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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메모리즈㉙] 향년 70 '청년' 이춘연과 하정우의 출근

홍종선 입력 2021. 05. 14. 09:55 수정 2021. 06. 1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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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리울 미소, 수고를 마다 않던 발걸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부산국제영화제 SNS

지난 11일 고인이 된 이춘연 씨네2000 대표는 한국영화계의 ‘대부’로 일했고(action) ‘맏형’으로 사람을 대했다(reaction).


스크린쿼터가 축소되어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가 73일 잘려나가고 146일이 된 것에 영화인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떨쳐 일어섰을 때, 스크린쿼터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춘연 대표는 직함만 달지 않았다. 146회 이뤄진 1인 시위의 첫날 배우 안성기가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도, 마지막 날 임권택 감독이 146번째 주자로 나섰을 때도 이춘연 대표는 그 곁에 있었다. 마음으로 움직이는 분이었고, 몸으로 행동하는 분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세월호 구조과정의 일부를 담은 영화 ‘다이빙 벨’의 상영을 둘러싸고 외압이 가해진 것을 시작으로 격랑에 휘말려 위기에 처했을 때,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져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가 영화제의 자율성을 계속해서 부정한다면 전면 BIFF 참가 거부”를 선언할 때도 당연히 앞장섰다. 한국영화계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영화인들은 그를 찾았고 어김없이 달려갔고, 찾기 전에 먼저 팔을 걷어붙이는 게 다반사였다.


우리나라 어느 구석에서 열리든 크고 작은 영화제라면 어디나, 영화인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이면 가는 곳마다 생전의 이춘연 대표를 볼 수 있었다. 영화계 큰 별이 지면 상주마냥 영화인들을 맞이하고 뒷정리를 마다하지 않던 그가 영정 속에서 눈에 익은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오늘이 실감 나지 않는다.


생전에 씨네2000 사무실을 찾은 적이 있다.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 개봉을 즈음해서다. 이춘연 대표는 한 가지 자부심과 고마움을 드러냈다.


자부심은 ‘여고괴담’ 시리즈에 관한 것이었다. 1998년 ‘여고괴담’을 시작으로 2020년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에 이르기까지 20년이 넘도록 연작을 낸 공포영화다. 관람객과 누리꾼 사이에서 “편마다 재미있다”는 평을 듣는 영화이고, 최장·최다 시리즈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시리즈 힘들다고들 말해요. 그걸 깨고 싶었어요. 할리우드처럼 대작 히어로물로는 힘들고, 우리의 ‘한’(恨)이라는 정서를 축으로 하면 어떨까, 승부처가 있다고 생각했죠. 예전에서 TV에서 드라마 ‘전설의 고향’ 많이들 좋아했잖아요. 그 여인들의 오뉴월 서리 같은 한과 한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녹여 주는 게 있어. 누구나 억울하고 속상한 사연이 있는데, 내 얘기를 들어주고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는 것에서 위안도 받고 등 두드려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거든요. 카타르시스죠.”


“흥행이 잘된 것도 있고 기대만큼 못한 것도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지금까지 다섯 편을 만들었고, 그러다 빚은 산더미에 사무실 월세 신세가 됐지만요(웃음). 아마 다른 영화 잘되면 6편, 7편 계속 만들 겁니다. 저한테는 사명 같은 거예요. 제작사에 대표작이 있다, 시리즈를 이어간다는 측면도 있지만, 배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도약의 기회를 주는 부분도 의미를 두고 있어요. ‘여고괴담’ 시리즈를 통해 배우의 꿈을 이루고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배우들이 많은데, 그게 그들만이 아니라 저를 포함해 제작진도 다 같이 ‘열정’으로 해온 거죠. 그래서, 연작이 가능했다 싶습니다.”


