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권, 개혁 곁가지 매달려… 시대급소 겨누는 정치집단 나와야” [송의달 LIVE]

송의달 에디터 2021. 5. 2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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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읽기> 낸 최진석 새말새몸짓 이사장 [송의달이 만난 사람]

‘당(唐)나라 시대 장자(莊子)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베이징대학)를 받은 최진석(61) 이사장은 두가지 측면에서 독특하다. 정년을 7년 남겨둔 2018년, 그는 대학교수(서강대 철학과)직을 사직했다. 건명원(建明苑) 초대 원장을 거쳐 2019년부터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을 맡아 매주 전남 함평에서 ‘새말새몸짓 기본학교’를 열어 시민 교육을 하고 있다.

5만7000여명의 구독자를 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그는 현실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작년 12월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5.18이 전두환을 닮아가고 있다”고 현 집권층의 위선을 질타했다. 국내 철학계에서 매우 낯선 모습이다. 2017년 출간후 8만부 정도 팔린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 이어 지난달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를 낸 그를 이달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최진석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은 정년이 보장된 대학교수 직을 사직하고 '소명' 완수 작업을 벌이고 있다./새말새몸짓

◇“내 소명은 나의 성장과 대한민국의 도약”

- 왜 대학교수직을 스스로 그만뒀나?

“대학에 20년 가까이 있으면서 나만의 고유한 비린내가 사라지고 있었다. 교수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나의 소명(召命)을 완수하는데 제약이 된다고 봤다.”

- 어떤 ‘소명’인가?

“나의 소명은 나와 공동체의 완성을 일치시키는 것인데, 내 자신의 지속적인 성장과 우리나라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일이다. ‘독립적’으로 이 소명 완수를 벌여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최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스무살 때부터 첫 20년은 공부에 전념하는 ‘수련 기간’으로, 두 번째 20년은 힘을 기르는 기간, 마지막 20년은 소명 실천에 매진하기로 다짐했다. 만39세에 교수가 됐고, 58세에 교수직을 그만 뒀고 지금은 세 번째 20년의 초입이다. 75세부터 80세까지는 죽음을 준비하며 수행하고자 한다.”

독일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인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년)/위키피디아

- 재야로 옮긴 후 현실 정치·사회 비판을 강도높게 하는데, 일반적인 ‘철학자’ 모습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철학은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숙지(熟知)하는 행위가 아니다. 철학은 자기 삶에서의 구체적 문제들을 철학적 시선(視線)의 높이에서 사유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실천영역이다. 야스퍼스나 니체의 철학적 사유 내용을 이해하고 외우는 게 아니라 야스퍼스나 니체 수준의 사유 능력과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게 철학의 목적이다.”

◇“철학자의 본분은 국가 일을 고민하는 것”

- 그렇다면 왜 굳이 ‘공적 영역’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나?

“사람이 ‘자기완성의 삶을 추구하면, ‘철학적 사고(思考)’를 하게 되고, 철학적 사고를 하면 ‘공적(公的)인 자아’로서 ‘공적인 사고(思考)’를 필연적으로 한다. ‘공적인 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이다. 국가 안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려 덤비는 게 철학자의 사명(使命)이다.”

최 이사장은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이래로 홉스, 칸트, 마르크스, J. S. 밀, 정약용 같은 모든 철학자들이 국가와 관련된 일로 고민하고 연구했다”고 말했다.

- 한국인들은 ‘철학적 사고(思考)’를 하고 있나?

“철학적 사고는 최고의 사유 능력을 총동원하는 ‘전략적 사고’이자, ‘독립적 사고’이다. ‘추종적 사고’, ‘전술적 사고’가 그 반대편에 있다. 우리 국민은 대체로 전술적 사고에 익숙하며 ‘전략적 사고’, ‘선도(先導)적 사고’에 낯설고 약하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2017년 1월)에 이어 최진석 이사장이 지난달 낸 <대한민국 읽기>/북루덴스

- 지금 대한민국의 상태를 평가한다면.

“대한민국은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중진국의 최상위권, 즉 우리가 익숙한 상태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단계에 와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추격 국가에서 선도 국가로, 전술 국가에서 전략 국가로 건너가는 일이다. 그리고 ‘1등’ 보다 ‘일류’를 꿈꾸는 사람들이 더 필요하다. 전략국가, 일류국가, 선진국이 되려면 ‘욕망’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

◇“전략 국가에서만 자유·독립·창의 보장돼”

- 왜 꼭 우리나라가 ‘전략국가’, ‘일류국가’가 되어야 하나?

