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취재'하고 '부업'하는 전국의 기자들

손가영 기자 2021. 5. 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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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업하는' 주재 기자들, '사익↔보도 거래' 일탈 전국적 현상… 언론계, 부업 조장하며 관리·감독 전무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 “매일 군청 각 과·실 사무실을 출근하다시피 들린다. 공무원을 1~2시간 잡아두는 건 보통이다. 반말·막말을 일삼고, 대화보다 자기 주장만 밀어붙인다. 과도한 정보공개와 막말 취재가 심해진 때 공무원들이 알아봤더니 본인과 지인이 군청 보조금 지원 사업 신청에 떨어진 직후더라. 기자가 이래도 되는가?” (전남 지역 ㄱ기자)

#. 임순남뉴스 발행인, 포커스1 프리랜서 기자, 임실군생활문화예술동호회 사무국장. 임실군의 A기자는 기자와 지역 문화기관 직원을 겸직했다. 6년 가량이다. 임실군청의 보조금을 받는 이 문화기관은 A기자 인건비도 매년 2700만원씩 보조금에서 냈다. 최근 A기자가 비판기사를 거론하며 각 공공기관에 광고 계약을 강요한 정황이 드러나자 경찰은 그를 공갈 혐의로 수사 중이다.

언론 외 수익 활동을 겸직하는 지역 언론인의 윤리 위반 문제가 전국으로 퍼져 있다. 대부분 기자 권한을 사익 추구에 남용해 벌어진 일탈이다. 불법 소지가 적어 수사기관이 개입할 여지가 좁은 데다 보복성 취재가 우려돼 피해자들이 적극 나서지 못하면서 문제 개선은 더디다.

청주 소재 한 미세먼지 방진망 ○업체는 지난 3월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린다. 조달청부터 대전시교육청, 광양시청, 충북도청 등 관급 계약을 체결한 공공기관에 ○업체를 비방한 민원이 문서나 전화로 꾸준히 접수됐다. '특허 침해'부터 '시험성적서 사기' 주장까지 사실을 왜곡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명예훼손 문제와 더불어, 업체는 각 기관에 일일이 해명까지 해야 해 한동안 업무가 마비됐다.

이는 전직 ㄴ일보 대전·세종본부장이었고 현직 ㄴ인터넷신문 운영을 하고 있는 B기자와 지인의 민원 제기였다. 그런데 B기자는 충남 소재의 한 방진망 업체 임원을 겸직하고 있었다. 동종 업계 종사자가 경쟁 관계에 있는 특정 업체의 민원을 계속 내는 셈이다.

▲사진=pixabay.

민원 과정에서 기자 권한이 활용됐다. 지난 4일 있었던 대전시교육감 면담이 예다. B기자는 또다른 지역 기자 C·D씨 2명과 함께 대전시교육감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B기자 등은 ○업체의 문제점을 교육감에게 말했다. 관급 계약 문제로 기관장을 즉시 면담할 수 있는 업체는 많지 않다. 대전시교육청 안팎으로 '기자 직위로 교육감을 만나 자기 계약 관련된 애기를 했다'는 말이 나왔다.

B기자는 “○업체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정당한 업무수행을 위해서 지적한 것”이라며 “사익을 꾀한 게 없다. 문제 제기로 계약을 더 수주한 것도 아니고, 음해를 한 것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B기자 대신 민원을 넣었던 C씨도 “행정사로서 민원을 넣었지 기자로서 한 게 아니”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업체는 B기자의 특허 침해나 시험성적서 사기 주장이 왜곡임을 증명하는 증빙자료를 각 기관에 제출했다.

지원 사업 탈락 후 시작된 집중 취재… 사무실 고성도

곡성군은 군청 출입기자의 보복성 취재 논란이 거세다. ㅈ온라인 신문의 E기자가 논란의 중심이다. E기자를 포함한 특정 출입기자들의 막말 취재는 군청에서 줄곧 논란이었다. '출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일 업무 공간에 찾아와 오랜 기간 머물거나 두어시간씩 담당자를 붙잡고 취재하기가 다반사였다. 청사 밖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 피우는 공무원 사진도 무단으로 찍었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직원이 늘어나자 공무원노조 곡성군지부는 지난 3월30일 '민원인의 막말과 폭력은 범죄'라는 1인 시위를 시작해 50일 넘게 진행 중이다.

