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항공기 원전 충돌' 공격 언급한 사람은 누구일까

김정수 2021. 5. 21.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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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에너지와 지구] <조선일보> "1000만년에 한 번 날 일로 트집"
야당 "원안위가 '탈원전' 의식해 신한울 운영 늦춰"
정작 야당 추천 전문가가 충돌 문제 적극 제기


경북 울진 한국수력원자력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전경. 왼쪽이 1호기, 오른쪽이 2호기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신한울 원전 1호기 운영 허가를 본격 심의하기에 앞서 사전 검토를 진행 중인 가운데 야당과 보수 언론에서 ‘고의 허가 지연’ ‘트집잡기’ 등의 주장을 제기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신한울 1호기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경북 울진에 지은 설비용량 1.4GW의 한국형 경수로 원전으로, 지난해 4월로 사실상 시공이 끝난 상태에서 시운전을 위한 운영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은 원안위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킨스)이 지난해 11월 제출한 운영허가 심사보고서를 검토하고 있는 단계지요. 심사보고서 검토가 끝나야 정식 의결 안건으로 상정돼 처리됩니다.

<조선일보> 19일자 1면 보도를 보면, 원안위가 신한울 1호기에 항공기가 사고로 추락하거나 고의로 충돌할 경우의 대책을 확인하려는 것에 대해 국민의힘은 ‘현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의식해 고의로 운영 허가를 지연하는 것’으로 보는 듯합니다. <조선일보>는 스스로도 “1000만년에 한 번 날 일까지 트집잡는 원안위”라며 ‘트집잡기’로 규정했습니다. 20일에는 <세계일보>와 <매일경제>도 ‘탈원전 눈치보기’ ‘악의적인 발목 잡기’라며 거들고 나선 형국입니다.

지난 14일 열린 원안위 회의에서 1000만년 빈도의 항공기 추락 확률이 다뤄지고, 사고가 아닌 고의 충돌과 공격행위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문이 제기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트집잡기’로만 봐야 할까요?

원안위원들이 모두 원자력 전문가인 것은 아닙니다. 현재 당연직 위원인 원안위원장과 사무처장을 제외한 정부와 여·야 추천 비상임 원안위원 6명 가운데 원자력 전공자는 1명 뿐입니다. 나머지는 변호사, 의사, 행정학 교수 등입니다. 원안위는 대신 다양한 원자력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원안위원들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전문가들은 너무 익숙해 오히려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을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살핍니다. 요컨대 원전이 항공기가 들이받아도 안전하게 지어졌는지 질문하는 것이 원안위원들의 역할인 셈입니다.

<조선일보>는 20일엔 “한국에서 벼락맞을 확률이 600만분의 1이다. 세상이 무서워 어떻게 밖을 나다니는지 모르겠다”며 1000만분의 1의 사고 확률을 따지는 것을 희화화한 사내 칼럼을 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벼락이 떨어져 생기는 피해와 원전에 항공기가 떨어져 생기는 방사능 재난의 피해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1000만년에 한 번, 즉 1년에 1000만분의 1 확률의 원전 항공기 재해도는 원안위원들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킨스가 정한 것입니다. 킨스는 ‘경수로형 원전 안전심사지침’ 제3.5.1.6절에서 ‘10의 마이너스 7승/년 이상의 발생 확률’을 항공기 재해도 기준으로 제시했습니다. 가까운 공항과의 거리, 항공로 등을 고려해 항공기가 사고로 원전에 떨어질 확률이 1000만년에 한 번 이상으로 계산되면 설계에 반영하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지난 1월8일 열린 제131회 원안위 회의에서 이미 논란이 된 문제입니다. 킨스의 운영허가 심사 과정에서 원전 인근의 죽변 비상활주로 등을 고려하면 항공기 재해 확률이 1000만년에 1회가 아니라 2.47회인데도 설계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지요. 원안위원들의 추궁에 킨스는 안전심사지침의 ‘10의 마이너스 7승’이라는 표현은 ‘10의 마이너스 7승 수준’으로 돼 있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표준심사지침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수준’을 빠뜨린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습니다. 1000만년에 2.47회는 미국 NRC가 해석하는 ‘수준’의 범위(0.5~5회)에 포함돼 한수원이 설계에 고려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원안위원들이 미국 NRC의 공식 답변자료 등 구체적 근거 제시를 요구하자 킨스는 이후 다시 보고하기로 했습니다.

이 문제가 4개월이 흐른 지난 14일에야 다시 논의된 것은 킨스의 관련 보고가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원안위원들이 지연시킨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도 원안위원들이 요구한 NRC의 공식 답변자료 같은 명확한 근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킨스는 “2016년 미국에서 NRC와 회의를 하면서 (수준의 범위가 ‘0.5~5’라는) 해석을 구두로 받았기 때문에 문서는 남아 있지 않다”며 회의 출장보고서와 실제 미국에서 1000만년에 2.59회의 항공기 재해도를 원전 설계에 고려하지 않은 사례를 제시했을 뿐입니다.

14일 회의 때 한 원안위원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원전에 대한 의도적 공격 문제도 ‘트집잡기’로 규정해버릴 문제인지 의문입니다. 의도적인 공격은 오랫동안 원전 설계에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의도적 파괴 행위까지 고려하며 경제성 있는 원전을 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이 부분은 설계가 아니라 중요 보안시설을 방어하는 방호 영역으로 남겨졌습니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한 9·11테러는 이런 개념에도 일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미국은 2009년부터 대형 항공기 자체를 폭탄으로 사용하는 셈인 의도적 충돌을 설계에 고려하도록 했고, 한국은 뒤늦게 2016년부터 미국을 뒤따랐습니다. 신한울 1호기는 이 규정이 의무화되기 이전에 2012년에 건설 허가가 이뤄졌습니다. 따라서 고의적 항공기 충돌에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원안위의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 심의를 위한 검토는 지난해 11월 킨스가 운영허가 심사보고서를 제출한 이후 6개월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고서 제출 이후 지난 14일까지 모두 11회 회의가 진행됐습니다. 별도 보고 없이 바로 심의 안건으로 올려 통과시키던 과거를 떠올리는 원자력계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운영허가가 처리되는 기간은 계속 길어져 왔습니다.

2011년 원안위 출범 이후 운영허가가 나간 원전 5기의 운영허가 의결 전 심의·보고 횟수를 보면, 신고리 2호기·신월성 1호기(2011년 허가) 각 1회, 신고리 3호기(2014년 허가) 5회, 신월성 2호기(2015년 허가) 6회, 신고리 4호기(2019년 허가) 8회 등입니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 관련 원안위 보고가 11회째 이어지고 있는 것을 이례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을 듯합니다.

원안위 비상임 위원 7명은 정부가 추천한 3명, 여·야가 각각 2명씩 추천한 4명으로 구성되도록 돼 있습니다. 7명 중 5명이 정부·여당 추천 인사라는 설명을 들으면 원안위가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의식해 고의로 운영 허가를 지연하고 있다는 주장이 더욱 그럴 듯하게 들릴 법 합니다.

하지만 원안위에서 북한의 공격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항공기 고의 충돌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있는 원안위원은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이병령 위원입니다. 비상임 위원 중 유일한 원자력공학 전공자가 이 위원입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한국형원자로 개발을 책임졌던 이 위원은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의식하기는커녕 탈원전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온 원로 원자력공학자입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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