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탈원전에 탈산림까지, 파헤쳐지는 산하

이규화 2021. 5. 2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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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토 9% 숲 면도하듯 밀 계획
산림 탄소중립 기능, 논란 많아
원전가동 탄소감축이 훨씬 효율적
길 아닌 길 가지 말아야

산림청이 2050년 탄소중립(탄소 발생량과 흡수량이 같아 공기 중 탄소 증가가 없는 상태)을 달성하기 위해 40년 된 산림 90만ha를 벌목키로 하면서 숲 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90만ha는 남한 전체 면적의 9%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전체 산지 670만ha의 13.5%에 해당하고 산림청이 경제림으로 관리하는 234만ha의 38%에 달한다. 산림청은 탄소 흡수량이 떨어지는 성목(成木) 3억 그루를 베어내고 흡수 능력이 강한 유목(幼木) 30억 그루를 심는다는 계획이다.

올 10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는 계획이지만 이미 그 취지에 따라 전국의 사유림에서 대대적인 싹쓸이 벌목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벌목을 하려면 전체 산림의 10%를 의무적으로 남겨놔야 하는데도 면도하듯 이뤄지는 현장이 언론에 보도돼 충격을 주고 있다. 곧 장마철이고 집중호우 시 토사유출과 산사태가 우려된다.

산림청이 대대적인 성목 벌목을 계획한 데는 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정책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지난 1월 산림청은 이 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산림청의 논리는 탄소흡수원으로서 산림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산림청의 의도는 잘못됐다 할 수 없다. 그러나 산림의 탄소흡수 능력에 대한 평가, 나이든 나무와 어린 나무 간 탄소 흡수 능력의 차이, 탄소 흡수 외 숲의 다양한 자연적 사회적 문화적 기능과 효능 등을 고려해야 한다. 산림청이 환경단체들과 언론의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런 고려가 미흡하거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또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산림청 계획의 목적은 탄소중립인데,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숲을 대대적으로 미는 것보다는 탄소발생이 거의 없는 원자력발전을 유지·개량하고 탄소발생의 주범 중 하나인 석탄화력발전을 줄이는 것이 훨씬 확실하고 효과적이다. 분명히 검증된 길을 나두고 굳이 어렵고 효과도 의심스러운 길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어린나무가 과연 나이든 나무보다 탄소흡수에 유리한가

그렇다면 대대적 벌목 작업으로 2050년 기준 연간 3400만톤의 탄소 흡수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나무는 성장기에는 활발한 광합성 작용으로 탄소 흡수가 왕성하다. 성숙기에는 흡수와 배출이 평형을 이룬다. 쇠퇴기에는 흡수보다 배출이 많다. 따라서 나무를 통한 탄소포집저장(CCS; Carbon Capture Storage)의 효과를 최대화하려면 나무의 생장기를 오래 유지시켜 탄소 흡수량을 높이고 적절한 시점에서 벌목을 해 나무의 형상(形像)대로 활용해 탄소를 나무속에 잡아둬야 한다. 산림청은 우리 산림의 탄소 흡수와 배출의 평형을 이루는 시점을 40~50년으로 계산했다. 따라서 이 수령(樹齡)의 나무를 베어내고 유목을 심는다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평형을 이루는 시기에 대해서는 반박 논문과 연구가 적잖다.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네이처(NATURE)는 2008년과 2014년 나무가 성목이 되면 한 때 탄소 흡수가 떨어지다가 이 시기를 지나 2차 생장기를 거치면서 흡수량이 다시 증가한다는 연구 논문을 실었다. 30~40년이 지나면 생장 경쟁에서 살아남은 나무들은 체적(體積)을 불려 줄기와 가지, 잎의 탄소 흡수량이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숲이 제2차 생장기를 거쳐 거목이 될 때까지 탄소 흡수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림청이 40년 이상 된 성목의 탄소흡수량이 떨어진다는 판단은 섣부른 것이다. 네이처지의 논문에 많은 산림학자와 숲 전문가들은 동의하고 있다.

