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 한겨레문학상에 김유원 '계투'

최재봉 2021. 5. 1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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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야구선수 둘러싼 성장통 그려
제26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김유원.

제26회 한겨레문학상에 김유원의 장편소설 <계투>가 당선되었다. 소설가 윤성희·전성태·정용준·편혜영과 문학평론가 김건형·서영인·소영현·오혜진 등 심사위원들은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천동 한겨레출판 회의실에서 심사위원회의를 열어 이렇게 결정했다. 심사위원들은 <계투>가 “스포츠 서사에서 익숙한 전형들을 사용하면서도 자기 성장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적인 관점으로 뻗어 나가는 점이 호평받았다”며 “주제를 몰고 가는 흡입력, 박진감 있는 스토리텔링의 힘은 상당했다”고 평가했다.

<계투>는 고졸 최고 계약금으로 프로에 입단했으나 죽은 동료 선수에 얽힌 정신적 고통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중간 계투로만 활약하는 야구선수, 그의 중학교 야구부 친구였던 증권회사 직원 그리고 초등학교 여자 야구선수 출신인 스포츠신문 기자를 내세워, 무너진 시스템 안에서 부서지며 나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당선자 김유원은 17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누구나 삶에서 계투보다는 선발투수나 확실한 마무리 투수가 되기를 강요받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삶의 방법을 모르게 된다. 중간에서 궂은 일을 도맡는 계투는 어정쩡한 존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도 시선이 가야 하지 않나, 자신에게 넘어온 것을 온전히 다음으로 이어준다는 감각으로 겸허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소설에 담았다”고 말했다.

김유원은 본명인 ‘손경화’라는 이름으로 <개청춘>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의자가 되는 법> 등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했으며 다음달에 개봉하는 강유가람 감독의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의 촬영감독을 맡았고 지금은 권아람 감독 연출 <홈그라운드>의 촬영감독으로도 일하고 있다. <계투>는 그의 첫 소설이다. 지난 3월31일 마감한 제26회 한겨레문학상에는 모두 211편이 응모되었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심사평

‘계투’ 에너지 역동적…여성인물 설계 아쉬워
‘영의 자리’ 담담한 문장의 힘…끝까지 경합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한겨레출판 회의실에서 응모작들을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 앞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오혜진, 전성태, 소영현, 편혜영, 윤성희, 서영인, 정용준, 김건형.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용산참사 연상 ‘그라운드 제로’
동성애 성장기 ‘물을 길어오세요’
이민자 그린 ‘총소리를 들었어’
본심 오른 8편 중 5편 주로 논의

예심 과정에서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참사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정육점과 같은 상징적 공간에서의 살해 사건을 추적하는 서사가 많이 보였다. 그러나 전반부의 자극적인 소재에 비해 깊이 있게 주제를 끌고 가지 못하고 상식적인 정의감의 분출로 끝맺는 작품이 많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본심에 오른 <그라운드 제로> <물을 길어오세요> <정명혜 문학관> <그림들의 아우성> <영의 자리> <총소리를 들었어> <계투> <리모델링>의 8편 중에서 다음의 5편을 주로 논의하였다. <그라운드 제로>는 용산 참사를 암시하는 철거민 조합의 비극과 코로나 시국을 암시하는 좀비 사태를 결합시켜 흥미로운 설정이 주목받았다. 또 각자 직무에 충실하기에 생성되는 사회적 악과 그 구원의 문제를 다루려는 의식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백신 등 장르물로서 갖추어야 할 설정이 약해 결정적인 설득력이 부족했다. <물을 길어오세요>는 80년대 남성 청소년이 동성애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었다. 이성애 규범 속에서 동성 친구에 대한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을 여성으로 상상해야 하는 내면이나, 강압적 남성성과 다른 젠더성을 형성하려는 메타적 시선이 주목할 만하다. 반면 당대 문화사의 도입이 성글고, 가족 비극이 억지스러워 서사로서 많은 지지를 받기 어려웠다. <총소리를 들었어>는 정체성의 기원을 탐색하는 이민자에 대한 소설이다. 트랜스 내셔널 시대에 외부적 시선으로 가족사를 서술하는 것은 유의할 만한 전략이다. 그러나 한국 근현대사와의 연결이 관념적이라서 부실하고, 가족의 비밀을 전해 듣는 구성이 익숙해서 아쉽다. 본심에서 다룬 작품들은 조만간 다른 지면에서 보게 될 작품들이라고 믿는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두 작품 중의 하나인 <영의 자리>는 차분하고 담담한 문장이 장점으로 꼽혔다. 약국이라는 치유의 공간성이나 삶을 버티는 일상적 방법이 소소하지만 깊고 탄력 있어 보였다. 그러나 무력감과 무행동, 무존재로서의 유령 등이 지난 시기의 청년 서사를 연상시켜 아쉬웠다. 또 포인트가 될 만한 사건이 없어 반복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장편보다는 단편에 적합해 보였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서사적 당위의 힘을 믿지 않고 일상의 문장으로 밀고 가는 작가의 힘을 더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한겨레출판 회의실에서 응모작들을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다. 맨 왼쪽 앞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윤성희, 서영인, 정용준, 김건형, 오혜진, 전성태, 소영현, 편혜영.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당선작 <계투>는 장단점이 뚜렷한 작품이다. 세 인물이 노동, 스포츠, 언론 등 각자의 조직에서 겪는 모순과 부조리가 응축되다가, 야구 승부 조작 사건을 계기로 하여 광장으로 터져나가는 에너지가 역동적이다. 인물들은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움직이며, 각 조직의 문제를 개별화하지 않고 통합해간다. 스포츠 서사에서 익숙한 전형들을 사용하면서도 자기 성장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적인 관점으로 뻗어 나가는 점이 호평받았다. 결말에서 광화문 탄핵 집회로 각 인물의 이야기가 통합되는 점이 지금 독자에게는 시간적 지체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를 결말이 아닌 어떤 새로운 계기로 기대해보려 한다. 반면 남성 인물의 윤리적 성찰을 위해 납작하게 설계된 여성 인물들은 아쉬웠다. 특히 구조에 잘 적응하던 중산층 남성 인물이 갑자기 시스템에 의한 억울한 피해를 호소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대표하는 설정에 대한 우려가 컸다. 특정 세대/젠더가 스스로의 권력을 몰각하고 자신을 희생자로 재현하는 담론, ‘촛불’의 대표로 자임하는 논리와 혹여 공명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다. 그러나 주제를 몰고 가는 흡입력, 박진감 있는 스토리텔링의 힘은 상당했고 장편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당선자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회(김건형 서영인 소영현 오혜진 윤성희 전성태 정용준 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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