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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넘어북한] 감시부터 처형까지..옛 소련 KGB 능가하는 北 국가보위성

박수성 입력 2021. 05. 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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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체제 수호 최전선 '국가보위성'
초법적 권한으로 반체제 요소 차단
감시, 해외정보 수집 및 공작, 처형까지 활동 다양
직간접 감시 활동 최소100만~최대200만 명 추산
정치범 수용소, 공개 처형 등 공포정치로 EU 제재 추가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세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조밀한 주민 감시망을 운영하는 조직이 북한의 국가보위성입니다. <창 넘어 북한>에서는 3대 세습체제가 유지되고, 코로나19로 국경을 완전히 차단하는 등 북한만의 특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어 국가보위성 편을 준비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뉴시스 북한팀 박수성입니다.

오늘은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에 이어 북한 조직 탐구 제3탄 국가보위성 편을 준비했습니다.

눈앞의 현안이 아니어서 딱딱할 수 있겠습니다만 북한의 3대 세습체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코로나19를 이유로 지금처럼 국경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등 북한만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밀리에 활동하는 조직이어서 구성과 기능, 활동 내역이 상세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각종 자료들을 바탕으로 준비했습니다.

Point 1. 반체제 요소 감시하는 초법적 정보기관

모든 국가가 안보와 대외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한다는 명목으로 정보기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엔 CIA, 러시아엔 FSB, 중국엔 국가안전부, 우리나라엔 NIS가 있습니다.

과거 공산국가의 정보기관들도 비슷한 기능을 담당했습니다만 서방의 정보기관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대외 정보활동보다 국내 주민 감시활동이 훨씬 더 중요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면에서 악명 높았던 대표적 정보기관으로 구소련의 KGB와 동독의 슈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정권 안보를 위해 반체제 세력을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불순세력에 대한 수사권은 물론 자의적으로 처벌하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KGB나 슈타지는 공산권 붕괴와 함께 사라졌지만 그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더 치밀하게 주민을 감시하는, 사실상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조직이 바로 북한의 국가보위성입니다.

북한 체제 수호의 최전선에 있는 국가보위성의 권한은 막강합니다.

김정일 시대엔 김정일이 직접 국가안전보위부장을 맡았습니다. 김정일은 노동당 총비서 겸 조직비서 겸 부장직을 겸하면서 보위부장도 겸했지요. 그만큼 보위부의 권능을 중요하게 생각한 겁니다.

최고 권력자가 수장인 국가보위성은 도청, 감청, 미행은 물론 법적 절차 없이 용의자를 구속하고, 재판 없이 처단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합니다.

북한 국가보위성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국가보위성의 창시자는 김정일입니다. 김정일은 1973년 후계자로 확정된 직후 우리의 경찰과 동사무소 조직을 합한 기능을 하는 사회안전부에서 ‘정치보위’ 부문만 분리해 국가정치보위부라는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는 등 분단 이래 처음으로 남북한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주민들의 사상이 해이해지는 것을 막는 한편 우리 사회에 대한 정보 수집을 강화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국가정치보위부는 1980년대 말까지 북한 주민 동향을 파악하고 북한을 방문한 외부인을 감시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992년 8월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뒤부터는 해외정보 수집과 대남 및 해외 공작까지 활동 범위를 확대했습니다.

이와 관련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을 성사시킨 Mr. X라는 인물도 본인은 국방위원회 소속이라고 밝혔지만 실은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이었음이 뒤에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독극물로 사망한 일은 국가보위부가 해외에서의 범죄행위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1993년 국가안전보위부로, 2016년 국가보위성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Point 2. 보위원 1명이 주민 25명을? 거미줄 감시

국가보위성은 어떻게 활동할까요?

독일 통일 뒤 동독 슈타지가 만든 방대한 주민 감시 비밀문서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이들 문서는 외국을 상대로 한 정보 활동 등 민감한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어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슈타지의 조직 구성 등 활동 범위를 추정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당시 문서를 직접 확인했던 사람들에 의해 공개됐습니다. 이에 따르면 슈타지 조직원 수가 동독이 붕괴한 1989년 9만1천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동독 전체 인구가 1,640만 명 정도여서 1명의 슈타지 요원이 대략 주민 180명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같은 시기 구소련 KGB가 1인당 595명, 루마니아 세쿠리타테(Securitate)가 최소 582명~최대 1,553명, 폴란드 SB가 1,574명을 담당했던 것과 비교할 때, 슈타지의 주민 감시체계가 훨씬 더 조밀했음을 보여줍니다.

동독 출신으로 독일 연방군역사연구소에서 일한 벤츠케 박사는 동독에 이렇게 많은 비밀 요원이 있었던 이유로 동서독 간 왕래가 많았고 방송과 통신이 개방돼 있는 등 동서독 주민들 사이의 접촉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북한은 어떨까요?