▲공무원노조 곡성군지부 조합원이 군청 부지 내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공무원노조 곡성군지부 홈페이지

보복 취재 의혹은 최근 E기자가 자신이 신청한 지원 사업을 중심으로 집중 취재를 하며 불거졌다. E기자는 친분이 있는 F기자의 아들이 곡성군 청년 농업인 지원 사업에서 떨어지자 심의위원 명단을 정보 공개 청구했고, 대면 취재도 이어갔다. E기자도 2000만원 상당의 중년 창업 지원 사업과 700만원 규모 소상공인 지원 사업에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이후 각 부서에 '불공정한 심사 과정'을 지적하며 사무실에서 고성으로 항의도 했다. 군수, 부군수 등도 직접 만났고, 불합리하게 행정을 집행했다며 담당 공무원의 사과문도 요구했다. 군청 관계자들은 '갑질', '횡포' 수준이라고 호소했다고 알려졌다.

E기자는 이에 “사익과 관련 없다. 이미 떨어진 걸 복구해달란 취지가 전혀 아니다. 취재를 해보니 십 년 넘게 심사위원을 하고 있거나 전문 역량이 없는 심사위원이 확인됐다. 이런 문제점을 군청에 조목조목 짚어 줬다”며 “군수, 부군수를 만나 잘못 인정을 받았고 이 문제에 대한 담당자 사과도 받았다”고 밝혔다. 막말 취재도 “그런 적 없다. 공무원에게 불편한 취재를 하니, 그런 부분에서 곡해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보도-사익 거래' 이해 충돌 전국 다반사

비방 보도를 중단하는 대가로 자기 가족 업체에 일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 2018년 충북의 한 지역 주재 기자 형제 2명은 시멘트 회사의 협력업체와 '일체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과 함께 '향후 발생하는 일에 대해 협력할 뿐 아니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합의서를 썼다. 당시 이 업체는 두 기자가 왜곡된 사실로 비방 보도를 내 민·형사상 대응을 준비했다. 언론중재위가 두 기자 측에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고 직권 조정(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을 낸 후였다.

당시 합의 사정을 아는 업체 관계자는 “'돈독한 관계'가 영업 편의였을 것”이라며 “합의 이후 주재 기자의 또 다른 형제가 운영하는 물류업체와 거래량이 늘었고, 이 물류업체는 얼마 후 위 업체 부지로 아예 사무실을 이전했다”고 밝혔다. “비방 보도를 시작한 이유도 애초 일감을 주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거나 계약을 더 따내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지역사회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최근 임실군 A기자의 겸직 공론화는 이례적이다. 전남 지역 한 군청 관계자는 “시·군 단위 지역이면 사회관계망이 좁다. 기자와 취재원이 대부분 선·후배 관계로 얽혀 문제 공론화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불법이 아니라 비윤리 문제니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다. 보복성으로 2·3차 취재가 이어져 당사자들이 대부분 입을 닫는다”고 말했다.

임실군 A기자는 군청 보조금을 지원받는 기관의 직원으로서 언론사 기자를 겸직한 '겸직 금지 의무' 윤리 위반이 문제다. A기자는 임순남뉴스 발행인이자 포커스1 전북본부장을 맡고 있다. 이와 관련 전북 지역 언론들은 “기자는 직무 관련 여부와 상관없이 1회 100만원, 연 300만원 취업 제공을 받아선 안된다”며 김영란법 위반 문제도 거론한다.

▲지난 18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전북공무원노조(위원장 김진환)는 지난 10일 임실군청 앞에서 부당한 갑질을 일삼은 언론사에 대해 사죄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전북공무원노조 제공.

