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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코로나 영향 거의 없다".. 나홀로 뜨거운 뚝섬 상권, 높아진 임대료에 가죽거리는 사라져가

유병훈 기자 입력 2021. 05. 13. 11:03 수정 2021. 05. 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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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이 거의 없는 거 같아요”

서울숲 초입에서 만난 의류 가게 주인 A씨는 “서울에서 이 근방만큼 유동인구가 많은 곳도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경기도 수원에서도 또 다른 매장을 운영한다는 그는 “수원 가게의 매출은 90%가 줄었지만, 이곳에서는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평일 오후에도 붐비는 뚝섬 서울숲 입구 거리/정영인 인턴기자

◇ 주중에는 직장인·주말에는 인스타族… 코로나19가 무섭지 않은 뚝섬

지난 11일 방문한 뚝섬역 인근 상권은 코로나19의 상흔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활기찼다. 상인들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이후의 매출 차이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어도 “이 정도면 선방했다”는 인식에는 차이가 없었다.

상인들의 자신감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뚝섬 상권의 지난 1분기 소형 상가 공실률은 0%,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3%에 불과했다. 서울 전체 공실률 평균이 소형 6.5%, 중대형 8.9%인 것을 감안하면 둘 다 서울 최저치에 가깝다.

지난 1분기부터 표본이 바뀌긴 했지만, 코로나19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몰아친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의 소형 상가 공실률은 계속 0%였고, 중·대형 상가 공실률 역시 1.3%·1.7%로 상계역 상권(각 1.5%)과 함께 가장 낮았다. 같은 기간 명동·이태원·신촌 등 서울 주요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뚝섬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굳건히 버텨낸 원동력은 무엇일까.

뚝섬역 인근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뚝섬 상권은 신촌·홍대·종로 등지의 소비 상권과는 성격이 다르다”면서 “기본적으로 인근 지역 30~40여개의 지식산업센터를 중심으로 오피스가 수요를 견인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B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지식산업센터는 거의 꽉 차 있다”면서 “바로 앞 센터만 하더라도 사무실은 만실(滿室)이고, 상가는 공실이 1개뿐”이라고 했다. 직장인 수요에 힘입어 뚝섬역 인근에는 음식점·카페·술집들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렸다.

뚝섬역 앞이 직장인 중심 상권이라면 500m 근방의 서울숲 앞은 ‘인스타그램 명소’로 젊은이들을 끌어들인다. 이날도 평일 점심이었지만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이 식당과 카페에 가득했다. 서울숲 입구쪽 식당에서 대기 중이던 20대 여성들은 “용인 기흥에서 왔다”며 “뚝섬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음식점·카페들이 많아 한 달에 한 번은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숲 카페거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종업원은 “코로나19의 영향이 없진 않지만, 주중에도 저녁 5시가 넘으면 손님들이 많고 주말에는 더 많다. (주중보다) 두 배는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카페거리 주민이라고 밝힌 80대 노인은 “주말이 되면 동네가 명동처럼 꽉 찬다”고 했다.

주중·주말, 점심·저녁을 가리지 않고 소비자들이 몰리니 상가 매물도 씨가 말랐다. C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도 있긴 한데, 기본적으로 수요가 받쳐주다 보니 매물이 나오질 않는다”며 “임대료가 올라 감당을 못해 나가도 하루면 새 주인을 찾는다”고 말했다.

D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성수동 일대는 준공업지역이라 땅만 있으면 허가가 난다. 그것도 2종·3종 주거지역과 달리 7~8층짜리 건물을 올릴 수 있어 땅의 가치를 높이기 쉽다”면서 “근처에서 진행 중인 공사들이 전부 집을 매입해서 상가로 바꾸는 것들”이라고 했다. 다만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성수 전략정비구역에 대한 기대감과 관련해서는 “워낙 오랫동안 재개발 지구로 묶여있어서 이제는 실제로 삽을 뜨지 않는 한 별 감흥이 없을 만큼 무뎌진 상황”이라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어도 큰 타격이 없는 이유기도 하다”고 말했다.

뚝섬역으로 퇴근하기 위해 직장인들이 줄을 서 있다/정영인 인턴기자

◇ 상권 따라 오른 땅값에… 쫓겨나는 가죽공과 영세상공인

손님이 많다 보니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로 인해 한때 성수동의 상징과도 같았던 가죽공·구두공들은 성수동에서 빠르게 밀려나고 있다. 영세 상공인들도 괴로워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가죽거리에서 50년 가까이 구두를 만져왔다는 한용흠씨는 “최근 2~3년새 땅값이 오르고 집값이 오르고 가게 월세가 뛰었다”면서 “이 가게 자리도 평(3.3㎡)당 8000만원에 팔렸다고, 1년 뒤 리모델링 전까지 나가라고 하는데 갈 데가 없다”고 했다. 그는 “원래 가죽거리는 문자 그대로 가죽공들이었는데 이제는 다 음식집이니 카페로 바뀌었다”며 “가죽공들이 밀집해있어야 시너지가 나는데 대부분 쫓겨나면서, 10년전 월 400만~500만원에 이르던 매출도 이제는 월 100만원이 될까말까 수준까지 줄었다”고 말했다.

가죽거리 근처의 E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건물주들 입장에서는 구두방이나 가죽공방보다는 건물 가치를 높이고 임차인들이 자비로 리모델링을 할 수 있는 식당·카페를 더 선호한다”면서 “일부러 가죽공방의 임대료를 높이고는 식당·카페에는 낮은 임대료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음식점·카페 역시 손님이 많더라도 높아지는 임대료에 허덕이긴 마찬가지다. 한 음식점 주인은 “월세가 3년 전에 비해 2~3배 정도 올라 이제는 월 600만원 수준까지 올랐다”며 “못 견디고 폐업하는 식당이 늘었다”고 했다. 인근 카페 주인도 “이미 상권이 포화 상태”라면서 “일부 대형 카페는 손님이 계속 몰리지만 소형 카페는 ‘되는 곳’과 ‘안되는 곳’이 극명히 나뉜다”고 말했다.

F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젊은 창업주들은 상권을 면밀히 분석해서 진입하기보다 ‘아이템’ 수준의 구상만 가지고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 경우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만큼 손님을 제대로 끌지 못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가기도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권리금의 경우도 편차가 크지만 10평(33㎡)에 1억~1억5000만원에 이르는 경우도 나온다”며 “특히 권리금이 없다가 생긴 경우는 가게들이 얼마 못 버티고 나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동네 주민들의 불만도 나온다. 서울숲 인근에서 동네 주민이라고 밝힌 한 80대 노인은 “공사로 시끄러운 건 불편하지 않다”면서도 “월세가 감당이 안 된다고 세탁소도 사라지고 미용실도 사라졌다. 살기 번거로워졌다”고 말했다.

원래 구둣방이 있던 상가를 식당으로 바꾸기 위해 공사 중인 모습/정영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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