국가안전보위부 출신의 윤대일씨는 1994년 김일성 전 주석의 사망을 시작으로 북한 내 민심이 혼란스럽고 체제 불만이 확산됐고, 그래서 김정일은 당시 불순세력 색출과 검거에 국가안전보위부의 역량을 집중시켰다고 증언했습니다.

사상동향을 매일 보고하고, 주민 정보사업 즉 감시를 강화하며, 국경을 철저히 봉쇄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명령서가 하달됐다고 합니다.

또 방첩, 국경경비, 대내외 정보 수집과 공작, 반당 및 반국가사범 관리 등으로 역할이 넓어지고 권한도 더욱 강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독과 비교할 때 북한은 외부세계와 교류가 크게 없는 수준인데도 보위부의 조직과 권한은 갈수록 확대된 겁니다.

국가보위성은 북한의 모든 조직에 부서와 요원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도와 직할시, 시와 구역, 구역과 군의 각 행정단위별로 보위부가 구성돼 있고, 말단 행정조직인 리에도 보위지도원이 상주합니다. 보통 한 명의 보위지도원이 지역 주민이 속한 인민반 서너 개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리 단위의 보위부원 1명이 20-30명의 정보원을 고용하고, 1명의 정보원은 다시 20여 명의 주민을 감시한다고 합니다.

국가보위성의 정식 직원 수가 최소 5만~최대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총인구가 약 2,500만 명이니 보위부원 1명이 감시하는 주민이 최대 25명을 넘지 않는 것으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또 보위부원 1인당 약 20명의 정보원을 운영하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100만~최대 200만 명이 보위성에 직간접으로 소속돼 주민을 감시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180명을 담당했던 슈타지보다 최대 7,8배 이상 더 조밀한 주민 감시망을 운영하는 셈입니다.

특히 리 단위가 아닌 모든 다른 기관, 기업소, 군대는 물론 북한 사람들이 파견돼 있는 해외까지 보위원을 파견해 동태를 감시한다고 합니다.

결국 북한 주민들 가운데 북한 국내에 있든, 해외에 있든 보위성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Point 3. 공포정치

북한의 공포정치는 정치범 수용소 운영, 공개 처형 등 극단적인 인권침해적 방법을 통해 구현됩니다.

일반 주민만이 아니라 당과 정부, 군대의 주요 간부들도 피할 수 없습니다. 소소한 일상적 일탈에서부터 체제문란까지 모든 사안이 문제가 될 수 있지요.

일본의 북한 전문 통신 아시아프레스에서 발행하는 림진강이라는 잡지에 따르면 1997년 김정일은 “사상교양의 시대는 지났다”고 선언한 뒤 공개처형을 실행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보위부 출신 윤대일씨는 95년부터 98년까지 한 개 군에서 10-12명의 주민이 공개 처형됐고 이를 바탕으로 최소한 전국적으로 2천여 명의 주민들이 공개 처형됐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윤 씨는 특히 처형된 시신을 방치하는 등으로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공개 처형은 최근까지도 계속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 유럽연합(EU)이 지난 3월 심각한 인권 침해를 이유로 국가보위성의 수장 정경택 보위상을 제재했습니다. 제재 이유는 국가보위성이 운영하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문, 비사법적 처형과 살인, 강제실종, 자의적 체포와 구금, 강제노동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 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국가보위성은 북한 내 주요 인물도 직접 처형합니다.

화폐개혁 실패를 책임지고 2010년 3월 처형된 박남기 노동당 재정경리부장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당시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쓴 ‘혁명 대오의 순결성을 강화해 나가는 나날들’이라는 책에 박남기 처형 선고문이 인용돼 있습니다.

“해방후부터 60년간 우리 내부에 숨어 전복된 착취제도의 복귀를 꿈꾸면서 우리 당의 경제정책과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반대하여 악랄하게 책동한 극악한 계급적 원쑤, 민족반역자인 만고역적 박남기놈을 혁명의 이름, 인민의 이름으로 처형한다.”

2013년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것도 보위부였습니다.

며칠 전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국가보위성의 비밀 정보원이었던 한 탈북민의 증언을 청취해 공개한 일이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이고, 식품 도매업으로 생계를 꾸려갔던 이 여성은 죄책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말부터 시작했습니다.

“내 존재가 밝혀지는 날 내 삶은 끝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매달 담당 보위지도원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받았다.”

2010년쯤부터 10년 동안 국가보위성의 지시를 받으며 가족조차 모르게 주변의 모든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보고했다는 겁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생일은 물론 장성택 처형 같은 큰 사건이 있을 때, 또 해외 파견됐던 사람이 귀국했을 때 등 주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주민동향을 보고했다고 합니다.

이 여성은 이웃들이 ‘독재정치’에 불만을 가졌는지를 감시해야 했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었던 자괴감으로 탈북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창 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pzcmari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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