'기자 부업' 조장하면서 관리감독 수수방관

지역 주재 기자 상당수가 부업을 가지고 있다. 언론사들은 통상 시·군 단위의 주재 기자와는 사업 계약을 맺는다. 지사·지국 영업권을 주고 그 대가로 기자로부터 지자체 등의 광고와 신문 대금을 받는 계약이다. 본사에 납부할 대금이 미리 정해져 있어 이를 채우지 못하면 주재기자들은 사비를 털어 메꾼다. 취재·보도로 안정적인 소득을 벌 수 없으니 다른 소득원을 두게 되는 구조다.

남원 지역의 ㄴ기자는 “출입 기자 중 정상적으로 언론 활동을 하는 기자는 15~20% 가량, 50% 이상이 부업을 갖고 있고 30% 정도는 명함만 파놓고 취재는 안하는 기자”라고 실태를 전했다. 몇 년 전 남원시청 출입기자 25명 가량 중 최소 13명이 부업을 하고 있었다. 인쇄업, 덤프트럭 차주, 중고자동차 판매, 건설회사 사장, 면 발전협의회장, CCTV 제조회사 이사, 골재 채취 업체, 식료품 판매 등이다. ㄴ기자는 "고추장을 파는 한 기자는 명절 등 지자체가 선물을 구매하는 대목 때마다 각 과장들에게 자기 고추장을 사라며 홍보한다"고 말했다.

ㄴ기자는 “부업 자체 보다 기자 자질을 검증하지 않고, 관리조차 하지 않는 언론사가 근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등록된 출입기자가 없으면 해당 지자체에서 광고를 못받으니 일간지들조차 검증을 하지 않고 사람만 급하게 구한다”며 “사람을 못 찾던 한 일간지는 지역 라이온스클럽 회장을 지낸 사람에게도 부탁하더라. 남원엔 과거 폭력 조직 소속이거나 뇌물 수수 등 돈 문제로 형사 처벌을 받은 기자만 5명이 더 있다”고 전했다.

▲사진=pixabay.

주재 기자들이 사익 추구 유혹에 빠질 수 있는 걸 알고 있음에도 언론계가 방관한다는 비판이 높다. 이달 임실군 출입기자의 겸직 논란 후 전북민언련은 “대부분 인터넷 신문사는 지역독립법인이라는 이유를 들어 지역 일에 관여하지 않으며, 지역본부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해당 기자 보도를 관리 감독하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이 이해충돌과 이권개입에 쉽게 노출된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기자 윤리 준수 여부를 방만하게 관리하는 것은 지역 언론 환경을 악화시키는데 동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북민언련은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 대해서도 “이해충돌 사안이 발생한 데는 행정의 세밀하지 못한 보조금 지침 운영 측면도 크다”며 “'김영란법' 제정 이후로는 언론인의 겸직에 대한 사항을 검토하고 보조금을 수령하는 범위가 부정청탁에 해당되는지 꼼꼼하게 확인했어야 함에도 해당 지자체와 책임 소재를 떠넘기며 안이한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수십년 되풀이된 문제임에도 언론계가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 점에 비춰 시민사회 감시 역량을 키우는 게 실효적이란 평가도 있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광고홍보학)는 “서울·지역 불문하고 언론과 지자체는 악어와 악어새 관계다. 유권자 주민을 의식하는 지자체장은 언론 보도를 관리하려 들기 마련이고, 지자체 광고를 중심으로 유착되면서 감시, 견제, 비판이란 언론 본연의 사명은 후순위로 밀린다”며 “기자의 일탈 때문에 지자체가 대응에 나서도 '훈계' 정도에 그칠 것이다. 유착하지 도록 폭로하고 감시하는 외부 세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유착 관계에선 개혁의 동력은 보이지 않는다”며 “지역의 언론 비평 매체나 언론 감시 단체, 나아가 각 분야의 시민단체들이 관련 쟁점을 다루는 언론을 감시하는 방식 등으로 언론 밖의 섹터에서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문제에 침묵하지 않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사 수정 : 28일 13시 40분 충남 소재 방진망 업체와 관련된 내용 중 해당업체 대표이사와 B기자와의 관계를 오인해 해당 내용을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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