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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산행] 전통주로 표현한 사계.. 트럼프도 맛본 '만찬주'

글 손수원 기자 입력 2021. 05. 14. 09:33 수정 2021. 05. 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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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전통누룩으로 빚은 4가지 술..
풍정사계+청주 상당산성

최근 우리의 전통술인 ‘막걸리’를 빚는 작업과 의례 등을 포괄한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국민이 직접 제안한 것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첫 사례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제 막걸리도 김치나 장醬처럼 명실상부 우리의 전통문화로 인정받은 셈이다.

우리 전통주의 맥을 이어가고자 노력하는 이가 있다. 전통술방 ‘화양和釀’의 이한상(65) 대표다. 그는 직접 전통누룩을 빚어 옛날 방식으로 술을 만든다. 고문헌을 따라 전통주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기초로 ‘화양’만의 술을 빚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풍정사계楓井四季-춘하추동春夏秋冬’이다.

18년 동안 사진관을 운영하다 술 빚는 일을 새로운 업으로 삼은 이한상 대표. 전통주를 제대로 계승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사진관 운영하다 전통주 매력에 빠져

전통술방 ‘화양’은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풍정마을에 위치해 있다. ‘풍정楓井’이란 단풍나무 우물을 일컫는다. 옛날에는 단풍나무를 ‘싣나무’라 불렀다. 과거 이 마을 우물가에는 싣나무가 자라고 있어 ‘시드물(싣+우물)마을’로 불렸다. 시드물을 한자로 하니 ‘풍정’이 되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젊은 시절 잠시 타향살이를 하고 청주 시내에서 사진관을 했던 시간 외에는 고향을 오래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이 대표가 자신의 술에 ‘풍정’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어린 시절 보았던 고향 마을을 추억하기 위함이리라. 여기에 4가지 술을 만들어 각각 ‘춘’ ‘하’ ‘추’ ‘동’의 사계를 붙였다.

“‘춘’은 약주藥酒(15%)입니다. 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었을 때 할미꽃, 제비꽃을 초대해서 함께 마시고 싶은 술입니다. ‘하’는 과하주過夏酒(18%)입니다. 이름처럼 정자에 앉아 찬 샘에 담가 놓았던 맑은 술을 꺼내 매미소리를 들으며 마시고 싶은 술입니다. ‘추’는 탁주濁酒(12%)입니다. 누렇게 익은 벼를 베다 논두렁에 앉아 추수의 기쁨을 함께하며 마시는 술입니다. 마지막 ‘동’은 소주燒酒(25%, 42%)입니다. 눈발이 매섭게 파고드는 날 힘겹게 산에 오른 후, 산장 안에서 라면 끓여 놓고 피어오르는 김을 안주삼아 마시고 싶은 술입니다.”

네 가지 술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기가 막히다. 알고 보니 이 대표는 국문학을 전공한 사진가였다. 그는 포항과 대전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마흔 살 무렵 청주로 돌아와 사진관을 열었다.

“당시엔 사진관이 엄청 잘되었죠. 그때는 몰랐죠. 제가 술을 빚을지는.”

2000년대 들어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했다. 사람들이 사진관 드나드는 일이 훨씬 줄어들었다. 사진관은 저무는 해가 되었다. 그는 다른 길을 택하기로 했다. 세미나 참석 차 경주에 들렀다가 교동법주 한 병을 산 것이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 술을 잘 마시지는 못했지만 백합향이 감도는 교동법주의 맛이 혀끝에 오래 맴돌았다. 문득 이런 술을 빚고 싶어졌다.

