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판사가 부킹 몰라서" 성추행 덮어쓸뻔한 30대男 반전

이가영 2021. 5. 1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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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한 클럽.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중앙포토

남성 A씨(30대)는 2019년 5월 자정을 넘긴 시각 친구와 함께 경북 지역의 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가 강제추행과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무대에서 춤을 추던 중 처음 보는 여성 B씨(40대)의 몸을 세게 움켜쥐어 강제추행했다는 혐의였다. 또 여성이 항의하자 나이트클럽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많이 있는 일이다. 당신이 불리하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 입구에 있는 단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는 혐의도 적용됐다.

두 사람은 강제추행을 두고 법정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이어갔다. 여성 B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A씨와 친구가 자신을 에워싸고 양팔을 펼쳐 감싸 안는듯한 행동을 하다가 추행했다”며 “당시 분노를 느끼고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으며 두려움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반면 A씨는 “함께 춤을 추다가 손을 뻗는 동작을 하던 중 손이 가슴 부분을 스치듯이 접촉한 적은 있지만 추행하지는 않았고, 미안하다는 손동작을 취했는데 갑자기 B씨가 뛰어들 듯이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폭행했다”고 반박했다.

A씨의 변호를 맡은 대한법률구조공단 정구승 법무관에 따르면 당시 클럽의 CCTV는 화질이 나빠 추행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여성 B씨의 옷을 감정신청 하려고도 했지만 만진 것만으로 A씨의 유전자(DNA)가 나올 리 없기에 “남성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받는다고 해도 무죄 증거가 되기는 어려운, 한마디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선고 전 마지막 재판, A씨와 함께 클럽에 갔던 친구는 증인신문 과정에서 “부킹 왔을 때 좋다고 번호 따갔으면서…”라고 한탄했다. 재판장은 이에 대해 “부킹한 거랑 피해자가 피고인을 처음 보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정 법무관은 “검사님과 판사님도 ‘부킹’을 간과했거나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부킹’이란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가 남녀를 즉석에서 짝지어 주는 것을 말한다”는 내용을 담은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하며 “여성의 진술이 사실과 상반되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결국 재판부는 “A와 B씨 일행이 부킹을 해서 술을 같이 마셨던 사실이 인정되는데 B씨는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진술해 사실과 맞지 않는 점 등을 비추어 볼 때 A씨가 추행했다거나 추행의 범의가 있다는 점에 관해 합리적인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강제추행 혐의는 무죄, 재물손괴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물손괴 혐의는 A씨도 시인했기에 무죄가 되기는 어려웠다.

다만 해당 재판은 쌍방의 항소로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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