◇탄소흡수는 숲의 다양한 효능 중 일부

백번 양보해 숲의 탄소흡수 기능을 위해 어른 나무를 베어내는데 동의한다 해도, 과연 숲이 탄소 흡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묻게 된다. 산림청은 2018년 우리 숲의 가치를 221조원으로 평가했다. 여기에는 숲이 갖는 다양한 공익적 가치가 포함돼 있다.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숲에 갖는 가장 친근한 효능은 경관적 가치다. 산지는 우리 국토의 67%에 달한다. 한국인이라면 산을 보고 자라고 산에서 뛰어놀고 산에 오르고 산에 묻혔다. 산의 숲은 한국인의 삶의 무대이자 안식처이다. 거기서 문화적 예술적 콘텐츠들이 생산돼왔다. 일시적이라 해도 헐벗은 민둥산은 상상력이 자리할 터전이 못 된다. 숲은 또한 갈수록 치유와 휴양의 공간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작년 산림청은 산림을 국민 휴양공간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도 밝혔었다. 나무가 없는 산의 치유와 휴양 기능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숲은 또한 수자원 보존과 야생동식물의 서식지 역할을 한다. 물을 저장했다가 천천히 흘려보냄으로써 집중호우 시에는 홍수피해를 막고 가뭄 때는 농수 부족을 메워준다. 계절별 극심한 강수량 격차를 보이는 우리나라에서 숲은 수자원을 보존함으로써 그 격차를 줄여준다. 전국의 많은 댐들도 실은 숲이 수자원을 보존하기 때문에 가능한 셈이다. 이로 인해 산사태도 막게 된다. 야생동식물의 서직지로서 숲의 가치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동화 '나무를 심은 사람'을 보면 숲이 얼마나 동식물과 인간에게 필요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황량한 땅에 나무를 한 그루 두 그루 심어나가면서 풍요로운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을 안다면 산림을 면도하듯 밀어버리는 벌목은 그만둬야 한다.

산림청의 대대적 벌목 계획은 목재 생산이라는 산림의 본래 목적에서도 벗어나 있다. 산림청이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에 제출한 '탄소중립 벌채' 후 나오는 목재 사용처를 보면 발전용 바이오매스 사용량을 2050년까지 현재보다 13배 늘리겠다고 했다. 반면, 건축이나 가구용 목재 용도로는 1.7배 늘리는데 그쳤다. 탄소 흡수를 높이기 위해 벌목을 한다면서 그 벌목한 나무들을 탄소 배출을 위한 데에 쓰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한울 원전 가동하면 국토 9% 민둥산 안 만들어도 돼

산림청은 탄소중립 벌채를 통해 2050년 기준 연 3400만톤의 탄소를 흡수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에 대한 긍정·부정 논란을 떠나 앞으로 투입될 예산은 6조원이란 적잖은 예산이 들어간다. 산림청은 일자리 창출 효과도 거론하지만 얼마나 지속가능하고 양질의 일자리일지는 의문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해법을 국민의 논란을 일으키는 산림 벌채에서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신한울 3·4호기 원전을 가동해 석탄화력을 대체하면 연간 1500~2000만톤의 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고 한다.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원전의 공사를 재개하면 2050년까지 기다리지 않고서도 2030년이면 매년 그 정도의 탄소감축 효과를 낼 수 있다. 더군다나 현재 완공 후 1년이 넘도록 가동을 않고 있는 신한울1호기의 원전만 가동해도 당장 연간 1000만톤의 탄소 감축을 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그럼에도 신한울1호기는 친정권 인사들이 장악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말도 안 되는 코미디 같은 이유를 대며 가동을 위한 심의·의결을 미루고 있다.

길이 아닌 길을 가서는 안 된다. 탄소중립을 위한 대대적 숲 싹쓸이 계획은 멈춰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도 모자라 탈산림으로 금수강산을 파헤치고 있다. 나라 곳곳에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국민들은 알아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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