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방마다 "죄송해요"..극단선택 간호공무원은 사과만했다

오원석 2021. 5. 2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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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들께 먼저 의논하는 게 맞는 건데 제가 진짜 마음이 고되서 그런 생각을 못 했네요."

"네. ○○○ 죄송합니다. 코호트 된 후에 일어나는 일들에 머리는 멈추고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힘들어서 판단력이 없었습니다. 더이상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해나가겠습니다."

부산 동구보건소에서 근무하던 이모(33)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직전 직장 동료들과 나눈 메시지. [연합뉴스]


지난 23일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모(33)씨는 부산 동구보건소에서 일하던 간호공무원이었다. 이씨는 사망 직전인 지난 22일 직장 동료들에 자신의 심정을 전했다. "죄송하다", "실망시키지 않겠다". 이씨의 사망 하루 전 카톡은 사과와 자책으로 물들어 있었다.

26일 이씨의 유족은 이씨가 동료들과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를 일부 공개했다. 유족은 이씨가 해당 보건소로부터 업무를 과다하게 부여받는 등 격무에 시달리다 우울증 증세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18일부터 확진자가 나와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부산 한 병원을 관리했다.

부산 동구보건소에서 근무하던 이모(33)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직전 직장 동료들과 나눈 메시지. [연합뉴스]


"너무 부담돼서 어떻게 해야할지…"

이씨는 22일 오전 8시 19분 동료 2명과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에서 이씨는 "이른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하다"며 "어제 오전에 (코호트 격리된) A병원을 다녀와서 넘 마음에 부담이 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이어 "정말 멘붕이 와서 B님과 의논했고, 저는 주도적으로 현장에서 대응하기에 자신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몇 가지 방안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C 선생님과D 주무님이 같이 맡아 하기로 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씨는 "먼저 의논하는 게 맞는데 제가 진짜 좀 마음이 고되서 그런 생각을 못 했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이씨는 상사와도 대화를 나누며 거듭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씨의 상사는 카카오톡 메시지로 이씨에게 "코호트 격리를 처음 맡았고, 원래 담당해야 하는 순서가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힘들고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는 있다"면서 이씨를 다독였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중간에 시작했는데 중간에 못하겠다고 하면 제 입장에서는 책임감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간부는 "평소 이씨가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것을 알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잘 모르는 직원이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어쨌든 잘 부탁합니다"고 적었다.

이에 이씨는 "죄송하다"라며 "코호트 된 후에 일어나는 일들에 머리는 멈추고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힘들어서 판단력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해나가겠다"고 답했다.

부산 동구보건소에서 근무하던 이모(33)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직전 직장 동료들과 나눈 메시지. [연합뉴스]


유족 "순서 아닌데 업무 떠맡았다"

유족은 보건소가 이씨에게 순서가 아닌데도 일을 떠맡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건소 직원들이 차례로 순서를 정해 코호트 병원을 담당해 왔으나, 이씨는 불이익을 당했다는 주장이다. 유족에 따르면 이씨는 포털사이트에 우울 관련 단어를 검색하고, 일을 그만두는 내용의 글도 수차례 찾아봤다고 한다. 또 공무원 면직, 질병 휴직 등을 문의하는 글도 수차례 찾아봤다고 한다.

최형욱 동구청장은 "해당 직원이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병원과 연관된 업무를 해 담당하게 된 거로 안다"며 "본래 담당 업무가 있지만 간호직 공무원이라 역학조사 등 업무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고충을 미리 소통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며 "보건소 내 분위기도 좋았던 터라 직원들도 당황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23일 오전 8시 12분께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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