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입은 남자' 빌리 포터, HIV 양성 고백.."진실만이 치유"
미국 방송 시상식 에미상에서 흑인 동성애자로선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배우 겸 가수 빌리 포터(51). 그가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양성 판정을 받은 사실을 털어놨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공식 석상에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등 파격적인 패션을 선보이며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였던 그는 14년 만에야 이 사실을 고백할 수 있었다. 포터는 “진실을 털어놓는 것만이 치유되는 방법이란 걸 깨달았다”며 용기를 낸 이유를 설명했다.
NYT는 포터가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7년 HIV 양성 판정을 받은 사실을 고백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2007년은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때였다”며 그해 파산 신청을 하고, 제2형 당뇨에 이어 HIV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신앙심이 깊은 가족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HIV는 마치 신의 벌처럼 느껴졌다”며 “그때의 수치심은 나를 침묵시켰고, 이후 14년 동안 그 수치심을 안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터는 더 성장하기 위해선 두려움을 돌파해야 한단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부끄러움은 사람을 파괴로 이끌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를 직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수년 동안 정신적 외상은 나를 지치게 했지만, 진실만이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자신의 심장을 꽉 쥐고 있던 손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이어 “오랫동안 ‘내가 살아남은 이유가 뭘까?’라고 스스로 질문했다”며 “세상에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까지 산 것 같다”고 말했다. CNN에 따르면, 현재 그는 눈에 띄는 증상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빌리 포터는 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는 이른바 ‘젠더리스(genderless) 룩’의 선두주자다. 그가 공식 석상에 설 때마다 고정관념과 외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그의 모습은 뜨거운 주목의 대상이 됐다. 2019년 오스카 시상식엔 턱시도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고,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황금빛 깃털을 단 드레스와 하이힐을 착용하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지난해 2월엔 패션잡지 얼루어(Allure)의 표지 모델로 발탁됐는데, 이 잡지의 29년 역사상 남성이 표지를 장식한 건 처음이었다.
포터는 1994년 뮤지컬 ‘그리스’로 데뷔한 이후 뮤지컬 배우와 가수로 활동해왔다. 뮤지컬 ‘킹키 부츠’로 2013년 토니상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과 이듬해 그래미 어워드 뮤지컬 음반상을 받았다. 2019년엔 드라마 ‘포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커밍아웃한 흑인 남성 배우로는 첫 수상이었다. 당시 그는 “우리와 같은 아티스트는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며 “진실을 말하는 걸 멈추지 말라”고 소수자의 삶을 대변하는 소감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타임지는 빌리 포터를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타임지는 그의 재능과 끈기, 탄력성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의 삶을 조명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도 올해 안에 방영될 예정이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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