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연루 우병우, '전관예우 변호사'로 반전 등극?

신민정 2021. 5. 1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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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판사들 이어 변호사 신청
"변호사법 등록기준 강화를" 목소리
우병우 전 민정수석.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판·검사를 비롯해 공직에 있으면서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이 연달아 변호사 등록 신청을 내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전직 판사 중 일부가 변호사 등록을 마쳤고,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최근 변호사 등록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들이 ‘전관’ 변호사로 고액 수임료까지 챙길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회 등에서는 이들의 변호사 등록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1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우 전 수석은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변호사 재등록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2013년 5월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1년 뒤인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에 발탁되면서 변호사를 휴업했다. 우 전 수석의 신청서를 받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심사를 거쳐 ‘적격’ 또는 ‘부적격’ 의견을 달아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송부하면, 변협은 등록심사위원회를 거쳐 그의 변호사 재등록을 최종 허가하게 된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방조하고(직무유기), 국가정보원에 이석수 당시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사찰하라고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앞서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들은 재판 중 변호사 등록을 신청해 변협 허가를 받았다.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지난해 변호사 등록을 내고 변협의 허가를 받았으며, 이들과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도 변호사 등록을 마쳤다. 이밖에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해 10월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인사보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도 각각 2016년과 지난해 변호사 등록을 마쳤다. 고 김홍영 검사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대현 전 부장검사와 ‘돈 봉투 만찬’ 사건에 연루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후배 성추행으로 법복을 벗은 전직 판사, 지하철에서 불법촬영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직 판사 등도 모두 변호사가 됐다.

법조인들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들이 변호사가 될 수 있는 배경으로 변호사법 조항의 빈틈과 법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변협을 꼽는다. 변호사법 제8조에는 변호사 등록거부 사유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5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 ‘공무원 재직 중 위법행위로 재판에 넘겨진 경우’ 등이 명시돼 있다. 그런데 이에 해당하더라도 “변협은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라고만 규정돼 있어서, 등록거부 사유가 있더라도 변협이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등록을 해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재판을 받고 있는 전직 판·검사들이 변호사 등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한 변호사는 “판·검사들 사이에선 범죄로 옷을 벗게 되더라도 변호사 등록을 하면 판·검사 시절보다 돈을 더 버니, 문제가 생겨도 ‘나가서 변호사 하면 그만’이라는 풍토가 자리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변협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은 피고인들의 변호사 등록을 받아주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고 해도 공무원이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면 직무배제되는 등 확정판결 여부와 무관하게 일정 부분 맡았던 업무에서 손을 떼는 게 현실이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건 피고인에 대해 유죄가 확정된 것처럼 취급해선 안 된다는 말이지,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다는 게 아니다”라며 “물의를 일으켜 퇴직한 이들에게 변호사 등록을 해주는 것이 (변호사)법 취지에 맞는 운영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 변호사 등록기준을 강화하는 취지의 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위법행위를 한 공무원의 형사소추와 무관하게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변호사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같은 당 김용민 의원은 형사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아예 변협이 등록심사를 유예할 수 있는 개정안을 내놨다. 최기상 민주당 의원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검찰총장 등으로 재직했던 이들에 대해 등록심사를 의무화하고 심사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법을 내놨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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