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 10만 원 아끼려다 집안 풍비박산 났다"

김종훈 입력 2021. 5. 1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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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선호 대책위 및 민주노총, '책임자 온전히 처벌하는 시행령 제정' 요구

[김종훈, 이희훈 기자]

 평택항에서 일하다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압사한 고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아들의 빈소에 서 있다.
ⓒ 이희훈
 
"고작 10만 원이다."

평택항에서 일하다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한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14일 아들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안중 백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신호수 한 명당 일당이 얼마인지 아냐. 한 사람만 세워놨으면 저희 집 자식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절규하듯 외친 말이다. 아들의 빈소를 23일째 유지하고 있는 그의 눈빛엔 분노가 차 있었다.

"저는 아이 하나를 잃은 게 아니다. 이 아이가 제 곁을 떠난 순간 우리 집, 한 가정은 풍비박산 났다. 이 아픔과 고통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가족들의 앞날을 사업주는 생각해 봤나. 이 고통을 평생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한다."

이날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은 고 이선호씨 장례식장 앞에서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기업살인 막아내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을 요구하며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선호씨 부친 "원청의 잘못이다"
 
 평택항에서 일하다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압사한 고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평택항에서 일하다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압사한 고 이선호씨의 산재사망 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이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중대재해(기업)철벌법 시행령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전날인 13일 문재인 대통령을 아들의 빈소에서 만난 아버지 이재훈씨는 처음부터 강경한 목소리로 "이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업주가 비용절감을 위해 인건비를 줄인다고 법에서 정한 적정 안전요원을 배치하지 않아서"라면서 "누가 봐도 명백한 원청의 잘못이다. 고작 돈 10만 원 아낀다고 한 가정을 풍비박산 냈다. 사업주를 비롯해 관리감독에 있는 대한민국 공무원들 정치하는 분들 대오 각성하라"라고 일갈했다.

아버지 이씨의 말대로 아들 선호씨가 사고를 당했을 당시, 안전관리자와 신호수 중 한 명만 존재했어도 사고를 막았을지 모른다.  

지난 4월 22일 이선호씨는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부두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바닥에 있는 작은 나뭇조각 등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다 컨테이너 뒷부분 날개에 깔려 숨졌다. 당시 이씨 위쪽에 있던 날개는 불량상태였지만, 현장에는 안전관리자와 신호수가 부재했다. 동방은 이선호씨에게 안전모 등 안전장구 일체를 지급하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 38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중량물 등을 취급하거나 그 밖의 작업을 할 때 위험으로 인한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아버지 이씨는 "이 문제 진실은 회사가 '많은 인력 필요없다', '인건비 줄이라'면서 기존의 하던 일을 다 엎어버리고 회사의 논리대로 아들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컨테이너) 날개 접는 일에 동원해 발생한 것"이라면서 "기업주 여러분 정말 이러시면 안 된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앞서 12일 오후 원청회사인 동방은 평택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가족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삶을 지탱하는 희망이었던 청년이 평택항에서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 유가족의 고통과 슬픔 앞에 정중한 위로와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사과했다. 그러나 동방의 사과는 유족과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져 유족과 대책위의 반발을 샀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는 죽어도 괜찮나?"
 
 평택항에서 일하다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압사한 고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은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 이희훈
 
공동기자현장에는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도 함께했다. 양 위원장은 역시 아버지 이재훈씨처럼 분노에 찬 목소리로 "지난 2020년 겨울 산재피해 유가족들의 절규로 법안이 마련됐지만, 정치인과 노동부에 의해 법은 누더기가 됐다. 그리고 이렇게 잔인한 죽음이 다시 반복됐다"면서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는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라고 외쳤다.

"선호씨 아버님과 김태규씨 누나와 엄마, 김용균의 동료가 언제까지 거리를 돌아다녀야 하나. 책임자들이 명확히 책임져야, 원인이 명확히 규명돼야 반복되는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책임 있는 자들이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바로 잡아야 한다. 언제까지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죽어도 괜찮나?"

지난 1월 제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망자 1명 이상이 발생하면, 해당 법인·기관에 50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또 부상·질병자가 발생하면 10억 원 이하 벌금을 매기게 했다. 그러나 '벌금형의 하한'은 심사과정에서 삭제됐다.

50인 미만의 사업장 역시 3년 동안 법 적용이 제외됐다. 선호씨가 속한 하청 업체 역시 50인 미만의 사업장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처음부터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이날 민주노총과 대책위가 한 목소리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을 빈틈없이 제정해야 한다"면서 "원청 경영책임자의 처벌, 공무원 처벌조항,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과 배제를 걷어내고 인과관계 추정의 원칙이 포함되도록 개정해야 한다"라고 요구한 이유다.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서 평택항에서 일하다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압사한 고 이선호씨의 빈소에 조문객이 묵념을 하고 있다.
ⓒ 이희훈
  
 평택항에서 일하다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압사한 고 이선호씨의 빈소
ⓒ 이희훈
 
13일 오후 이선호씨의 빈소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드렸는데 송구스럽다"면서 "국가시설 안에서 일어난 사고인데 사전에 안전관리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사후 조치들도 미흡한 점들이 많았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산업안전을 더 살피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했다.

이에 선호씨 아버지 이재훈씨는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있어야겠지만, 제발 이제는 이런 사고를 끝내야 한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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