실제로 ‘여고괴담’ 시리즈는 많은 배우의 등용문이 됐고, 스타의 요람이 되었다. 최강희, 김규리, 김규리(당시 김민선), 박진희, 박예진, 공효진, 이영진, 송지효, 조안, 김옥빈, 서지혜, 차예련, 오연서, 정경아, 손은서 등이 대표적이다. 1편의 이미연과 김유석을 비롯해, 4편과 6편의 김서형, 6편의 권해효 등 중견 배우들이 큰 힘을 보탰다.


신인 양성은 ‘여고괴담’들을 통해서만이 아니었다. 감독 지망생들을 세상으로 이어주는 아시아나단편영화제의 경우, 2003년 시작부터 20년 가까이 함께해 왔다. 작고하시던 그 날도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가 귀가해 자택 현관에서 쓰러졌고, 가족이 발견했을 때 자신의 몸 상태를 얘기할 정도는 됐으나 119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 중 안타깝게도 숨을 거뒀다.


영화인장으로 치러지고 있는 장례의 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지난 2012년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서 디렉팅, 프로듀싱, 스크린라이팅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자리에 취임했을 때도 이춘연 대표는 교수진으로 참여했다. 후배 영화인을 키우는 일에 각별했다. 조감독, 시나리오작가, 배우…누구든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는 어른이었다. 한국영화계에서의 위상은 ‘대부’였지만, 곁을 내주는 모습에는 권위 없고 다감한 ‘맏형’이었다.


“아, 빚이요? 얼마인지 말해 뭐해요. 많습니다, 아주 많아요. 전세면 다달이 편켔지만, 갚을 수 있는 한 최대한 갚고 남긴 빚이에요. 여기 건물주 분이 너무 좋으세요. 나가라 소리 없이 보증금도 빼주셨고, 돈 많이 벌어서 영화사 건물로 하라고 말하세요. 덕담이죠. 저를 믿고 변제를 기다려 주시는 분들도 그렇고, 세상이 각박한 것 같아도 좋은 분들 많습니다. 감사한 분들이죠.”


“요즘 고마운 사람이 또 있어요. 하정웁니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 신인감독 영화인데 충무로 블루칩으로 불리는 배우가 기꺼이 출연했잖아요. 어디서 들었는지 ‘빚 갚으시고 안정적으로 영화사 사무실이 마련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더라고요(하하). 말뿐이어도 기분 좋은 일인데, 촬영 시작 전부터 매일 여기에 출근하는 거예요, 스태프인지 배우인지 헷갈릴 만큼. 덕분에 같이 일할 사람들과 안면도 미리 트고, 영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고, 좋았습니다.”


하정우는 장례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후일, 영화 관련 어느 자리에서 이춘연 대표를 우연히 만났을 때, 잠시 스치는 가운데도 대뜸 물었다. “그래서, 사무실은 어떻게 됐어요? 이제 영화사 것이 됐나요?”.


“아휴, 무슨 말씀. 빚 갚았습니다, 그걸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죠. 영화제작사 대표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 있어요.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럴 여건만 되면 대만족인 겁니다. 그건 경제력이 충분하다는 뜻만이 아니라 금전 여건을 비롯해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사람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나를 믿고 모이는 건데, 그럼 부자 아닙니까.”


앞에 ‘고’(故)를 붙이고 싶지 않은 이춘연 대표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 부자’였다. 친한 지인은 아니지만 오래도록 보아온 모습이 그렇다. 향년 70, 세상에 태어나 70년의 시간을 살았다.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더 길게 이 지구에 머문다 해도 우리에게 주는 ‘덕’이 클 인물이었다. 그 호방함이 100세는 거뜬할 것 같았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음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눈이 호랑이처럼 생겨 강해 보이지만 눈이 보이지 않게 만면에 주름을 만들며 웃는 모습이 오래도록 남을 분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달려가고, 아닌 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말뿐 아니라 행동하며 산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그 길을 호쾌하게 이을 ‘영화계 맏형’이 또 있을까. 내일(2021년 5월 15일)이면 보내드려야 한다. 어쩐지, 어디선가, 한국영화의 오늘을 비추는 별이 될 것 같은 느낌은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일 뿐일는지.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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