“전주에 있는 전통술박물관으로 술을 배우러 다녔어요. 거기서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을 만났고, 본격적으로 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사진관을 운영하며 10주간 술 빚기 과정을 이수했다. 그게 2006년이었다. 이 대표는 혼자 술을 빚을 수 있게 되면서 누룩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전통주를 만드는 데 당연히 우리 누룩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스승님이 ‘술은 누룩놀음’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도 내 누룩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떤 누룩을 나의 평생 누룩으로 쓸 것이냐 고심했죠. 박록담 소장이 쓴 <버선발로 디딘 누룩>이란 책에서 ‘향온곡香醞麯’이란 누룩을 봤어요.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향온곡은 녹두를 넣어 만든 누룩이다. 녹두는 알코올을 해독하고 숙취를 해소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향온곡은 예부터 내의원(조선시대 궁정병원)에서 만들어 향온주香醞酒를 빚는 데 썼다. 이 대표가 만드는 향온곡은 녹두와 밀을 1:9로 섞어 만든다.

“초복과 중복 사이에 누룩을 디뎌서 옥상 처마 밑에 걸어놓고 띄웁니다. 양조장 위치가 아주 기가 막힙니다. 7월 한 달간은 습기 80~90%에 25~30℃의 기온을 유지하고, 8월이 되면 습기가 30~60% 밑으로 떨어집니다. 걸어놓기만 해도 자연이 알아서 좋은 누룩을 만들어 주는 셈이지요.”

잘 띄운 누룩은 잘게 빻아 낮에는 햇볕에 말리고, 밤에는 이슬을 맞게 하며 법제한다. 쉽게 말해 누룩을 자외선으로 소독, 살균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이 대표는 양조장 옥상에 누룩을 널어 법제한다.

남쪽을 향해 널어두면 하루 종일 해를 쪼일 수 있고,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위치해 있어 따로 법제실을 두지 않아도 될 만큼 자연조건이 좋다. 누룩을 여러 번 뒤적거리며 골고루 말리는 과정도 빠지지 않는다. 얼핏 쉬워 보이는 과정이지만 이 대표가 이렇게 자신의 누룩을 완성하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보통 정성으로는 이루지 못할 일이다.

이 대표는 전통누룩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풍정사계-춘’, 한미정상회담 만찬주로 선정

이 대표의 누룩으로 처음 빚은 술이 2015년 1월에 나온 ‘풍정사계-춘’이다. 약주인 ‘춘’은 찹쌀, 누룩, 물만으로 만들어 100일 동안 숙성시켜 완성된다. ‘춘’뿐만 아니라 풍정사계 4종 술은 모두 100일주다. 그만큼 오래 기다려 맛보는 술이다.

“녹두가 들어간 향온곡을 쓰다 보니 약주인 ‘춘’의 색깔은 황금빛이 돕니다.”

노란 색깔이 달콤한 술 맛을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막상 입에 털어 마시니 단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입 안에 맴도는 묵직함이 가볍지 않다. 맑다. 원래 ‘청주淸酒’라고 불러야 하는 약주의 특색이 그대로 느껴진다. 코로 느껴지는 꽃향도 잔잔하게 어우러진다. 이런 연유로 ‘춘’은 ‘화이트와인 같은 느낌이 든다’고 평가하는 이가 많다.

이렇다보니 외국인 입맛에도 잘 맞아 2017년 11월 열린 한미정상회담 공식 만찬주로 선정되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건배 제의에 사용되기도 했다.

“거래처에서 샘플로 3병을 가져간 뒤 40병을 사갔는데, 그게 청와대로 들어가는지는 몰랐었죠. 정상회담 만찬주로 쓰인 것도 몰랐어요. 정상회담 후 갑자기 주문전화가 빗발쳐서 알게 되었죠. 하하.”

‘춘’의 경력은 화려하다. 2016년에는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대한민국 주류 대상을 받았다. 한미정상회담 만찬주에 이어 2019년에는 한국-벨기에 정상회담에서 만찬주로 선정되었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었지만, 전통주를 제대로 계승하려는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더욱 기뻤습니다.”

전통주 만드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 술을 발효하는 데에도 항아리를 사용한다.

이 대표는 ‘춘’에 이어 동·추·하를 차례대로 만들었다. 이런 소규모 양조장에서 4가지의 술을 만드는 게 힘들 법도 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약주를 제대로 만들면 나머지 술은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약주를 증류하면 소주(동)가 되고 막 거르면 탁주(추)가 됩니다. 약주에 소주를 부어 숙성시키면 과하주(하)가 됩니다.”

