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원전 안 사면 미국의 적"..미국이 손님에 숙제 떠안긴 이유

세종=안재용 기자 2021. 5. 2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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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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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바라카 원전. (한국전력 제공)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나 중국 원전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IAEA(국제원자력기구) 추가의정서란 조건을 내걸지 않았겠죠. 손님 쫓아내는건데 그런 짓을 누가 해요. (IAEA 추가의정서 가입이란 조건은) 사우디아라비아에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봐야 해요."(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한국과 미국이 21일(현지시간) 해외원전시장에 함께 진출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IAEA 추가의정서 가입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한국과 미국의 원전을 사가려면 더 엄격한 감시를 받아야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원전을 구매할 고객에게 혜택을 내걸긴 커녕 의무를 지웠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한미 원전 구입은 곧 IAEA를 중심으로 한 미국 주도의 '핵 비확산' 체제에 참여함을 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한미 원전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미국에 도전하는 대안적 패권추구 세력의 편에 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적이 된다는 의미다.

1997년 5월 채택된 추가의정서에 따르면 IAEA는 기존 안전조치와는 달리 핵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연구개발 활동 등도 감시할 수 있다. 현재 140여개국이 추가의정서 협약에 가입돼 있다. 걸프전쟁 이후 이라크가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된 것을 계기로 맺어진 협약이라 핵확산 방지에 대한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미국, 원전 수출보다 핵확산 방지가 우선…美 칼끝이 향한 곳은?
압둘 라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한미 정상이 발표한 공동성명문을 쉽게 풀면 '핵무기 보유를 시도하는 나라에는 원자력 발전을 수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원전은 핵보유의 첫단계인데, IAEA 추가의정서는 핵보유를 위한 우라늄 농축시설 건설을 미연에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현재 한국이 원전 수출을 시도하는 나라는 체코와 폴란드 등 동유럽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이다.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제공받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체코와 폴란드가 핵무장을 꿈꾸고 있을 가능성은 적다. 결국 해당 공동성명은 일차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한 셈이다.

현재 미국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중동 국가는 이란이다.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국제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이후 핵무장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핵확산이 주변으로 도미노처럼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이 핵무장한다면 자신들도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교 수니파 맹주로서 시아파 국가인 이란을 끊임없이 견제해왔다.

사우디가 중국·러시아를 선택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일 (현지시간) 중국 샤먼의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두 정상은 이날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해 논의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AFP=뉴스

문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수주 계약을 확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IAEA 추가의정서 가입을 강제하지 않는 러시아나 중국을 선택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미의 공동성명이 오히려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미국 입장에선 사우디아라비아가 자국 또는 한국의 원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기에 이같은 성명을 발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 또는 중국과 원전 계약을 체결한다면 미국의 제재 등 응징이 가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진짜 고민하고 있는 상대는 자극하지 않는다"며 "(추가의정서 채택 의무화는) 한국 원전을 선택해도 추가의정서 채택을 수용해야 한다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만약 러시아나 중국 원전을 선택한다면 미국에서 제재조치를 강구할 것"이라며 "해당국가를 선택하지 않으리란 자신감이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 정부 관계자도 "그런 조항을 둬도 계약을 수주할 수 있는 협상력이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처음부터 한국을 염두에 뒀다는 정황증거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4GW(기가와트)급 원전 2기를 발주했는데, 전세계에서 해당 용량의 원전 설계 능력를 보유한 국가는 한국 뿐이다.

미국은 왜 한국을 택했나
(로이터=뉴스1) =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회담 뒤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C) 로이터=뉴스1

그렇다면 미국은 왜 한국을 선택했을까. 핵확산을 막기위한 이유라면 미국이 직접 원전을 수출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핵연료의 유출입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어서다.

문제는 기술력이다. 세계최초로 핵무기를 만든 미국이 원전 기술력이 부족하다면 의아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 40여년간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다. 설계기술은 세계최고 수준이지만 건설 관련 노하우는 부족하다는 평이다. 반면 한국은 최근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상업운전을 성공시키는 등 실적을 쌓아왔다.

정 교수는 "설계는 (미국이) 최고지만, 건설현장 '십장'이 미국에는 없다"며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에게 사우디아라비아 원전건설 의사를 물었는데, 그들이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지연 보상금을 물어줄 상황이 오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과의 원전동맹, 이득일까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해외원전시장 공동진출이 수주과정에서 협상력을 높여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기와 직결된 에너지원이라 성능과 비용외에도 다양한 정치·외교적 요인이 계약과정에서 작동하는데 미국이 이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원전 발주액이 통상 수십조원에 달하는 만큼 '나눠먹기'로 발생하는 손해보다 이득이 더 크다는 설명이다. 당장 체코와 폴란드 수주전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미국 기업과의 관계 재정립은 문제다. 독자생존이 가능했던 한국 원전산업계가 불가피하게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됐기 때문이다. 러시아 원전기업 로사톰 등과 협력했던 국내 기업들이 기존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변수다. 정부 관계자는 "동유럽 수주전에서 우리와 미국 원전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 많았다"며 "이번 회담으로 명확하게 정리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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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안재용 기자 po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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