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가산점, 도대체 왜?"..'역차별'의 속사정

안명진,김승연,김아현,정인화 2021. 5. 2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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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은 왜] 기사에 각종 '여성 우대' 정책 언급하며 "역차별" 비난
도입 이유·목적 살펴보니 불평등 개선 필요


“차별받고 있는 내용을 몰라서 없다 하는 거지~ 여성아파트, 수영장요금…여성창업지원금, 여성창업 가산점 등등 아주 많은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니 없다 하는 거지…”(h*******)

국민일보 기사 <“역차별은 없지만…군대 보상은 필요해”[이대남은 왜]>에 달린 댓글이다. 이 기사는 20대 남성 열 명에게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묻고 그 답변을 갈무리했다. 인터뷰에 응한 20대 남성들은 대체로 “역차별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런데 기사에 달린 댓글 반응은 사뭇 달랐다. ‘역차별 사례가 얼마나 많은데, 왜 없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댓글 중 일부는 실제 남성이 받는 역차별 사례라며 여러 정책을 열거하기도 했다.

언급된 정책들이 실제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해당 정책이 도입된 이유와 맥락을 살펴보기로 했다. 국민일보는 [이대남은 왜] 시리즈의 후속 격으로, 온라인상에서 남성 역차별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다섯 가지 정책의 속사정을 들여다 봤다.

여성 창업지원금?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운영하는 ‘청년창업사관학교’는 사업 선발 시 최대 1억원의 창업지원금을 제공한다. 사업 대상 선발 과정에서 여성에게 가산점 0.5점을 주고 있다. 2021년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한 1065명 중 여성창업자는 28.5%(304명)다. 지난해 21.4%(222명) 대비 7.1%p 증가했다.

이 사업 외에도 여러 유형의 여성 창업자 지원 정책이 존재한다. 언뜻 보면 역차별처럼 보이지만 전체 창업시장을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타트업레시피, '스타트업레시피 투자리포트 2020' 캡처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020년 연간 창업기업동향’은 지난해 여성 창업기업 비율이 전체의 46.7%(69만3927개)라고 집계했다. 하지만 이 중 투자를 유치한 여성 창업기업은 51곳으로, 전체 투자 유치 기업의 6.6%(스타트업레시피, ‘스타트업레시피 투자리포트 2020’)에 불과했다. 여성 창업인이 남성 창업인보다 자금 조달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산업연구원이 2014년에 낸 보고서 <여성 지식·기술 창업활동 실태분석과 시사점>은 “여성 창업자들이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자금조달(44.8%)”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여성 창업기업의 자금 사정 완화를 위한 방안 마련이 필요하며, 특히 창업 6개월∼3년에 이르는 창업 초기 단계 기업 지원을 위한 공공기관 정책자금의 지원 규모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여성 시나리오 작가 가산점?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2021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본선심사에서 여성 작가에 가산점 2점을 부여했다. 현재 공모전 본선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는 영화계의 심각한 ‘남초’ 현상을 고려한 조치다.
영화진흥위원회,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캡처

2020년 개봉된 영화 중 순제작비가 30억원이 넘는 영화의 핵심창작인력 성비를 보면, 감독의 경우 남성 비율은 86.2%, 여성은 19.8%로 드러났다.각본 역시 남성 73.8%, 여성은 26.2%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심혜경 한신대 교수(영진위 한국영화성평등소위원회 위원)는 21일 “전 사회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구조에 더해 도제식 교육 시스템, 높은 강도의 육체노동이 필요한 영화 제작 현장의 특성 등이 맞물려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며 “(가산점 제도는) 공정한 영화 생산환경을 위한 인력 재배치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같은 문제를 겪는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정책을 펴고 있다. 스웨덴은 공적 제작기금의 50%는 반드시 여성 창작자에게 돌아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호주는 공적 기금을 지원받는 프로젝트에서 여성 핵심창작자의 비율이 50%가 되도록 기금의 운용 지침을 마련했고, 여성 고용 시 임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여성 전용 아파트?

