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마시러 갔다 '풀멍'해 버렸다, 이제부터 나는야 '식집사'
식물로 인테리어 한다는 ‘플랜테리어’, 반려동물처럼 식물을 기르는 ‘반려식물’이 등장했다. 고양이를 키우듯 식물을 키우는 ‘식집사’가 생겨나고, 식물 ‘덕후(마니아)’라는 의미로 ‘식덕’을 자처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고, ‘코로나 블루’가 일상을 힘겹게 하면서 식물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지난해 ‘코로나19가 가져온 소비 행태의 변화Ⅱ’ 보고서를 통해 ‘그린 하비(Green Hobby·초록색 취미)’를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제시하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셀프 텃밭과 플랜테리어에 대한 관심 증가로 화원·화초와 비료·종자업종 매출이 1년 전보다 각각 9%, 15%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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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식집사’, 식물이 좋아요
최근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온앤오프’에서는 자신의 집 정원에서 식물을 가꾸는 가수 정재형과 그의 집을 방문한 가수 엄정화의 에피소드가 그려졌다. 자신을 ‘식물 집사’로 소개한 정재형의 집에는 60여 가지가 넘는 식물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었다. 식물에 물을 주고, 분갈이하는 등 땀을 흘리며 식물을 돌보는 모습이 화면을 채웠다.
식물로 시선을 끄는 상업 공간도 곳곳에서 성업 중이다. 지난 9일까지 꽃 전시를 열었던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복합문화공간 ‘알베르’가 대표적이다. 폐허 같은 콘크리트 건물 한 가운데 지하부터 3층의 뚫린 천장까지 닿은 거대한 식물 탑은 무명의 공간을 단숨에 ‘인싸’들의 아지트로 만들었다. 4월 23일부터 5월 9일까지 약 2주 남짓한 전시 시간 동안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3400명이 넘는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박소희 플로리스트는 “음료를 파는 카페도 아닌 데다 별다른 홍보도 없었는데 식물 작품만을 보러 일부러 찾는 이들이많아 놀랐다”며 “공간에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꽃과 식물을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인근의 ‘식물성’도 눈길을 끈다. 스마트팜 스타트업 ‘엔씽’이 운영하는 카페 공간인데, 스마트팜 기술을 활용해 공간 내에서 직접 바질과 로메인 등의 식물을 기른다. 여느 카페와 다를 바 없는 현대적인 공간 사이사이 초록빛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 때문인지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인근에선 가볼 만 한 장소로 제법 입소문이 났다. 도심 속 오아시스처럼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풀멍(풀을 멍하게 쳐다보며 휴식하는 것)’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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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매력적 콘텐트, 전시 잇달아
서울 남산 인근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선 지난달 24일부터 ‘정원 만들기(Gardening)’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정원’을 주제로 한 전시로 한국의 조경 선구자인 정영선 소장 및 김봉찬 ‘더가든’ 소장이 직접 디자인한 자연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더불어 최정화·정재은·박연주·박미나 등 설치 미술가와 그래픽 디자이너 등 작가들이 만들어낸 정원 테마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 후기엔 “봄이라 나들이 겸 다녀왔는데 기분 전환이 됐다” “식물 집사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할 전시” 등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범상 글린트 대표는 “정원을 만들고 식물을 가꾸는 일에 대해 한 번쯤 의미 있고 진지하게 다루고 싶었다”며 “전시를 다 보고 작게나마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식물이 심어진 토분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식물 콘텐트 브랜드 ‘플랜트 소사이어티1’은 지난달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편집 매장 ‘분더샵’에서 식물 테마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도시에서 식물을 가꾸는 ‘베란다 가드너(정원사)’를 주제로 한 상점으로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식물과 수입 관엽 식물, 가드닝 용품 등을 판매했다. 오픈 첫날 긴 입장 줄이 이어질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특히 마니아들이 많기로 유명한 수제 토분 브랜드 ‘두갸르송’ 토분에 심은 희귀식물은 ‘레어템(희소한 아이템)’으로 소문이 나 빠르게 소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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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라이프 트렌드 중심으로
식물을 돌보고 가꾸는 것은 이미 요가와 명상처럼 하나의 트렌드가 된 듯하다. 신록이 푸르른 5월을 맞이했지만 코로나19로 외출이 힘들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다. 최기웅 플랜트 소사이어티1 대표는 “몇 년 전부터 식물과 정원 가꾸기 등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식물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MZ(밀레니얼·Z)세대의 성향과도 맞아 떨어지면서 식물을 기르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해외선 ‘코티지 코어(cottage core)’ 트렌드도 나타났다.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젊은 층들이 꽃무늬 옷이나 정원 가꾸기, 소풍 등에 흥미를 갖는 현상이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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