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다툼에 승용차 18시간 봉쇄했다..굴삭기 기사의 최후

이수정 2021. 5.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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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삭기 이미지. 기사와 직접 관계 없음. [사진 pixabay]

주차된 차 앞뒤로 장애물을 둬 일정 시간 동안 차를 움직일 수 없게 했다면 이를 재물손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굴삭기 운전자 A씨에게 재물손괴죄를 인정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평소 주차하던 자리에 다른 차 주차하자…
지난 2018년 A씨는 자신이 평소 굴삭기를 주차해두던 자리에 B씨가 승용차를 주차해둔 것을 봤다. 이에 A씨는 B씨의 승용차 앞에 높이 120cm 상당의 철근과 콘크리트 주조물을, 뒤에는 굴삭기 부품인 크러셔(Crusher·돌 등을 깨는 장비)를 차와 가깝게 두어서 차를 움직일 수 없게 했다. 자신의 연락처를 남기지도 않았다.

검찰은 A씨가 B씨의 차를 못 쓰게 한 것을 재물손괴죄로 보고 기소했다. 그런데 1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은 “범죄가 되지 않는다”라며 A씨에게 무죄 판결을 했다. 당시 법원은 “재물손괴는 물건 자체의 형상이나 속성, 구조나 기능에 장애를 초래해야 하는데, A씨 행위만으로는 승용차 자체의 형상이나 구조에 아무런 장애가 초래되지 않았다”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A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1심에서 무죄가 나오자 재물손괴죄에 더해 예비적으로는 업무방해죄까지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하기도 했는데, 2심은 재물손괴죄만으로도 A씨를 처벌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항소심 “일시적으로 차 못쓴 것도 재물손괴”
형법의 재물손괴죄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손괴 또는 은닉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여기서 “재물의 효용을 해한다”는 어떻게 판단하는 걸까. 대법원은 판례에서 “사실상으로나 감정상으로 그 재물을 본래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재물의 효용을 해하는 사례로 판결했다. 그러면서 일시적으로 그 재물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이에 포함된다고 명시했다.

항소심은 당시 B씨가 차를 빼려고 애썼지만 실패한 점을 판결에 언급했다. B씨는 그날 밤 10시쯤 나와 차 앞뒤로 장애물이 있는 상태에서 차를 빼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그러자 112에 신고해 경찰관 2명과 함께 자동차 앞뒤의 장애물을 옮겨보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결국 B씨는 다음날 새벽 1시쯤 이를 포기하고 떠났고, A씨는 아침 7시가 다 되어서야 굴삭기 부품을 치웠다. A씨가 전날 오후 1시쯤 굴삭기 부품을 가져다 놓은 점을 고려하면 B씨는 약 17~18시간 동안 차를 운행할 수 없었다.

A씨는 “B씨가 마음대로 주차해 자신이 정당한 주차구역 이용에 방해를 받았고 B씨가 자신에게 직접 장애물을 치워달라고 한 것도 아니다”라며 법정에서 다퉜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도 이를 옳다고 보고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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