“전략 국가, 일류 국가는 판을 주도적으로 짜고, 전술 국가, 이류 국가는 짜여진 판에서 불안정하게 살아간다. 일류 국가 국민에게는 자유와 독립, 창의가 보장된다. 풍요와 번영을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다.”

- 우리는 아직도 외국 사상이나 제품을 수입하고 모방하는데 급급한데.

“우리가 만들어 팔거나 사용하는 물건의 99%는 다른 나라에서 먼저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식도 우리는 ‘수입국’이다. 우리는 일류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일류의 법률, 일류의 정치, 일류의 삶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좋은 옷과 음식, 해외여행으로 굉장히 선진적인 것 같지만 우리의 영혼은 아직 일류에 도달해 본 적이 없다.”

인문학과 기술이 교차하는 곳에서 진정한 창의성이 나온다.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등을 내놓은 스티브 잡스는 다빈치를 존경하며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에 심취했다./조선일보DB

- 일류 국가로 건너가는 ‘벽(壁)’을 어떻게 넘을 수 있나?

“이류적(二流的) 높이에 머물고 있는 ‘시선(視線)의 높이’를 상승시켜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시선 보다 더 높은 생각이나 행동을 못한다. 국가의 정책결정도 권력자들의 시선 높이 딱 그 수준이다. 철학적인 높이, 인문적인 높이, 지적(知的)이고 문화적인 높이를 높여야만 선도력을 가진 일류로 상승할 수 있다.”

◇”선진국은 인문학적 통찰로 사회 움직여”

- 유독 왜 인문과 문화적 높이인가.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인사이트(insight·통찰력)가 법학·정치학에서 나오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중진국에서는 경제학·경영학이, 선진국에서는 인문학적 인사이트가 그 역할을 한다. 미국 최상위 1000대 기업 CEO 가운데 경제경영학 전공자는 3분의 1도 안됐고 대부분은 인문학 출신이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조지 소로스, 짐 로저스는 모두 철학이나 심리학, 역사학을 전공했다.”

-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지도층은 어떤가?

“지도층이 지적(知的)으로 두툼하지 못하면 감성과 기능으로 세상일을 다 해결할 것 같은 경박한 자신감에 휩싸인다. 지도층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과제를 파악해 국민 역량을 모아 ‘시대의 급소’를 잡아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지금 정권은 무슨 개혁 같은 곁가지에 매달리거나 정치 공학으로 비효율과 국민분열만 낳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예일대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헤지펀드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는 영국 런던정경대(LSE) 재학시절 칼 포퍼를 사사하며 철학 삼매경에 빠졌었다./조선일보DB

- 정치권과 정당은?

“정치가 정치답지 않다. 맡길만한 정당이 한 곳도 없다. 정치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시험 성적 올리는 기능적인 삶 사는 법만 배우고 본질적 가치를 지향하는 더 높은 삶을 사는 훈련을 받지 못한 탓이다. 시대의 급소를 겨누는 정치 집단의 출현이 시급하다.”

- 우리나라에 ‘이류적 삶’, ‘이류적 수준’이 왜 지속되고 있나?

“‘각성'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각성’이란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자 고민이다. 소크라테스는 ‘반성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살려는 욕망 있어야”

- 각자가 ‘고유한 시선’을 가진 ‘고품격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과 더 수준 높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야 한다. 이런 욕망이 있으면 세상 일에 쉽게 지치지 않고, 세상에 위로를 구하기보다 세상을 위로하는 사람이 된다.”

- 최근 저서에서 문재인 정권의 주변국과의 관계를 ‘종북굴중(從北屈中·북한을 추종하고 중국에 굴복) 혐미반일(嫌美反日·미국을 싫어하고 일본에 반대)’로 규정했다. 어떤 근거에서 ‘종북굴중’인가?

