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산으로 올라가버린 탄소중립

2021. 5. 2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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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탄소중립' 빙자한
늙은 나무 3억그루 싹쓸이 벌목에
목재펠릿은 발전소 연료로 사용
애써 가꾼 숲만 망가뜨리고
온실가스 되레 늘리는 억지일 뿐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

정부가 다음주 서울에서 열리는 P4G(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정상회의를 앞두고 허겁지겁 선포한 ‘2050 탄소중립’ 선언이 벌써부터 동티를 내고 있다. 산림청이 2050년까지 90만 헥타르(㏊)의 산에서 ‘늙은 나무’ 3억 그루를 베어내는 사업에 착수했다. 숲의 경제성 향상을 위한 합리적인 가지치기·솎아내기가 아니다. 산에 있는 모든 나무를 한꺼번에 베어내는 무차별적인 싹쓸이 벌목이다. 숲을 가꿔야 할 산림청이 어처구니없는 억지를 부리는 진짜 이유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우리의 숲은 조선 중기에 시작된 화전(火田)의 고약한 전통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숲은 더욱 심각하게 파괴됐다. 전국의 거의 모든 산이 시뻘겋게 벌거벗은 민둥산으로 변해버렸다.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취사·난방용 화목(火木)조차 구할 수 없고, 산사태 위험도 감당할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의 푸른 숲은 1962년 시작된 정부의 강력한 ‘에너지 전환정책’의 놀라운 성과다. 전국 탄광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취사·난방 연료를 석탄으로 전환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국의 산림조합을 활성화하고, 4만㏊의 산에서 연명하던 42만 명의 화전민을 강제로 도시에 정착시켰다.

전 국민이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치명적인 ‘연탄가스’(일산화탄소) 중독 피해와 채탄·수송·소비 과정에서의 환경오염, 반복적인 연탄 공급 파동도 기꺼이 감수했다. 오늘날 환경미화원으로 정착된 최초의 공공 일자리 사업도 조림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다. 일부 언론이 ‘자연인’으로 포장하고 있는 자연에서의 거친 삶은 잊혀진 ‘화전민’의 아픈 기억을 극도로 왜곡한 억지일 뿐이다.

오늘날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숲의 면적이 늘어난 유일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우리 스스로의 옹색한 자화자찬이 아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와 유엔환경회의(UNEP)가 공식보고서에 분명하게 밝혀놓은 명백한 진실이다.

우리나라 조림사업의 중추기관인 산림청이 탄소중립을 핑계로 애써 가꿔놓은 숲을 망가뜨리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어린 나무’ 30억 그루를 심으면 3400만t의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억지다. 어린 나무가 흡수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늙은 나무보다 적지만, 산 전체를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는 궤변이다. 촘촘하게 심은 어린 나무도 성장하면 가지를 쳐주고, 솎아내기를 해줘야 한다. 베어낸 나무에 저장돼 있던 온실가스의 배출도 고려해야 한다.

목재 펠릿을 화력발전소의 연료로 사용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모든 목재 펠릿이 친환경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다. 목재 펠릿의 연소에서도 온실가스가 방출되기 때문이다. 다만 가지치기·솎아내기의 부산물을 활용해서 만든 목재 펠릿은 제한적으로 청정 발전연료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리처럼 반세기 이상 애써 기른 원목을 통째로 목재 펠릿으로 가공하는 경우에는 절대 청정연료가 될 수 없다.

화력발전소의 목재 펠릿 사용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제도(RPS)도 수정해야 한다. 목재 펠릿은 근원적으로 다른 화석연료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목재에는 상당한 양의 수분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목재로 사용할 수 있는 ‘원목’과 ‘미이용 바이오매스’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주장은 신뢰할 수 없다. 영세한 벌목 현장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억지일 뿐이다.

탈원전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태양광에 의한 숲 훼손도 심각하다. 지난 5년 동안 여의도 면적의 20배에 가까운 5669㏊ 숲에서 291만 그루의 나무가 사라졌다. 태양광은 탄소중립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온실가스를 흡수해줄 숲을 훼손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태양광에는 온실가스를 내뿜는 LNG 발전소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림청은 탄소중립 선언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설픈 싹쓸이 벌목으로 숲과 자연을 망가뜨리는 것은 산림청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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