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작업중지' 조선일보 보도의 '잔인함'

김예리 기자 2021. 5. 2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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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소극적 작업중지' 가리켜 "무조건 남발" 비판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 앞두고 재계 프레임 궤변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사내하청업체 ㄱ사 물량팀에서 일하던 장아무개씨(40)가 지난 8일 원유운반선 탱크에서 용접작업을 하다 20m 높이에서 추락해 숨졌다. 지난 2월5일 또 다른 노동자가 대조립1공장에서 미끄러짐 방지가 돼 있지 않은 철판 사이에 머리가 끼여 숨진 지 석달 만이다. 이 회사에서 숨진 노동자는 지난해부터 6명째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창사 이래 469명째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지난 8~10일 부분 작업중지명령을 내렸고 노동부 울산지청은 17일부터 28일까지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기로 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7일자 “인명사고 나면 거의 공장 전체가 스톱…수백억씩 손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장씨의 죽음으로 인한 작업중지 상황을 언급하며 “정부의 작업중지 명령 남발로 인한 제조업계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 현장을 살피지 않은 보도임은 물론, 위험 개선을 위한 작업중지 취지 자체를 부인하는 보도라는 현장의 비판이 나온다. 노동계는 기업 책임을 전면 부정하는 기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작업중지 사례를 주로 다루면서 “툭하면 작업중지”라는 부제 아래 “(노동부가)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작업장에도 유사 업무라는 이유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린다”고 보도했으며 “지금은 사고와 무관한 사업장까지 무조건 세우고 보는 것 같다”는 익명의 '재계 관계자'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작업중지 명령이 고용부 산업안전감독관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사고와 직접 관계없는 장소까지 일괄 적용되고 있다”고 했다.

▲27일자 조선일보 사회면 머리기사 “인명사고 나면 거의 공장 전체가 스톱…수백억씩 손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사내하청업체 ㄷ사 물량팀에서 일하던 장아무개씨(40)가 지난 8일 9도크 원유운반선 탱크에서 용접작업을 하다 20m 높이에서 추락해 숨진 현장 설명 사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제공

정말 노동부는 작업중지를 무조건 남발해왔을까. 노동부 산업안전과는 조선일보 보도에 해명자료를 내고 “작업중지 명령 및 해제는 법령에 근거하여 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간 조치와 '중대 재해 등 발생 시 작업중지 명령·해제 운영기준'을 놓고 비교하면, 노동부는 오히려 원칙보다 소극적으로 조치해왔다. 비판의 논점이 달라야 하는 것이다.

현행 운영기준은 △사망자가 1명 이상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나오는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가 출동, 급박 위험을 확인하는 즉시 동일작업 중지 명령을 하도록 한다. 노동부는 장씨가 추락한 아침 안전규정 위반을 발견했지만 중지 명령을 하지 않다가, 노동조합이 항의하자 밤 10시께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틀 뒤에야 9개의 도크 가운데 4곳에서 동일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나현선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안전국장은 “노동자가 죽어도 노조가 항의면담을 해야만 뒤늦게 작업중지가 내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같은 날인 8일 현대제철에서도 노동자가 숨졌지만, 노동부는 당일 어디에도 동일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나 국장은 “작업중지의 목적은 (회사에) 손해를 끼치려는 것이 아니다. 같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똑같은 위험에 처해있으니 일단 이 상황을 멈추고 미흡한 안전보건 조치를 개선한 뒤에 풀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노동자 안전은 퇴보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1월 운영 기준상 기존의 '전면 작업중지' 원칙을 '동일한 작업에 부분 작업중지'로 바꿨다. 작업중지를 해제할 때에도 사업주가 신청하면 위험 개선에 드는 시간과 상관없이 4일 안에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해제 심의위원회 회의록 공개나 유족·노동자 추천 전문가 참여는 보장하지 않았다.

