한 시민들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김자연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방앗간 홈페이지에 수거ㆍ업사이클링 업체 50곳을 소개하고 있다”며 "어떤 곳이 폐플라스틱을 수거하고 있는지, 재활용 설비는 어떻게 사야 하고 재활용품 제조는 어디에 맡겨야 하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로 모으기만 하면 소중한 자원” 멸균팩ㆍ실리콘 모아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 관계자가 매장에 비치된 종이팩 수거함에 멸균팩(테트라팩)을 넣고 있다. 한살림 제공

정부가 일반쓰레기에 버리도록 하는 멸균팩(테트라팩)이나, 분리배출 항목 자체가 없는 실리콘을 모으는 곳도 있다. 두 재질 모두 고품질로 재활용할 수 있지만, 별도로 분리ㆍ선별할 체계가 없어 매립ㆍ소각된다.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은 전국 매장에서 상시로 멸균팩을 수거한다. 멸균팩은 상온 보관이 가능하도록 알루미늄 코팅이 된 종이 용기다. 7겹이나 붙은 코팅을 제거해야 해 공정이 복잡하지만, 재활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살림은 자체 유통망을 통해 수거한 멸균팩을 조합 소속 재생업체에 전달, 핸드타월로 제작해 재활용하고 있다. 수량ㆍ구매처ㆍ조합원 여부 상관 없이 깨끗하게 말린 것이라면 전부 받는다. 우유팩 또한 수거해 휴지로 만든다.

스테인리스 도시락 용기 제조업체 '데펜소'가 모은 폐실리콘. 실리콘은 같은 재질끼리 모이면 좋은 품질로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국내에서는 폐기물 양이 적고 재생업체도 없어 분리배출이 안 된다. 데펜소 제공

서울 마포구 제로웨이스트숍 알맹상점과 친환경 스테인리스 도시락 용기 제조업체 '데펜소'는 폐실리콘을 수거한다. 모래를 원료로 인공 합성 과정을 거쳐 만드는 실리콘(silicone·규소수지)은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가정에서 배출되는 폐기물 양이 적고 선별장에서도 일반 플라스틱과 구별하기 어려운 문제 탓에 정부는 일반쓰레기로 버리도록 안내한다.

알맹상점은 시민들로부터 모은 실리콘을 '데펜소'에 보내고, 데펜소는 선별 과정을 거친 뒤 중국의 실리콘 재활용 업체로 보낸다. 국내에서는 폐실리콘을 재활용하는 업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데펜소는 알맹상점 외 제로웨이스트숍(인천 중구 채움소, 서울 성동구 더피커)에서도 폐실리콘을 수거하도록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실리콘도 같은 재질끼리 모여야 해서 단일 재질로 된 것을 보내는 게 좋다.


공공기관, 기업에 행동 촉구하는 소비자들

온라인 제로웨이스트 카페에 올라온 완충재 재사용 글.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지역 우체국별 상황이 다른 점을 고려해 본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업은 아니다"라면서도 "시민들로부터 문의를 받아 완충재를 재사용하는 우체국이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캡처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강원 원주 우체국 등 일부 우체국에서는 깨끗한 완충재를 가져가면 다른 사람들이 무료로 재사용할 수 있도록 비치해둔다. 택배업체 등이 완충재를 과도하게 사용하자 재사용 방법을 고민하던 한 시민이 지역 우체국에 재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했고, 우체국이 이를 받아들여 활용하게 됐다.

다만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우체국별로 창구 환경이 다르고 코로나19 등의 탓에 본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정책은 아니다”라며 “재사용을 원한다면 지역 우체국에 먼저 확인해봐야 한다”고 안내했다.

지난달 20일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배달 플랫폼 업체 '배달의민족' 본사 앞에서 다회용기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 구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재활용도 재사용도 불가능해 난감한 경우엔 '어택'을 하기도 한다. 어택은 해당 폐기물을 생산 책임이 있는 기업에 보내 재질 개선, 폐기물 감축을 촉구하는 항의 행위다.

녹색연합과 알맹상점 등이 출범시킨 '화장품어택시민행동'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소비자에게서 화장품 용기를 수거해 화장품 제조업체에 전달했다. 지난달 20일에는 일회용 배달 용기를 수거해 배달의민족 본사에 전달하는 '배달 어택'을 벌이기도 했다.

허승은 녹색연합 활동가는 "개인의 역할만으로는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생산자가 재활용이 안 되도록 제품을 만드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며 "환경에 대한 시민 의식이 높아지는 만큼 생산자들이 책임감을 갖고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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