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예쁜 잎 삼색개키버들 활짝 피었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입력 2021. 5. 1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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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사람들 초록세상에 물드는 가평 아침고요수목원 힐링여행/고흐 사연 담긴 디기탈리스 꽃말은 ‘열애’/달빛정원 하얀 교회앞서 연인들 ‘인생샷’/튤립 6만본 활짝 핀 하늘길 예쁨 ‘뿜뿜’/수채화 그리는 하경정원·서화연도 봄꽃 가득

스트림가든 삼색개키버들
꽃도 아닌 것이 어찌 이리 꽃보다 예쁘고 아름다울까. 파스텔톤 분홍, 하양, 초록으로 은은하게 어우러지며 연못을 수놓은, 첫사랑 고백 같은 수줍은 삼색개키버들. 멀리서 보면 핑크빛 꽃처럼 화사하지만 다가서면 꽃은 없고 삼색 잎만 한가득 피어있다. 버들잎에 햇살 한줌 내려 아침 이슬 영롱하게 반짝이는 고요한 수목원 스트림 정원에 서니 가슴이 온통 5월 봄빛으로 물든다.
고향집 정원
#빈센트 반 고흐와 디기탈리스

경기 가평 상면 아침고요수목원에 들어서자 초가와 한옥, 장독 항아리와 운치 있는 소나무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고향 집 정원이 여행자들을 반긴다. 맞은편 높은 언덕 무궁화동산까지 온통 알록달록 산철쭉이 만발했다. 서울 도심 철쭉들은 이미 색을 잃으며 지고 있는데, 이곳은 깊은 산속이라 좀 늦게 피나보다. 봄이 오면 고향 집 근처에서 늘 피고 지던 흔한 진달래, 목련으로 시작해 매발톱, 채송화가 이어지면서 정겨운 고향 마을로 데려다준다. 지금은 철쭉이지만 200여 품종의 다양한 무궁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니 여름이면 저 언덕은 더 화려해지겠지.

야생화정원 가는 길 계곡
야생화정원
야생화정원으로 이어지는 다리 밑 작은 계곡에서는 물장난에 빠진 아이들 모습이 평화롭다. 세 살쯤 돼 보이는 꼬마 아가씨는 이제 그만 가자는 엄마 손을 계속 뿌리치며 더 놀겠다고 떼쓴다. 마스크를 벗지 못해 봄내음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텐데도 아이들은 따사로운 햇살과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이 마냥 좋은가 보다. 야생화정원으로 들어서면 봄에 피는 국화인 아네모네 블란다 ‘블루’가 청초한 보랏빛을 두르고 손짓한다. 국화처럼 생겼지만 미나리아재비과 식물. 하늘바람꽃이란 다른 이름처럼 바람 불자 코스모스인 듯 하늘거리며 몸을 맡긴다. 미나리냉이, 산마늘, 윤판나물, 삼지구엽초, 한라개승마, 속새 등 처음 들어보는 식물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연노랑 개양비귀까지 다양한 야생화들이 끊임없이 오솔길을 꾸몄다.
디기탈리스
디기탈리스
하늘길로 오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사연을 만난다. 그가 평생을 곁에 두었던 디기탈리스 꽃이다. 손가락과 비슷해 손가락이란 뜻의 라틴어 ‘디기투스(digitus)’에서 유래됐고 ‘요정의 골무’로도 불린다. 영어로는 폭스러브(foxlove). 여우 발이 쏙 들어가는 장갑처럼 생겨 옛날 유럽에서는 여우들이 모습을 감추는 마법을 부리는 디기탈리스 꽃을 신고 농가에 들어가 닭 등을 훔쳐간다고 여겼단다. 디기톡신이라는 독 성분이 들어있어 ‘마녀의 장갑’이란 이름도 얻었다.
빈센트 반 고흐 ‘가셰박사의 초상’
고흐는 평생 지독한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을 앓았는데, 그의 주치의 폴 가셰 박사가 처방한 약이 디기탈리스 꽃 성분이다. 이 성분에 중독되면 어지럼증, 구토, 몸 떨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그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 등에 디기탈리스 중독 증세가 투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흐가 그린 마지막 초상 ‘가셰박사의 초상’에서 박사가 손에 들고 있는 꽃이 바로 디기탈리스. 하양, 노랑, 분홍 꽃 안에 마치 물감을 흩뿌린 듯한 무늬까지 지닌 독특한 모습은 한참을 넋을 잃고 볼 정도로 순식간에 중독되고 만다.
하늘길 튤립
하늘길 튤립
#달빛정원 연인들 사랑을 속삭이고

아침고요수목원에서 연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핫플레이스 달빛정원을 향해 산책로를 오른다. 하늘을 찌를 듯 거침없이 뻗어나간 낙엽송 사이의 구불구불한 오솔길 양옆을 알록달록한 ‘봄꽃의 여왕’ 튤립 6만 송이가 빼곡하게 수놓은 풍경이 참 예쁘다. 아마 천상의 화원이 있다면 이런 풍경일 테지. 여름에는 꽃양귀비·백합, 가을에는 가우라·풍접초·국화로 바뀐다니 언제 다시 와도 색다른 모습을 즐길 수 있겠다.

