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매일 일하니, 이러다 죽겠구나

한겨레21 2021. 5. 1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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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우먼의 기쁨과 슬픔]돈은 모였지만 밤에 누우면 혼자서는 잘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일이 많았던 32살 시절
구둘래 제공

엄마들이 학용품을 사면서 학습지는 안 하느냐고 자꾸만 묻습니다. 뭔가 시작을 잘하는 남편은 어느새 ‘일일공부’(학습지)를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관리할까 걱정했는데 배달 일을 하겠다는 아이가 많아서 다행입니다. 학습지를 돌리고 다음날은 새 학습지를 돌리면서 어제 것을 거둬들여 채점해서 다시 돌리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일일공부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매일공부’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일일공부를 시작했더니 매일공부를 자꾸만 찾습니다. 이렇게 되면 누군가가 또 매일공부를 시작할 것이 뻔합니다. 그럴 바에는 두 가지를 같이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일일공부 이명희, 매일공부 이명희

두 가지 학습지를 하니 많이 복잡해졌습니다. 아이들이 하교하는 한창 복잡한 시간에 엄마 둘이 와서 “사장님 나와봐요” 큰소리로 부릅니다. “우리 애는 분명 매일공부를 하는데 어디서 얼토당토않은 일일공부가 우편함에 떡하니 꽂혀 있잖아요.” 한 엄마는 일일공부가 아니고 매일공부가 왔다고 학습지를 눈앞에 들이대고 흔들며 소리칩니다. 이름은 우리 아이 이름인데 웬일이냐고 큰소리로 따지는 겁니다. 우선 미안하다고 진정시키고 알아봤더니 각각 다른 학습지를 하는 동명이인이었습니다. 일일공부 이명희와 매일공부 이명희의 학습지가 바뀌어 배달된 겁니다. 일일공부와 매일공부 담당이 따로 있는데 학습지가 바뀌어서 배달되는 사고였습니다.

가게 한편에서 일일공부와 매일공부 둘 다 하던 것을, 사고를 막기 위해 세줬던 방을 비워서 사무실을 분리했습니다. 아이들을 쓰다보니 자주 결근해 골치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도 더 보강했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겠지만 교육 사업은 자식들 일이니 엄마들이 특히 더 신경 씁니다. 채점은 분명히 모범 답안지가 있어 보고 하는데도 채점을 잘못했다고 따지러 왔습니다. 집을 사고 나서 이제는 한시름 놨다고 생각했는데 일은 점점 늘어나서 아이를 업고 채점하고 수금도 하러 갔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결석을 많이 해 수학과는 담을 쌓고 살아 수학이라는 것은 아예 몰랐습니다. 아이들 학습지를 채점하다보니 수학 문제를 접하게 됐습니다. 사각형의 잘려나간 부분의 넓이를 계산하라는 문제를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남편이 이 문제는 이렇게 푸는 것이라고 수학도 알고 보면 쉽고 재미있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내 평생에 처음 수학 문제를 풀어봤습니다. 평생 수학을 못해서 시험에 100점이 몇 과목 나와도 수학이 총점을 다 깎아먹었습니다. 아! 수학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나도 지금 다시 기초부터 시작한다면 수학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막혔던 담이 허물어진 것 같은 후련함이 생긴 날이었습니다.

매일공부, 일일공부에 보험까지

그 무렵 어디서 흥국생명 소장이라는 남편 친구가 자주 놀러왔습니다. 평창은 다 좋은데 보험회사가 없는 것이 흠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여기다 흥국생명 지소를 하나 내야겠다고 벼르고 다녔습니다. 속으로 ‘내고 싶으면 내시든가 벼르기는 뭘 그리 벼르시나’ 했습니다. 남편 친구는 정말로 흥국생명 지소를 차리면서 지소장으로 남편을 세웠습니다. 학습지 사무실 한쪽에 칸을 막아 보험회사로 쓰는 조건이라고 했습니다. 또 큰일이 났구나 싶었습니다. 일이 점점 많아져서 아주 죽었구나 싶었습니다. 어린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출근하다시피 했습니다. 여직원네 아들이 우리 아들과 동갑이어서 같이 모여 놀았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사무실은 내보내고 방을 수리해 세놓았습니다. 마당 안쪽 방에는 식구가 많지 않은 나이 많은 공무원 부부가 이사했습니다. 그 부부는 무엇이 있으면 잘 나누어 먹고 아이들도 무척 예뻐했습니다. 다 좋은데 빨래하는 시간이 겹쳤습니다. 그때는 안마당에 설치된 수도 하나를 여러 집이 나누어 쓰고 살았습니다. 내가 빨래를 먼저 시작해도 가게에서 “계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가게를 봐야 합니다. 가게에 갔다오면 하던 빨래를 다 옆으로 밀어놓고 자기가 물을 차지하고 빨래합니다. 다른 것은 인심이 좋은데 수도만은 야속합니다. 한나절을 수도를 차지하니 손님이 없어 한가한 시간에도 빨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아기가 자는 시간에도 일 없이 앉았다가 결국 아기가 깨면 업습니다. 저녁에야 수도가 나서 빨래를 저녁때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남편도 집에 사무실이 있을 때는 가게 일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사무실에 나가 있으니 가게를 돌볼 수 없었습니다. 아기를 꼬박 업고 일하다보니 등이 저리고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밤에 누우면 등이 땅에 딱 붙어 누가 굴려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잘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한약국에 갔더니 사람이 골병들어 아픈 것은 고치기 어렵답니다. 나이 들수록 점점 더하다고 일하지 말고 편히 쉬어야 낫는다고 했습니다. 일이 많으니 돈은 모였습니다. 남편은 이러다 사람 죽겠다고 아무래도 어느 것이든 정리해야겠다고 벼르더니 흥국생명도 그만두고 일일공부도 넘겼다고 했습니다. 남은 매일공부는 우리 가게 한쪽에서 하기로 하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결혼반지 목걸이 팔고, 생일에 받은 논 열 마지기

세월은 빨라 나는 어느새 32살이 됐습니다. 남편한테서 32살 생일 선물로 다수리 논 열 마지기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사업 확장한다고 결혼반지와 목걸이도 다 팔아먹었습니다. 내 생일을 잊어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애쓰고 벌어서 집을 산 이후론 가겟세도 내지 않고 추가로 방세도 받았습니다. 올해부터는 쌀도 안 사먹고 농사지어 먹으면 이제는 돈 벌 일만 남았다고 합니다. 남편은 우리 집은 이제 당신이 없으면 떼거지가 되는 거라고 했습니다. 건강을 잃지 말고 오래오래 잘 살자고 약속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내가 사랑한 동물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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