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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모시기' 뒤에 '등급 가르기' 논란..IT기업 취업문 넓어졌을까

선담은 입력 2021. 05. 24. 11:36 수정 2021. 05. 2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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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모집 인원보다 지원자 적다고 다 합격하는 것 아냐"
단기교육 마친 개발자 둘러싸고 '코더-프로그래머' 논쟁도
최근 연봉을 인상하며 ‘개발자 쟁탈전’에 나선 아이티(IT) 기업의 취업을 보장한다는 성인교육 스타트업 패스트캠퍼스의 광고. 패스트캠퍼스 누리집 갈무리

“업계에 에이(A)급 개발자는 한정돼 있는데, 회사가 그 많은 인원을 다 뽑을 수 있을까?”

경기도 판교의 한 아이티(IT) 회사에 다니는 10년차 개발자 ㄱ씨는 최근 주변 기업들의 소식에 의문이 들었다. 네이버(900명), 크래프톤(700명), 스마일게이트(500명) 등 ‘개발자 쟁탈전’에 나선 게임·아이티 기업들이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채용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인원 공개 없이 ‘세 자릿수’ 채용을 언급한 넥슨과 카카오를 제외하더라도 이미 2000명을 훨씬 넘는다. 채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수백명을 뽑는다는 아이티 기업으로의 취업·이직은 이전보다 쉬워진 걸까.

■ 개발자 쟁탈전의 실상 2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 기업은 ‘사람 수를 채우기 위한 채용은 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회사에 필요한 인력이 500~900명 규모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량이 부족한 직원을 뽑을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올해 초 연봉을 일괄 인상하는 등 보상 제도를 강화한 만큼 채용전형에서 이전보다 눈높이를 높일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지난 3월 연봉 1500~2000만원 인상에 더해 최근 직원들에게 1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증여하기로 한 크래프톤 쪽은 “최근 게임 이외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등 양적 성장만 한 것은 아니기에 기존보다 역량 개발에 훨씬 노력을 기울인 분들이 입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각 기업들이 ‘러브콜’을 보내는 우수 개발자는 사실상 소수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실제 이들 기업들의 채용 규모가 발표한 목표치에 못 미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스마일게이트 쪽은 “회사는 그런 분(우수 개발자)을 찾을 것”이라며 “(채용 목표 인원인 500명보다 적은) 490명이 지원했다고 해서 모두 합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올해 900명을 채용하기로 한 네이버도 비전공자 개발자의 채용·육성을 발표했지만, 현재까지 이들에 대해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선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네이버 쪽은 “현재 진행 중인 신입사원 채용전형이 끝난 뒤 내부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할 것”이라고만 전했다.

■ 공공연한 ‘코더’와 ‘프로그래머’의 간극 이처럼 아이티 기업들의 고급 개발인력 수요가 높아지면서, 일각에선 ‘코더’와 ‘프로그래머’를 역량 차이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국비지원으로 컴퓨터 학원에서 단기교육을 이수한 개발자의 경우 주로 중소 시스템 통합(SI·System Integration) 업체에서 경력을 시작하는데, 다단계 하도급 관행 속에서 발주자 요구에 따른 단순 코딩 작업만 반복해 기술 구현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소스코드만 ‘복붙’(복사 후 붙이기)하는 개발자는 코더일 뿐, 프로그래머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2019년 발표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종사자 규모는 32만6900명에 달하지만, 아이티 기업들이 인력난을 호소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지난해 10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국에는 만연한 공장노동자에 가까운 에스아이(SI) 개발자는 많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꾸준히 성장하며 깊이가 축적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일명 ‘네카라쿠배’ 열풍 속에서 프로그래머로서의 역량을 고민하는 건 비단 국비학원을 나와 중소기업을 다니는 개발자들만의 일은 아니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뒤 대기업 시스템통합 계열사에서 일해 온 개발자들 역시 ‘나는 코더가 된 것 같다’고 자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룹사의 일감을 받아 개발업무를 하거나 프로젝트를 관리했기에 포털·게임·플랫폼 기업의 개발자들처럼 주도적으로 서비스 운영에 참여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판교 아이티 기업의 연봉인상 소식에 개발 직군이 대거 이직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대기업과 서비스 운영 아이티 기업 간) 직무 특성이 다르다 보니, 실제 이직을 한 사례는 드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종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산업연구팀 연구원(변호사)은 “시스템 통합 기업과 네이버 같은 온라인 서비스 회사의 분야가 다르다 보니 개발자 간 역량 차이를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SI 쪽에서 비교적 숙련도가 높은 개발자들이 네이버나 쿠팡 등으로 이직한다는 얘기는 사례 인터뷰에서 듣곤 한다”며 “내부적으론 (근무조건 등) 격차가 심해 이들을 동일한 소프트웨어 산업 인력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고 평가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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