▲지난 2월5일 노동자가 숨지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현대중공업 작업 현장.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제공

위와 같이 운영기준이 바뀐 지 한 달만인 지난해 2월22일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김아무개씨가 액화천연가스운송선 탱크에서 합판(트러스)을 설치하다 추락사했다. 그물망 미설치와 생명줄 설치 부실, 관리감독자 부재 등 문제가 드러났지만, 이튿날 노동부는 고소(높은 곳)작업 가운데 '트러스 설치/조립' 작업만 중지했다. 두 달 뒤 도장 7공장에서 정아무개씨가 빅도어에 끼여 숨졌을 때도 노동부는 7공장 빅도어만 작업중지 명령했다가 노조가 항의하자 일부 빅도어에 한해 범위를 넓혔다.

조선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현대중공업) 협력사 88곳이 매일 총 13억여 원의 매출 손실을 보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노동자들은 이를 가리켜 “앞뒤를 바꾼 보도”라고 비판했다. 김형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은 “작업중지 책임은 안전 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회사에 있다. 원인을 해결하려 작업중지를 하는데, 이마저 제대로 지키지 않는 노동부를 비난하는 건 앞뒤가 한참 어긋났다”며 “조선일보는 '중대재해를 다시 발생시키라'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장석원 금속노조 기획부장은 “회사가 애초에 투자했어야 할 안전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중공업도, 포스코도 안전한 공정을 갖추려면 수백억 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는 걸 노사 모두 알고 있다. 끔찍한 사고는 그만큼 사측이 안전에 투자하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왔던 돈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라며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수백억 손실'은 회사의 잘못을 시인하는 논리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노동자들도 작업중지 기간 중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다. 임금 보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근로기준법상 회사 귀책으로 휴업하는 경우 노동자에 임금 70% 이상을 보전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의 사내하청 노동자인 이성호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장은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일수록 피해는 더 크다”고 했다. 원청 소속 정규직 노동자는 다른 업무를 하거나 파견을 가지만 하청 노동자는 절반 정도의 일당만 지급 받는다. 재하청인 물량팀 노동자 대다수는 4대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돈을 받지 못한다. 산재로 숨진 장씨도 물량팀 소속이었다.

▲민주노총이 27일 오후 2시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잇따른 중대재해 산재사망 문제에 긴급하게 대응하는 투쟁을 결의했다. 사진=노동과세계

이성호 지회장은 “현대중공업에서 지난해 4명이, 올해 상반기 2명이 죽었다. 작업중지 기간을 합치면 100일이 넘는다”며 “생계 문제가 심각하고 고용도 불안해 이곳의 노동자들은 사람이 죽은 위험한 현장에 일단 들어가길 원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이 지회장은 “작업중지기간 중 제대로 안전 문제를 개선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노동자 죽음이 반복된다. 제대로 된 개선과 함께 작업중지로 업무를 못 하는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임금 보전도 필요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기사에선 찾을 수 없는 '현실'이다.

조선일보처럼 재계를 일방적으로 대변해 산재로 인한 작업중지를 비판하는 보수언론 주장이 처음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신문은 왜 다시 작업중지를 비판하고 나선 것일까. 28일은 노동부 특별근로감독이 마무리되는 날로, 현대중공업 협력사들과 울산상공회의소가 며칠 전부터 작업중지 해제를 요구해왔다. 노동계는 연이은 산재 사망사고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하위법령 제정에 여론이 모인 시기라는 점에 주목했다.

나현선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돼 겉으론 산재가 예방될 듯했지만 지난달 이선호 노동자가 숨지고 문재인 대통령이 빈소를 방문했다. 이후에도 노동자들이 연이어 사망하면서 산재를 근절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 커졌다”며 “특히나 중대재해법에 기업책임 범위를 정하는 하위법령을 작성하는 시점에 조선일보가 재계의 위기감을 대변해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이르면 이달 중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하겠다고 밝혔다.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와 중대 재해 범위 규정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중대재해법이 최소한의 실효를 거두려면 시행령에 기업 책임을 명시해 '경영책임자의 의무와 이행 사항'을 포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성호 사내하청지회장은 조선일보 보도를 가리켜 “노동자 죽음의 숫자는 보길 거부하면서 작업중지를 비판하는 것은 노동자가 죽어가는 환경을 유지하자는 얘기”라며 “다단계 하청을 비롯해 복잡한 고용구조부터 바로잡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기업 책임을 명시해야 똑같은 죽음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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