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링을 무력화하고 안티 페미코인을 등장시킨 '백래시'[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1. 5. 1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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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백래시(backlash)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발을 가리키는 용어로,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가 1991년 동명의 책에서 1980년대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미국 사회의 전방위적 공격을 다루며 처음 썼고, 한국에서는 2020년을 전후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GS25 얘네도 티 못 내서 안달이네.”

지난 1일 오전 10시20분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 게시물 하나가 올라왔다. 편의점 체인 GS25가 이날 오전 10시쯤 카카오톡으로 보낸 5월 행사 광고 이미지였다. 작성자는 GS25가 이날부터 한 달간 진행하기로 한 캠핑용품 경품 행사의 포스터를 지목한 뒤 엄지와 검지를 모은 집게 모양의 손이 소시지를 집는 그림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듯 덧붙였다. “소시지 저렇게 집어 먹는 사람?”

그래픽|이아름 기자

엄지와 검지를 모은 집게손 모양이 한국 남성 성기 크기를 비하하려는 페미니스트들의 은밀한 표시라는 ‘남성 혐오 광고’ 의혹 제기의 시작이었다. 이 글 작성자의 주장은 빠르게 확산됐다. 오전 10시57분 또 다른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에 ‘GS25 합리적 의심’이라며 같은 내용의 글이 게재된 데 이어 오전 11시31분 엠엘비파크, 오후 1시54분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로 퍼졌다.

일베에 이 글이 올라간 뒤 온라인 매체들에 그럴듯한 제목을 단 채 기사화되는 데는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오후 3시41분 ‘GS25 남혐 논란’이라는 제목을 단 첫 기사가 나왔다. 그사이 GS25는 해당 광고에서 손가락 모양을 없애는 등 이미지를 수정했다. 다음날인 2일에는 광고를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사진)이 나선 것은 2일 오후였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GS의 해당 광고와 사과문을 올리며 “(GS의 한) 점주가 ‘오또케오또케’하는 사람(다급한 상황에서 ‘어떡해’라는 말만 거듭하며 대처하지 못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은 아르바이트생으로 사절한다고 해서 (논란이 되자 GS가) 점주를 교육시키고 불이익을 주겠다는 회사가 왜 이 사건에 있어서는 책임자에 대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밝히지 못하냐”고 적었다.

한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황당한 주장이 언론보도를 통해 공론장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결국 한 대기업을 무릎 꿇리는 데까지 단 하루가 걸렸다. 검증 없이 주장을 실어나르는 언론과 커다란 스피커를 지닌 정치인의 입을 통해서였다.

경찰청 홍보자료 논란, 방송인 박나래씨의 성희롱 경찰 고발사건, 반성폭력 활동가의 포항공대 강연 취소 등 이후 벌어진 일련의 다른 사건들은 GS25 사례와 유사한 경로를 통해 차례로 여성 혐오 세력의 심판대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이를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라고 경고했다.

일련의 상황을 백래시가 아니라 젠더 갈등 틀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계속돼왔다. ‘이대남’의 대변자로 나선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3일 한 토론회에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향해 집요하게 물었다. “그래서 젠더 갈등이 있다는 걸 인정합니까, 안 합니까.”



젠더 갈등, 그 프레임은 틀렸다



전문가들은 젠더 갈등 프레임이 성 불평등을 가린다고 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젠더 갈등이라는 프레임은 중립적 시각에서 평등한 권리를 가진 두 주체 간에 의견이 대립하는 것처럼 상상하게 만든다”며 “특히 사회적 소수자가 억압받던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이 목소리가 갈등을 유발한다고 보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서구의 백인 중심 사회에서 흑인이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자 인종 갈등프레임이 등장했다. 문화예술학자 이라영씨도 “젠더 갈등이나 남성혐오라는 말은 지금은 작은따옴표를 쓰지만 시간이 지나면 따옴표 없이 쓰이면서 이것들이 실재하는 것처럼 남성들이 피해자의 위치를 가지게 된다”고 했다.

이미지컷



‘젠더 갈등’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로 프레임을 바꾸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백래시는 여성운동이 일으키는 사회적 변화로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이들의 반발 현상이다.



