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은 세입자 몰래 집팔고.. 세입자는 "방 뺄테니 5000만원"

정순우 기자 입력 2021. 5. 12. 03:40 수정 2021. 5. 1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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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法 갈등 2라운드 - '6월1일 과세' 앞두고 매매 꼼수

서울에 아파트 두 채를 가진 50대 A씨는 지난달 세무사에게서 올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1억원 넘게 나올 것이란 말을 듣고 내년 초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한 채를 팔기로 했다. 과세 기준일인 6월 1일 이전에 처분하기 어려웠던 A씨는 매수자에게 아파트 소유권부터 넘기고 잔금은 나중에 받기로 합의했다. 이런 내용을 전혀 모르는 세입자는 바뀐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밝히면 집을 비워줘야 할 처지가 됐다.

지난 4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이후 임대차 분쟁 사례 발표와 문제해결을 위한 좌담회'가 열리고있다./연합뉴스

지난해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직후 논란이 됐던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최근 다시 불붙는 분위기다. 세금 부담을 줄이고자 집을 팔려는 집주인과 계속 거주하려는 세입자들이 대립하면서 갖가지 ‘꼼수'가 난무하고 있다. 집주인은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없도록 몰래 집을 팔아버리는가 하면, 세입자는 매매 거래를 방해하거나 위로비 수천만 원을 요구하는 식으로 응수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나 아파트 입주민 카페 등에선 집주인과 세입자 입장으로 편이 나뉘어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상대방을 비방하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작년 하반기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임대차 대전(大戰)의 ‘시즌 2’다.

◇첩보 작전 하듯 집 파는 다주택자들

최근 강남이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서울 인기 지역에서 전·월세 낀 집을 처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잔금을 치르기 전 소유권 등기부터 넘기는 이른바 ‘선(先)등기 후(後)잔금’ 전략이다. 주로 임대차 계약 기간이 6개월 이상 남은 집주인들이 활용한다. 바뀐 임대차법에 따라 세입자는 계약 만료 6개월 전부터 2년의 추가 계약을 요구할 수 있고, 집주인은 실거주하는 경우가 아니면 세입자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그래픽=박상훈

이에 집주인들은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없는 시점에 미리 소유권을 넘김으로써 합법적으로 세입자를 내보내는 우회 전략을 들고 나왔다. 매매 대금을 덜 받은 상태에서 소유권을 넘기는 것은 매도자 입장에서 위험한 판단이다. 매수자가 집을 처분해도 돈을 못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도자들은 덜 받은 집값만큼 해당 주택에 근저당을 설정하는 식으로 ‘안전 장치'를 만든다.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 선등기 방식으로 집을 파는 사람들은 세입자 몰래 첩보 작전 하듯 매물을 낸다”며 “이런 매물은 시세보다 저렴한 데다 입주도 가능하기 때문에 갭투자자, 실거주자 모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버티는 세입자들 “방 뺄 테니 5000만원 달라”

바뀐 임대차법을 무기로 집을 팔려는 집주인을 골탕 먹이는 세입자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집을 보여주지 않는 식으로 거래를 방해하거나 이주 대가로 거액의 위로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서울 성동구 B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세입자를 내보내는 조건으로 2000만원을 줬다는 뉴스가 나온 후 굳이 계약을 갱신하지 않아도 될 세입자까지 위로금을 요구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며 “위로금 시세도 작년엔 1000만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보통 2000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까지 요구한다”고 전했다.

유튜브나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집주인의 퇴거 요구에 대응하는 전략이 공유되고 있다. “퇴거에 합의하는 척하며 시간을 끌다가 나중에 계약 갱신을 요구하면 위로금을 더 받을 수 있다”거나 “쫓아내면 실거주하는지 검증하겠다고 협박하라”는 등의 내용이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임대차 분쟁도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대한법률구조공단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접수된 임대차 분쟁 조정 건수는 작년 11월 192건에서 올해 2월 154건으로 줄었다가 3월 177건으로 다시 늘었다. 상담 건수는 올해 2월 5997건에서 3월 8394건으로 한 달 사이 40%나 늘었다.

정태우 변호사(법무법인 세한)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 유형은 천차만별인데 주택임대차법에 세세한 내용이 없고, 관련 판례도 부족해 상호 합의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대충 만들어 놓고 국민 보고 알아서 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입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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