여러 댓글에서 언급된 ‘여성 전용 아파트’는 여성만 입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 전용 임대주택은 1인 여성가구에 대한 범죄위험을 고려해 도입, 현재 여러 지자체에서 시행 중이다. 서울도시주택공사(SH) 관계자는 “(서울의 여성전용임대주택인) 여성안심주택은 ‘1인 여성가구’ 맞춤형 임대주택으로서,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1인 여성가구의 안전과 생활패턴을 반영한 주택”이라고 설명했다.
천왕여성안심주택 홍보 이미지, SH 제공

1인 여성가구에 대한 범죄위험은 1인 남성가구보다 높다. 젊은 여성이 혼자 산다면 위험은 더 커진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7년에 발표한 ‘1인 가구의 범죄피해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33세 이하 청년 1인 가구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범죄 피해를 볼 가능성은 2.28배로 배나 높았다. 주거침입 피해 위험은 11.23배로 급증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여성안심주택을 역차별이라 보긴 어렵다. 지자체마다 도입 상황이 조금씩 다르지만, 서울만 놓고 보면 여성안심주택의 숫자는 매우 작다. SH는 전체 임대주택 23만9750호 중 96호를 여성안심주택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는 전체 임대주택 19만5000여호 중 209호를 여성만 입주 가능한 임대주택으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여성안심주택 외에도 홀몸 어르신, 청년, 한부모가정, 신혼부부, 창업인, 다문화가정 등 계층별·연령대별 수요에 맞는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여성안심주택은 안전 및 보안 강화라는 여성의 수요에 초점을 맞춘 임대주택으로 볼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부족하다보니 남성 청년들이 박탈감을 느낄 순 있지만, 이는 주택 공급을 늘려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여성 임대주택을 없애야 할 이유는 아니다.

여성 공학인 할당제?

온라인상에서 자주 거론되는 ‘여성 공학인 할당제’는 ‘여성과학기술인력 채용·승진목표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과학기술 관련 기관의 채용이나 승진에서 여성 비율을 일정 수준 보장(채용 30% · 승진 15%)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다. 2019년 현재 이 목표치는 간신히 달성됐다. 정책 대상인 공공 연구기관 126곳의 전체 채용 인원 중 32.2%가 여성이다. 이는 2017년 30.4%, 2018년 31.1%에서 소폭 상승한 수치다. 승진 대상은 2019년 현재 전체의 16.1%가 여성이다. 2017년 16.3%나 2018년 17.4%보다 낮지만, 목표치는 웃도는 수치다.

다만 민간을 포함한 전국 4639개 연구기관 전체로 따져보면, 2019년 여성 신규 채용자는 전체의 26.2%에 머물고 있다. 정부가 설정한 자체 목표치인 30%에 미달하는 숫자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2019년 남녀과학기술인력현황' 자료 일부

문제는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 인력 공급 부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과학기술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처 방안으로 유휴 여성 과학기술인력 활용을 든다. 정부가 2011년부터 ‘과학기술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을 수립, 발표할 때마다 여성 과학기술인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는 이유다.

학계에선 여성 과학기술인을 사회로 끌어내려면 경력단절이나 채용에서의 불리함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여성 과학기술인의 채용과 승진에 혜택을 주는 이 제도를 단순한 역차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과학기술인력 채용목표제는 이런 맥락에서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제도라고 봐야 한다.

여성 수영장 할인?

수영장 여성 할인제도는 여러 지자체가 운영 중이다.서울의 경우 ‘서울특별시립체육시설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근거해 시립 수영장을 이용하는 13세 이상 55세 이하의 여성에게 수강료의 10%를 감액해준다. 이 역시 ‘여성 특혜’로 비칠 수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과도한 특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여성들이 월경 기간 수영장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2006년 당시 20대 여성이던 송모씨가 서울의 한 수영장에서 한 달 이용권을 구매한 후 월경을 사유로 기간 연장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하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일을 계기로 도입됐다.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반영한 정책에 대해 역차별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
김승연 김아현 정인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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