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봄날은 간다
[경향신문]
십여년 전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에 한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지역 사진들을 모아서 테마별로 기획전을 이어가던 때였다. 사진 전시를 하는 것 같은데 영정을 찍어보면 어떠하겠냐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부모님 사진은 사진관에 가서 찍어드리면 될 것을 왜 나를 찾아왔을까 의아했다. 그이는 부모님께 선뜻 ‘사진 찍으러 가시자’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왕 남 좋은 일 하고 있으니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라는 당부를 두고 갔다. ‘남 좋은 일’이라는 말이 당시 주변에서 자주 듣는 ‘쓸데없는 일’이라는 느낌도 있어서 좀 씁쓸했지만 아무튼 그것을 계기로 작업계획은 시작되었다.
동네마다 다니며 어르신들에게 ‘사진을 찍어드립니다’ 하고 제안을 해봤지만 ‘이미 다 있구만이라’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떻게 설득을 해서 시작했는데 농번기 중 그나마 틈이 생기는 가장 더운 7월 말경에 구 마령면사무소 방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모두들 들판에서 일하느라고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오셨다. 원래 찜질용으로 지은 방에는 창문도 없고 냉방시설도 없었지만 불만을 말하시는 분은 한 분도 없이 단정한 모습으로 서로 옷매무새를 고쳐주었다. 이분들의 표정에는 힘들었던 삶의 무게에 결코 주눅들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온 고운 모습이 깃들어 있었다.
예전으로 거슬러 가면 전신 영정이 눈에 띄는 시기가 있다. 왕이나 선비들의 초상화에서 그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상반신 사진을 찍으며 전신 사진의 느낌은 어떨까 해서 같이 찍어보았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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