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면 우리가 끌어내리고 싶다" 이준석 돌풍에 떠는 여권
“솔직히 두렵다. 이러다 ‘진보’나 ‘개혁’의 가치까지 뺏길까 걱정된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서 1위로 예비경선을 통과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돌풍에 대한 여권 핵심인사의 말이다. 그는 28일 중앙일보에 “누구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지만, 사실 돌풍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야당이 아니라 전체 여권”이라며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라도 이 후보를 끌어내리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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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그룹의 장기집권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중추는 ‘86그룹’이다.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 주축이 된 학생운동권 출신들이다.
이들은 원래 ‘386’으로 불렸다. 숫자 3은 30대를 의미한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 시절 ‘젊은피’로 수혈되며 ‘호남당’의 이미지를 ‘진보’로 바꾼 장본인들이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인영 통일부장관, 우상호 전 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주요 당직자와 청와대 참모들이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 386은 40대를 뜻하는 486이 됐고 지금은 586이 됐지만 여전히 권력의 중심부에 있다.
전대협 출신의 한 여권 인사는 “86그룹은 솔직히 30년째 세대교체만 주장하며 후진들의 정치 진입을 막아온 원죄를 인정해야 한다”며 “만약 야당이 내년 대선에서 85년생 이준석 대표 체제로 개혁과 쇄신 경쟁을 걸어올 경우 무슨 명분으로 국민적 호응을 얻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정치 쇄신의 측면에서 민주당은 이미 국민들에게 수구 세력으로 인지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이 서민과 약자, 소수자 등을 내세운다지만, 정작 이민자ㆍ탈북자 출신 국회의원 등 파격적 결정을 누가 먼저 했느냐”며 “30대 당대표까지 야당이 먼저 실현시킬 경우 혁신 경쟁은 해 볼 필요도 없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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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3인방’과 여당 ‘초선 5적’
유례없는 관심을 받고 있는 국민의힘 대표 경선의 분위기를 띄운 이는 0선의 이 전 최고위원을 비롯해 김은혜ㆍ김웅 등 초선의원이었다. 이들은 ‘신진 3인방’으로 불리며 경선 흥행을 이끌었다.
민주당에서도 지난달 4ㆍ7 재ㆍ보선 패배 직후 오영환ㆍ이소영ㆍ장경태ㆍ장철민ㆍ전용기 등 초선 의원 5명이 “돌아선 국민의 마음의 원인은 민주당의 착각과 오판에 있었음을 자인한다”는 성명을 낸 적이 있다. 박원순ㆍ오거돈 전 시장의 성 비위 문제, 추미애ㆍ윤석열 갈등, 문제를 언론ㆍ청년 탓으로 돌리는 태도 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러나 당내 강경파들은 이들을 ‘초선 5적(敵)’으로 몰아세웠고, ‘5적의 난’은 금방 진압됐다.
‘5적’ 중 한명인 전용기 의원은 이 전 최고위원의 돌풍과 관련 26일 페이스북에 “집의 공기가 텁텁할 때 창을 열어 환기하듯 지금 정치도 우리 국민들이 창을 열어 집을 열어 환기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지금 들어오는 맑고 상쾌한 청년 바람은 ‘시대가 원하는 바람’”이라고 적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당직자는 “야당은 판을 완전히 뒤엎는 개혁을 준비하는데 여당은 강경파들의 눈치만 보면서 ‘밥그릇’만 지키려 한다”며 “쇄신과 개혁을 이끌어야 할 당내 초선 의원들이 오히려 강경 지지세력들만 바라보며 초강경파를 자처하며 있으니 답답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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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와 장유유서(長幼有序)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 24일 나경원 전 의원이 자신을 ‘예쁜 스포츠카’에 비유하며 “짐을 잔뜩 실은 화물트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자 “제가 주문 넣은 것은 전기차다. 매연도 안나오고 가속도 빠르다”고 받아쳤다.
26일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정세균 전 총리가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문화가 있지 않나. 장유유서, 이런 문화도 있다”라고 한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전 최고위원은 “제가 말하는 공정한 경쟁은 시험 과목에서 장유유서를 빼자는 것”이라며 “그게 시험 과목에 들어있으면 젊은 세대를 배제하고 시작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여권의 핵심 인사는 “정 전 총리의 진의를 떠나 이번 논란의 결론은 ‘장유유서’라는 한마디만 남게될 가능성이 크다”며 “자칫 2004년 총선을 결정지었던 노인폄하 논란처럼 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이 전 최고위원의 부상으로 기존에 통용되던 정치 언어와 문법 자체가 완전히 바뀌고 있는 상황을 인정할 때가 됐다”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플랫폼 싸움에서 밀리고 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과거 여당의 핵심지지층이던 20대는 이미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으로 돌아섰다”며 “5ㆍ18 유족회가 국민의힘 정운천ㆍ성일종 의원 등을 공식 초청한 것 역시 엄청난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전 최고위원의 최종 당선 여부와 무관하게 여당은 완전히 새로운 선거전략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의 새 대표는 다음달 11일 최종 선출된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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