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기본법 제정 통한 '스포츠권' 확립 방안

입력 2021. 5. 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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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구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위원

들어가며

2018 체육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생활체육 참여율이 70%에 육박할 만큼 스포츠를 생활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두 차례의 올림픽을 포함한 세계 4대 스포츠경기대회를 모두 개최했으며, 누구나 인정하는 스포츠강국이 되었다. 스포츠산업도 연간 시장 규모가 75조 원에 달하는 주요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스포츠가 다른 분야에 비해 전근대적이며 문화적 지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까지 스포츠현장에서는 기본적인 인권이 침해되고 있으며, 지난해 발생한 실업팀 선수의 죽음은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상명하복의 문화도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장애인, 노인, 다문화가정 아동 등 사회적 약자의 스포츠참여 여건은 개선이 더 필요하다.

지난 30년간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국민의 권리는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고 노동권, 여성권, 환경권 등 새로운 기본권이 속속 등장하였다. 이들 기본권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그 가치와 역할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법적 구속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권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학술적 수준에 머물러 있고 사회적 공론화 과정은 충분하지 않다.

최근 들어 기존의 국가주의적 스포츠 체계(스포츠의 모든 가치를 국위선양에 두고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으로 평가하는 승리 지상주의와 상업주의)에서 벗어나 스포츠를 개인의 기본권적 가치로 인식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국가주의적 스포츠 체계가 점차 한계를 드러내면서, 국위선양의 수단이었던 스포츠를 이제는 국민 스스로 누려야 할 능동적이고 기본적인 가치로 보는 시각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스포츠인권헌장’공표는 스포츠에 대한 국가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시점에서 관련 법의 제·개정을 통해 스포츠권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권 개념

인간의 기본권은 자유권을 확보하고 강화하는 데서 출발했다. 스포츠권 또한 기본적으로 참여에 있어 부당하게 자유를 제한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자유권에서 출발했다. 스포츠권은 자유권에 이어 점차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한 삶(행복추구권)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사회권으로 확대되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생활체육 참여가 일상화되면서 스포츠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필수적인 활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사회권적 기본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누구나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해서 차별받지 않을 평등권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스포츠권은 자유권, 사회권, 평등권을 아우르면서 국민이 정부에 법적, 제도적 권리를 보장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기본권으로 발전하였다.


스포츠권의 개념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스포츠를 어떻게 정의하는가?”가 중요하다. 스포츠를 정의하는 방식에 따라 스포츠권의 개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스포츠를 ‘경쟁과 유희성을 가진 신체운동경기의 총칭’으로 규정한다면 스포츠권의 주체는 스포츠경기를 하는 체육인으로 한정되게 된다.

그러나 스포츠를 ‘인간이 자발적으로 자아실현, 건강,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신체활동이자 문화행위의 총체’로 정의한다면 스포츠는 개별적인 스포츠경기 종목뿐만 아니라 인간의 신체적 활동, 신체를 통한 문화까지 확대된다. 따라서 스포츠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보편적으로 모든 국민들이 다양한 체육활동 참여의 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스포츠권은 학자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스포츠를 향유하기 위해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 권리’로 규정할 수 있다. 스포츠권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의지로 스포츠를 향유하는 자유권 측면과 건강증진, 여가선용, 자아실현, 행복추구 등 사회권 측면을 모두 포함하는 기본권이며 인권의 한 영역이 되는 것이다.

스포츠권의 법적 근거

현재 대한민국 헌법에는 스포츠권을 명확히 규정한 내용은 없다. 그러나 헌법에 나열되어 있는 기본권 안에 스포츠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헌법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헌법 제10조)의 보장, 신체적 자유(제12조), 직업선택의 자유(제15조), 교육받을 권리(제31조), 근로의 권리(제32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보건에 관한 권리(제36조) 등이 명시되어 있어 이를 스포츠권의 헌법적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반면, 유네스코(UNESCO), 유렵평의회(Council of Europe), 국제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등의 국제 협약 및 규정에서는 스포츠권이 자주 언급된다. 1978년 제정된 유네스코의 체육교육, 신체활동, 스포츠에 관한 국제헌장(The International Charter of Physical Education, Physical Activity and Sport)에서 ‘모든 사람은 스포츠에서 기본권을 갖는다’(헌장 제1.1조)고 규정하고 있다. 1992년 유럽평의회에서 채택된 유럽 스포츠헌장(European Sports Charter)에서는 ‘모든 사람은 스포츠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스포츠는 윤리적 기반과 인간 존엄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 헌장 제4조 또한 ‘스포츠 활동은 인간의 권리이며 모든 인간은 인종, 종교, 정치, 성별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스포츠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스포츠권의 법제화 필요성