달빛정원
튤립에 흠뻑 빠져 하늘길을 끝까지 오르면 달빛정원을 만난다. 하얗고 뾰족한 지붕의 작은 교회가 숲과 하얀 튤립, 하얀 꽃잔디, 하얀 디기탈리스에 둘러싸여 연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의 장면을 선사한다. 달빛이 비치는 모습이 아름다워 달빛의 모습을 표현하는 흰색 식물로 꾸몄단다. 워낙 인기가 높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데, 연인들이 삼각대까지 설치하고 인생샷을 찍는 바람에 사진 한장 얻으려 한참을 기다렸다. 중독성 강한 성분처럼 디기탈리스의 꽃말도 ‘열애’라니 이곳에서 사진 찍으면 연인들 사랑이 더 깊어질 것 같다.
아침광장
스트림정원 삼색개키버들
하늘길을 다시 내려오면 푸른 잔디가 드넓게 펼쳐진 아침광장의 탁 트인 전망이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잔디광장 너머에 수령 1000년으로 추정되는 향나무 ‘천년향’이 우뚝 서 있다. 오랜 세월 비틀리며 기품 있게 가지가 휘어져 나간 고고한 자태가 돋보인다. 아침광장을 바라보고 오른쪽 스트림정원으로 들어서면 시냇물을 따라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이 가득하다. 작고 예쁜 다리를 건너면 꽃보다 예쁜 삼색개키버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진짜 이름은 ‘하쿠로 니시키’. 5월에 삼색으로 돋아나 여름으로 들어서면서 잎 전체가 초록으로 바뀌는 신기한 식물이다. 볼 날이 많지 않으니 눈에 가득 담아본다. 이곳은 아이리스가 만개하는 초여름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신한다니 그때 꼭 다시 와야겠다. 꽃창포류, 앵초류, 도깨비부채, 금매화, 비비추, 돌부채, 석창포, 청나래고사리, 곰취, 눈개승마, 숫잔대, 꼬리풀 등 모두 160여 종의 물가 식물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간다.
하경정원
J의 오두막정원
#서화연에 곡선과 여백의 미 가득

스트림정원에서 내려다보는 하경정원은 그림엽서에 나올 듯한 풍경이다. 운두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아담한 잔디밭 주변으로 온갖 꽃들이 만발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충만이다. 전망대 난간에 기대 멍때리며 오래오래 봄 풍경을 즐겨본다. 하경정원은 J의 오두막정원으로 이어진다. 영국 시골집에 딸린 작고 소박한 정원 코티지가든으로 꾸몄다. 영국 전원마을 코츠월드 지방의 전통가옥 양식으로 지었는데, 이국적인 풍경 덕분에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관목과 여러해살이식물을 식재한 5개의 화단은 서로 다른 색상을 띠며 이들이 개화하는 6∼9월에 가장 아름답게 꾸며진다. 민트색 벤치 앉으면 당신은 꽃보다 아름답다.

서화연
이제 수목원의 절정, 서화연으로 향한다. 곡선과 여백의 미가 극대화된 한국정원으로, 수목원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곳이다. 정자와 주변의 한옥이 연잎 둥둥 떠 있는 연못에 데칼코마니로 투영되며 파란 하늘까지 그대로 담고 있는 풍경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봄부터 붉은색을 띤 단풍나무와 울창한 초록나무들은 낭만적인 수채화를 그렸다. 연못 한가운데 있는 정자로 이어지는 돌계단까지 더해져 마치 궁궐 비밀의 정원에 서 있는 착각에 빠진다.
서화연 포토존
아침고요수목원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뷰포인트가 이곳에 있다. 연못가 하늘색, 민트, 노랑, 주황색 의자에 앉은 당신의 뒷모습을 찍으면 서화연 풍경에 녹아든 멋진 인생샷이 완성된다. 이른 봄에는 벚꽃과 목련이 수변에 흐드러지며 여름에는 붓꽃과 연꽃,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함께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낸다니 계절별로 모두 풍경을 담아봐야겠다.
분재원
비밀의 정원
수목원은 축령산 자락 33만㎡(약 10만평) 부지에 22개의 특색 있는 주제정원으로 꾸며져 규모가 상당한 만큼 천천히 둘러보면 3시간 정도 걸린다. 돌아 나가는 길에 한국주제정원, 석정원, 비밀의 정원이 이어지며 아기자기한 식물들을 만나는 분재원까지 둘러보니 해가 산 너머로 숨어들기 시작하고 꽃과 나무로 힐링된 영혼에 잔잔한 고요함이 찾아온다. 

가평=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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