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빚은 얼마?..금융시장에서 북한 채권이 거래된다는데

안정식 기자 2021. 5. 1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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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통일이 남한 주도로 이뤄진다면 북한이 대외적으로 관계를 맺어 온 것들에 대한 처리도 통일한국 정부가 담당해야 하게 됩니다. 북한의 대외관계라 하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승계 여부를 논의해야 할 핵심은 조약과 채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채무 즉 북한의 빚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의 대외 채무 규모는


북한의 대외 채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없습니다. 2008년 당시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정보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북한이 중국, 러시아 등 30여 개국에 약 180억 달러의 대외채무를 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10년 8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북한의 대외 채무가 120억 달러로 추산된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수치는 남한에 대한 채무를 제외한 수치입니다. 남한은 북한에 차관 형식으로 식량을 상당 기간 제공해 왔습니다. 북한은 1980년대 중반부터 사실상 채무이행불능 상태에 있습니다.

북한의 대외 채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러시아 채무입니다. 러시아는 구소련 붕괴 이후 구소련의 채권을 승계했습니다. 2011년부터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채무를 100억 달러 정도로 정리했는데, 이 가운데 90%를 탕감해주기로 했습니다. 10%에 해당하는 11억 달러는 지원을 통한 채무변제 모델에 따라 교육, 의료, 에너지 분야의 양국 간 협력에 이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중국에 대한 채무는 가장 많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인할 자료가 없습니다.

일본 채무는 1974년부터 표면화됐습니다. 북한이 1974년 일본에 대한 수입대금을 지불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채무 상환 지연사태는 1976년 북한과 일본이 채무 상환 연기에 합의하면서 일단락됐습니다. 이 시점의 채무 규모는 약 800억 엔, 북한은 이 가운데 100억 엔 정도를 상환하면서 나머지 채무는 1983년까지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1983년 아웅산 테러사건을 계기로 일본이 경제제재를 취하자 북한은 1984년부터 채무상환을 중단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대일 채무는 원금 700억 엔과 이자가 남아있는 셈입니다. 북한의 대일 채무는 북한에 대한 일제 식민지 배상금이 해결되지 않은 측면도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OECD에 대한 채무는 규모가 불명확합니다. OECD 채권단들, 특히 채권은행들은 대북 채권을 상품화하여 시장에서 유통시키고 있는데, 금융시장에서는 통일이 되면 통일한국이 이를 갚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액면가의 15% 정도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은 동유럽 국가에도 상당한 채무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자료는 없습니다. 2010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북한이 헝가리와 체코에 채무의 90% 이상을 탕감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북한 채무 처리는 어떻게


그렇다면, 북한의 채무는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요?

판단을 돕기 위해 과거의 다른 나라 사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로 합쳐질 때 채무가 승계된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먼저 채무 승계를 부인한 사례들입니다. 1874년 영국이 피지를 병합할 때 영국은 피지의 채무 승계를 부인했습니다. 1881년 프랑스가 튀니스를 보호국으로 선언할 때도 기존 채무의 승계를 부인했습니다. 1940년 구소련이 발트 연안 3개국을 병합했을 때 구소련은 이들의 대외채권은 회수하려 하면서도 부채 승계를 부인했습니다.

반대로 채무 승계를 인정한 사례들도 있습니다. 1860년 이탈리아가 통일될 때 통일 이탈리아 정부는 기존에 존재했던 개별 국가들의 채무를 승계했습니다. 1957년 말레이시아 연방 결성 시에도 말레이시아 연방헌법은 "구성 국가의 모든 권리와 의무는 연방국가로 양도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상의 사례를 비교해 보면,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병합할 때 식민지의 기존 채무 승계를 부인했던 반면, 여러 개별 국가가 단일의 통일국가로 결성될 때에는 채무가 승계되는 경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두 가지의 사례를 더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분단국가의 통합 사례입니다. 베트남의 경우 통일 베트남은 패망하게 된 남베트남의 권리와 채무를 모두 승계했습니다. 독일의 경우도 통일독일은 흡수되는 동독의 채무를 승계했습니다. 통일독일은 통일조약에서 국가채무에 대한 규정을 마련했는데, '동독 재정의 총 부채는 연방의 특별기금에 의해 인수'되며 '특별기금은 부채관리 의무를 수행'하기로 했습니다.

국가통합 시 승계국(합치는 나라)이 선행국(합쳐지는 나라)의 채무를 승계해야 하는지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는 다르지만, 이상의 사례를 살펴보면 식민병합이 아니라 통일국가를 이루는 경우 여러 개별 구성국의 결합이든 분단국가의 통합이든 채무가 승계되는 경향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북한의 경우에도 남한 중심으로 통일될 경우 북한의 대외 채무를 승계하는 것이 어느 정도 불가피해 보입니다. 이는 통일한국의 대외 신뢰도라는 측면도 있지만, 통일 과정에서 다른 나라들의 지지를 얻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만 채권국들이 북한의 채무에 대해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인 만큼, 적절한 협상을 통해 채무의 일부를 탕감하거나 북한에 대한 투자를 보장하는 방식 등으로 채무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안정식 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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