백래시…정치와 언론의 합작품



4·7 재·보궐 선거 전후로 온라인상의 페미니즘을 향한 공격들은 이미 수년간 이뤄졌던 흐름의 연장선에 있지만 최근엔 언론과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지금 상황이 다른 점은 정책과 법을 만드는 데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여성들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게 문제’ ‘역차별’이라며 일부 남성들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면서 실제 성평등 정책이 퇴보할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재·보선 이후 여야를 막론하고 ‘이대남 잡기’에 나선 정치인들이 나타났다. 언론은 이들의 주장을 공론장으로 실어날랐다.

📌[플랫] 20대 여성이 말한다, 1번도 2번도 안 찍은 이유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들은 형식적으로는 그간 온라인에서 이뤄진 페미니스트들의 ‘미러링’(모방 행위)을 안티 페미니스트들이 재차 ‘미러링’ 했다는 특징이 있다. 방송인 박나래씨의 인형 성희롱 논란과 경찰 고발, GS25와 경찰청의 ‘손가락’ 홍보물 폐기 등이 남초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은 ‘메갈리아’ 등이 등장한 2015년 이후 주요한 운동 방식이었던 미러링과 닮았다. 당시에는 ‘된장녀’와 ‘꽃뱀’ 등 성차별적 사고방식이 녹아든 재현에 대한 문제제기가 소비자 운동으로 연결됐다.

손 교수는 “미러링을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밟는 것이 현재 상황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GS25의 ‘캠핑가자’ 이벤트 포스터와 GS25 측의 사과문



이들의 문제제기는 성인지감수성에 따른 것이 아닌 성평등 논의에 대한 ‘보복’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GS25가 공격 대상이 된 데는 앞서 지난달 GS25의 한 점주가 ‘페미니스트를 사절한다’는 취지의 채용공고를 올렸다가 비판과 함께 GS리테일에서 제재를 받은 일이 있었다. ‘방송에서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비판의 영역에 머물러야 할 박나래씨의 개그가 경찰 수사를 받기에 앞서서는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의 성착취, 리얼돌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은 증오·선동의 정치와 만나 차별과 혐오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인 차별이나 혐오 발언) 역사를 연구한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정치인이나 국가가 ‘차별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면 공격은 들불처럼 번지고, 정치인이 슬그머니 빠져도 사냥은 끝나지 않는다”며 “퍼뜨리긴 쉽지만 중단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책임을 질 수도 없다”고 했다.

백래시가 여성 인권의 시계를 되돌리는 것 외에도 기관·기업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페미니즘 쉼표, 이분법 앞에서>의 공저자 최성용씨는 GS25와 같은 사례가 반복될 경우 기업들이 백래시에 동조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통한 여성단체 후원을 검열하거나, 세계적 추세와 반대로 (성평등 관련) 문제의식을 가진 광고 또는 제품 생산을 주저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백래시는 돈이 된다?
커져가는 ‘안티 페미시장’



안티 페미니즘 시장의 부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열풍인 ‘코인’처럼 돈벌이가 된다는 의미에서 ‘안티 페미코인’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남초 커뮤니티와 유튜버를 거쳐 언론이 이슈를 확대, 정치권으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적지 않은 수입을 얻는다. 안티 페미니즘 콘텐츠로 인기를 끌며 9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모은 한 유튜브 채널은 최근 GS25 사건 관련 영상 3편으로 약 330만 조회수를 올렸다. 크리에이터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녹스 인플루언서에 따르면 이 채널의 월수입은 최소 9000만원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채널이 빠르게 늘고 있다.



안티 페미니즘이 주로 온라인을 통해 학습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지난해 5월 ‘청년 관점의 젠더 갈등 진단과 포용국가를 위한 정책적 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청년들은 온라인 정보 외에 학습 소모임 등을 병행하며 페미니즘 지식을 체계적으로 형성했다”며 “반면 적대적 청년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을 얻는 방법이 온라인이 전부인 경우가 많았고, 다른 방법으로 이슈를 이해하려는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안티 페미니스트 청년들이 이구동성으로 관련 정보를 얻는다고 한 경로는 커뮤니티와 유튜브, 온라인 기사 댓글이었다.