“한반도 평화 등을 구실로 북한과 중국에 심리적으로 굴복하고 굴종하는 정권이기 때문이다. 이런 굴종적 태도와 감성적 굴복으로는 어떤 국가간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문정인 외교안보 특보가 한국이 처한 상황을 북한의 ‘민족 이익’과 미국의 ‘동맹 이익’ 요구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고 표현했는데, 이 말은 민족사적 정당성이 북한에 있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북한을 따른다[從]는 증거이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얘기하고 있는 모습/공동사진기자단

- 유학생활을 포함해 6년 간 중국 생활을 했는데,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중국은 여전히 한국을 속국(屬國)으로 여기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침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을 계속 경계해야 한다. 중국이 우리의 영토와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는지 존중하지 않는지 주의깊게 봐야 한다.”

◇”일본인보다 더 친절하고 더 책 많이 읽어야”

- 일본에 대한 우리의 대응책은?

“일본인들보다 더 신용을 지키고, 호기심을 더 발휘하고, 더 친절하고, 더 많이 책을 읽고, 더 전략적이어야 한다. 패배를 당한 나라는 패배를 안긴 나라를 배워야만 이길 수 있다. 일본을 증오하기보다 일본을 배우는데 훨씬 큰 힘을 써야 한다. 일본을 무시하고 증오만 해서는 다시 치욕을 당할 수 있다.”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시에 있는 쇼카 손주쿠. 기와지붕의 단층 목조건물로 50.90㎡의 작은 교육시설이다. 조슈번(長州藩)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강의한 사숙이다./조선일보DB

- 거의 매년 정한론(征韓論·19세기 조선반도 정벌론)을 주창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년)이 운영한 쇼카 손주쿠(松下村塾)를 찾아갔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나?

“일본에 대한 전의(戰意)와 경각심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주 갔다. 요시다 쇼인은 50㎡짜리 좁은 방에서 2년여 90명 남짓한 제자를 가르쳤고 제자의 절반은 메이지유신 무렵 죽었고 남은 40여명이 일본 근대화와 제국 건설을 성공시켰다. 각성된 교육, 소명감을 가진 교육의 힘은 엄청나다.”

요시다 쇼인(1830~1859년). 29년의 불꽃같은 생을 산 그는 일본 근대화의 정신적 지주이자 우익의 뿌리로 불린다. 도쿄 시내 야스쿠니 신사의 최상단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조선일보 DB

- 우리 사회는 지성(知性)이나 이성(理性) 보다 감성(感性)에 휘둘리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감각과 감성의 작동 기제에 갇혀 최소한의 지적(知的) 개방성도 허용되지 않는 극단적인 양분(兩分) 상태다. 곰곰이 생각하는 지적 능력으로 감각과 감성을 정련시켜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독서는 감성을 정련하는 知的 발화점”

- 어떻게 ‘곰곰이 생각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나?

“독서가 유일한 수단이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독서는 마법의 양탄자’라고 했다. 독서를 통해 여기 있는 내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는 뜻에서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건너가기’ 역시 독서를 통한 발전과 성장을 의미한다. 독서는 나를 객관화하고, 사유를 연습하며, 더 높은 수준으로 변화하는 지적(知的)인 발화점이다.”

- 사단법인 ‘새말 새몸짓’의 목적은 무엇인가?

“중진국,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 전략국가로 가기 위해 새로운 문법과 언행을 하는 사람을 키우자는 것이다. 독서를 통해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 ‘각성된 사람’, 그리고 일류 국가로 건너가기를 지향한다.”

◇토요일 마다 ‘건너가기' 집중 공부 모임

전남 함평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에 열리는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육 모습/새말새몸짓

‘새말 새몸짓 기본학교’는 매주 토요일 오후 4시간씩 6개월 과정으로 철학, 암호학, 4차산업혁명, 베토벤 등을 가르치고 있다. 입학할 때 일인당 100만원의 학비를 받는데 ‘무사히’ 졸업하면 100만원을 장학금으로 되돌려 준다. 15세부터 49세의 직장인·가정주부·대학생·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1기생 28명이 최근 전원 졸업했다.

- 요시다 쇼인이 160년여 전 세운 ‘쇼카 손주쿠의 한국판(版)’이 연상된다.

“쇼카 손주쿠를 모델로 한 것은 아니다. 자기자신과 국가에 대한 각성과 소명감을 가진 사람 만이 시대와 국가를 도약시키는 동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90여명 정도의 쇼카 손주쿠 졸업생이 일본과 세계를 바꾼 것처럼. 우리도 시작은 미미하고 인원은 적지만 그렇게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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