스포츠권을 공론화하여 법률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것은 스포츠참여를 활성화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의 가치를 높이는 정책적 대안을 모색한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 스포츠권의 법제화로 스포츠는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으로 변화하게 된다. 스포츠를 복지차원의 시혜 개념이 아닌 개인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는 것이다. 스포츠권의 법제화는 스포츠를 국민들의 삶에 있어 향유해야 하는 권리로 인정하여 그 권리를 국가정책을 통해서 실현할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은 스포츠권의 법제화는 스포츠정책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체육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스포츠가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에 있어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데 머물지 않고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과 같은 것이다. 대한민국 체육 100년을 기점으로 스포츠권의 법제화를 과감하게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스포츠권의 법제화는 단순히 법률적인 검토나 인권에 대한 일반론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기본권으로서 스포츠를 보호하고 발전시키며 모든 국민이 스포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책무를 진다는 것이다. 스포츠권의 법제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사회적 합의 또한 필요하겠지만 국민의 권리영역을 넓히고, 인권정책의 외연 확장과 내실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스포츠기본법의 제정

현재 체육관련 법률은 국민체육진흥법을 중심으로 15개 내외가 있지만 스포츠권을 담고 있는 법률은 없다. 따라서 스포츠권의 가치와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 ‘스포츠기본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이 법은 스포츠권을 명시하고 체육정책의 방향과 범위를 결정하게 되는 모법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스포츠기본법을 중심으로 스포츠진흥법, 스포츠복지법, 스포츠산업법, 스포츠시설법 및 국제경기지원법 등이 자리 잡게 된다면 체육분야에서도 법체계의 확립이 가능하다. 현재의 개별적이고 분절적인 스포츠 관련 법률들을 체계화하기 위해서도 스포츠기본법의 제정은 중요하다.

이 법은 국가가 스포츠의 중요한 가치를 인식하고 국가 스포츠정책의 이념을 규정하며 목표점과 지향점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스포츠기본법 1조에 스포츠를 권리로 명확히 선언하고 스포츠가 자유권과 평등권을 넘어서 사회권적인 내용임을 명시하는 것이 타당하다. 당연히 스포츠를 권리로서 선언적으로 규정할 뿐만 아니라 스포츠에서의 학습권, 평등과 차별금지, 참여권, 접근권, 노동권, 환경권 등 다양한 가치와 기능에 대한 규정과 이념도 제시하여야 한다. 또한 사회 변화에 따라 인권보호와 증진, 윤리적 공정성 확보, 도핑방지도 포함시켜야 한다.

또한 스포츠 가치 확산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법을 통해 국가는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공동체 의식 강화와 다양한 갈등 조정 역할을 적극 활용하여 스포츠와 관련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법에는 소극적인 스포츠 향유권을 넘어서 주체적 스포츠참여권도 포함시켜야 한다. 스포츠참여권은 스포츠활동과 스포츠정책 결정과정에서 주체적 참여를 보장하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이다. 스포츠 인권침해에 대한 적극적인 청구권 확립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법에는 국가 균형 발전, 소외계층 포용 등 국가통합과 치유가 필요한 영역에서 스포츠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권리들을 포함시켜야 한다.

마치며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 스포츠를 기본권으로 인식하는 데 한계 요소가 존재한다. 첫째, 다른 기본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부차적 권리라는 편견이다. 둘째, 스포츠는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 개인의 기본권이라기보다는 국가가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복지라는 인식이다. 마지막으로 스포츠권은 체육을 생업으로 하는 체육인을 위한 한정된 권리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스포츠권의 확립은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성숙한 민주사회인지를 보여주는 시금석과 같다. 스포츠를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법제화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가 스포츠를 중요한 정책의제로 인정한다는 증거이며 정책실천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스포츠기본법 제정을 통해 스포츠권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대한민국 스포츠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기고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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