지난 수년간 온라인상에서 구축된 네트워크는 최근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고 성재기씨가 이끈 ‘남성연대’를 잇는다며 최근 결성된 ‘신남성연대’가 그것이다. 이들은 GS리테일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적극적으로 거리로 나서고 있다.



백래시의 파고를 넘는 법



격화하는 백래시에 대한 대응법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트롤링(관심끌기)에 관심을 주지 않음으로써 혐오·차별의 공론장 입성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이미 언론과 정치권을 통해 공론장에 들어온 만큼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차별과 혐오 확산을 막아내는 데 언론과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언론은 차별과 혐오를 공론장에 실어나르기를 멈추고, 정치는 트롤링에 단호하게 선을 그음으로써 혐오론자들에게 ‘효능감’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국, 남자>를 쓴 사회학자 최태섭씨는 “트롤링의 목적은 관심 끌기에 있고, 잡음이 일어나면 효능감을 얻는다”며 “유럽 축구에서 경기장에 훌리건이 난입해도 더 이상 카메라는 그들을 비추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권명아 교수는 “페미니즘은 17~18세기부터 수많은 백래시에도 끈질기게 이어져왔다. 제국주의와 빨갱이 사냥, 노동운동 탄압이 심판받았듯 페미니즘 사냥 또한 역사의 심판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젠더갈등’의 해답 찾는 정치권의 ‘헛다리 짚기’



전문가들은 여당이 4·7 재·보궐 선거 참패 이유를 ‘젠더 갈등’에서 찾는 것이 안일하고 위험한 분석이라고 비판한다.

온라인상의 반응만 의식해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일부 남성들을 달래는 정책을 내놓는 것이 오히려 차별과 혐오를 선동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재·보선 이후 정치인들은 여야에 관계없이 ‘젠더 갈등’을 20대 남성이 여권에 등을 돌린 원인으로 꼽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한 결과”라고 썼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20대 남성이 이탈한 원인은 남녀 갈등”이라고 말했다.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마저 자신의 SNS에 “정부가 여성들을 배려하며 청년 남성들을 수혜자처럼 취급하고 배제했다”는 글을 올렸다.

📌[플랫] ‘남혐의 증거찾기’에 호응하는 정치권과 사회적 손실

전문가들은 많은 20대 남성들이 여권으로부터 등을 돌린 근본적인 이유는 젠더 이슈라기보다는 오히려 여권의 ‘내로남불’ 이미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20대 남성 역시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건과 현 여권의 ‘내로남불’ 이미지 때문에 돌아섰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지난 총선에 비해 20대 남성의 젠더 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민주당 지지율은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20대 남성의 민주당 이탈률이 다른 성별·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LH 사건이나 ‘내로남불’ 행태로 형성된 비호감이 더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래픽|이아름 기자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스스로 ‘너무 여성주의적’이라고 자가 진단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제대로 된 페미니즘 정책을 한 적도 없는데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의문”이라며 “그저 온라인 반응에 따라다니며 반페미니즘 정책으로 20대 남성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호소인’이라고 칭하는 등 성인지감수성이 낮다고 비판받은 바 있다.

📌[플랫]“정치권은 게으름과 무능을 숨기려고 ‘젠더’를 이용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당이 젊은 남성의 표심을 되찾겠다며 ‘군대 카드’를 뽑아든 것을 비판했다. 신 교수는 “국가와 제도, 계급에 대한 20대 남성의 분노를 엉뚱하게 여성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22년 전 위헌 결정을 받은 군가산점제 도입을 다시 추진하고, 공기업 취업·승진 시 군복무 경력을 반영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남녀평등복무제를 도입하겠다며 “남녀 간 성역할과 관련된 갈등도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가 차별을 선동하고 마녀사냥을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치인들이 최근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메갈(메갈리아) 사냥’을 방치하고 조장한다는 것이다.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고상하고 합리적이고 정세분석적인 말들로 결국 ‘페미니즘은 틀렸고 공격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눈앞의 지지율을 위해 장기적인 비전도 없이 ‘빨갱이 사냥’과 같은 ‘증오정치’의 파도를 키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경민 기자 5km@khan.kr
최민지 기자 ming@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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