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가 된 맘카페, '낙인찍기'가 죽음 불렀다
맘카페 운영진·회원들 '자정 노력' 절실하다는 지적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5월5일 어린이날, 경기도 화성시의 한 저수지 근처에서 40대 어린이집 원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보육기관 원장이기 전에 누군가의 엄마였던 여성의 극단적인 선택 배경에는 '온라인 맘카페'가 있었다. 맘카페에서 '학대 가해자' 낙인이 찍힌 A씨는 갖은 비난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맘카페를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건 비단 보육 현장뿐만이 아니다. 맘카페에 불만 글이 하나라도 올라오는 순간 영업 종료를 각오해야 하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도 마찬가지다. 맘카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권력집단이 됐다는 한탄도 쏟아진다. 뚜렷한 견제 장치가 없는 온라인 카페 특성상 정보 교류라는 순기능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자정 노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가족 "사실상 타살"
5월8일 어버이날 치러진 A씨의 발인식에서 유가족과 동료 교사들은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과 측근들은 A씨의 죽음을 사실상 '타살'로 규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A씨가 사망한 당일인 5월5일 오전 8시쯤 동탄 지역 최대 맘카페에는 A씨와 그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겨냥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작성자 B씨는 자신의 5세 아이가 4월14일부터 보름가량 A씨의 어린이집에 다녔으며, 피부 상처 등 여러 학대 정황을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원장이 넘어지는 아이를 방치하고 선반 위에 오른 아이의 발과 다리에 딱밤까지 때렸다고 전했다. B씨는 원장 A씨를 신고하고, 해당 어린이집 원생 부모들의 추가 제보를 기다린다고도 했다.
맘카페 회원들은 곧장 댓글을 통해 원장의 행동을 비판했고, 어린이집 정보도 실시간 공유됐다. A씨는 맘카페에 게시물이 올라가자 B씨를 직접 찾아가 글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B씨로부터 모욕만 당한 채 돌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CCTV 영상에서 딱밤을 맞았다는 아이는 B씨의 아이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영상에 등장했던 아이의 부모는 "위험한 행동을 제지하려던 것"이라며 아동학대가 아니라는 탄원서를 써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회원 수가 28만 명에 육박하는 맘카페에서 견딜 수 없는 지탄을 받은 A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B씨는 논란이 커지자 사과나 해명 없이 게시글을 삭제하고 카페에서도 탈퇴했다. A씨 사망 소식을 전한 해당 맘카페 회원들은 작성자는 물론 게시물에 댓글을 달며 동조한 사람 모두 공범이라며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해당 사안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도 이어졌다. 자신을 어린이집 원장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누군가의 오해와 아직 판결이 나지도 않은 사건들을 맘카페에 공유하면서 손가락으로 사람을 죽여나간다. 하지만 보육 교직원들은 보호를 받을 수가 없다"며 맘카페에서 벌어지는 허위사실 유포와 무고 행위를 엄격히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다.
맘카페에서 시작된 추측성 주장이 보육교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경기도 김포에서 발생한 30대 보육교사 사망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맘카페에는 소풍 현장에서 학대 행위가 있었다는 일방적 주장이 담긴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구체적으로 어린이집 이름을 특정했다. 이를 확인한 원생의 가족은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를 찾아가 폭언을 퍼붓고 물을 뿌린 것으로 조사됐다. 맘카페에서 '몹쓸 교사'로 내몰린 피해 교사는 이틀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후 법정에 선 원생 가족은 교사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참작돼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교사의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유포하고 공유한 김포 및 인천 지역 맘카페 회원들은 무죄를 받았다. 3년 전 이 일이 발생했을 때도 여론은 공분했고, 청와대 국민청원으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맘카페 이용자들의 인식 개선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면서 정제되지 않은 무분별한 의혹 제기는 현재진행형으로 온라인을 휘젓고 있다.
식당 등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일부 맘카페 운영자나 회원들은 공포의 대상이다. 영향력을 고려해 맘카페 측에 광고비를 내며 홍보 수단으로 삼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언제 어떤 내용으로 입방아에 오를지 몰라 '갑질 공포'에 전전긍긍하는 업주도 부지기수다.
운영진·회원들 '자정 능력' 길러야
맘카페의 선한 영향력과 정보 공유 등 순기능을 제대로 살리려면 자정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부모의 모진 학대 끝에 사망한 정인이 사건 당시 전국 맘카페를 중심으로 "우리가 정인이 엄마"라는 회원들의 분노가 일면서 진상 규명과 여론 환기에 도움이 됐다. 맘카페 곳곳에서는 정인이 양부모의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각종 캠페인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맘카페의 영향력이 허위사실에 기반하거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한 여론몰이로 전개될 경우 제지할 방안은 사실상 전무하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은 가능하지만, 앞선 보육교사들 사례처럼 누군가의 목숨을 대가로 치러야 하는 경우도 많다. 피해자와 그 가족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은 뒤라 회복도 불가능하다.
강원미 한국가정어린이집연합회장은 아동학대 관련 범죄에 학부모들의 관심이 큰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단 몇 줄의 확인되지 않은 글이 타인의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원장은 "경찰 수사 등 사건 전모가 확인될 때까지만이라도 추측이나 억측을 담아 공론화시키는 건 자제해야 한다"며 "맘카페에 글을 쓰는 분도 궁극적으로는 아동학대를 막자는 목적으로 하는 것일 텐데 무분별한 낙인찍기는 오히려 건전한 보육 환경 조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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