풍정사계 4가지 술은 이 대표만의 누룩으로 만든 ‘누룩 술’이다. 요즘은 누룩 냄새를 없애기 위해 누룩의 양을 줄이고 대신 입국(일본식 개량 누룩)의 양을 늘린다. 이렇게 되면 발효가 잘 되지 않아 결국은 다른 성분이나 효모를 첨가해야 한다. 이 대표는 “‘우리 술’이라고 하려면 전통누룩을 써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누룩을 제대로 띄우면 향기로운 누룩향이 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퀴퀴한 ‘누룩취’와는 달라요. 누룩을 제대로 만들 생각을 해야지요.”

풍정사계의 모든 술은 기본적으로 단맛이 덜하고 깔끔하다. 감미료는 일절 쓰지 않으니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풍정사계는 밑술을 만들 때 설기(떡)로 한다. 보통 고두밥으로 밑술을 하면 술 맛이 강해진다. 반면 죽으로 밑술을 하면 맛이 부드러워지지만 단맛이 많이 난다. 때문에 이 대표는 고두밥과 죽의 중간 단계인 떡을 선택한 것이다. 손이 훨씬 많이 가지만 기꺼이 맛의 조화를 선택한 것이다.

“술방 이름인 ‘화양’은 1554년 어숙권이 만든 백과사전인 <고사촬요攷事撮要>의 ‘내국향온법內局香醞法’에 나오는 ‘조화양지調和釀之’의 준말입니다. 찹쌀과 직접 디딘 누룩(향온곡)을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조화롭게 섞어 술을 빚는다는 뜻입니다. 술맛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향기롭고 조화로운 술이 빚어진다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황금빛을 내는 약주인 풍정사계 춘(오른쪽)과 탁주인 풍정사계 추.

전통주 계승 이바지할 것

사진관 문을 닫고 양조장을 열어 제대로 된 술을 만들어 내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2년 동안 술을 모조리 망쳐 애써 받은 술 면허를 반납하기도 했고, 그가 술 빚는 방법에 대해 회의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단 한 번도 이 일에 뛰어든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런 술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전통을 계승하고자 남들 안 하는 누룩 술을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지요. 경제적 이익보다 전통주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은 게 바람입니다.”

풍정사계는 현재 이 대표와 아내 이혜영씨가 만들고 있다. 일부 과정이 자동화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술은 일일이 사람 손을 타야 하는 것이 더 많다. 세 자녀가 부모의 일을 돕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초정약수터 근처에 제2양조장을 지었다. 이곳에서는 소주만 제조하는데, 이 대표는 숙성 소주를 만들 계획이다. 누룩 술만큼이나 숙성소주도 큰 도전이다.

“소주는 즉시 내려 마시거나 약제를 첨가해 마시는 식이었습니다. 숙성소주란 개념이 없었지요. 그걸 해보려 합니다. 지금 시험단계인데 첫 숙성소주가 나와 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실패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일단 해봐야 후대에 남길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 대표는 전통주의 선구자이자 계승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를 바란다. 세상 풍경과 사람의 모습의 사진에 남기던 그가 이제는 우리의 전통주를 역사 속에 남기려 한다.

정통술방 화양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어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풍정사계 4종 시음과 이양주 체험, 술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현재는 코로나 여파로 잠시 중단한 상태다.

풍정사계 술은 매달 첫째, 셋째 토요일 오전 10시 홈페이지(www.hwayang.co.kr)에서 선착순으로 주문 받는다. 판매량은 그때마다 다르다. 대기자가 많아 거의 몇 시간 안에 품절된다. 가격 풍정사계 춘(500㎖, 3만 원), 하(500㎖, 3만5,000원), 추(500㎖, 1만5,000원), 동(375㎖, 25% 2만 원, 42% 3만5000원). 문의 043-214-9424.

본 기사는 월간산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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