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학 학자금 융자 빚 1900조원.. '제2 모기지사태' 우려 [세계는 지금]

국기연 2021. 5. 2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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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채무 중 모기지 빚 이어 두 번째
신용카드·자동차 할부구매 빚보다 많아
대학 진학률 늘어 고졸자 3분의 2 입학
대부분 등록금 융자.. 빚 규모 해마다 증가
1인당 평균 4136만원.. 의대생 2억 넘어
대졸자 평균 소득, 고졸자보다 1.5배 높아
빚 지더라도 대학 나오는 게 경제적 이득
젊은층, 등록금 갚느라 정상 생활 어려워
빈부격차·인종별 소득차 심화 요인 작용
바이든, 1인당 5만달러 탕감안 검토 지시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미국 대학생들이 캠퍼스 길바닥에 드러누워 시위를 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에서 대학 학자금 융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 빚의 규모가 지난해 1조6900억달러(약 1900조원)에 달했다. 현재 대학 학자금 융자 빚을 안고 있는 미국인은 4400만명가량 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률적으로 한 사람당 1만달러(약 1128만원)를 삭감하는 방안을 지지한다며 교육부에 5만달러까지 탕감할 수 있는지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런 탕감 안이 현실화한 것은 아니다. 학자금 융자 빚의 이자 부담이 갈수록 커지면서 아예 빚 상환을 포기하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사람이 대규모로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회에서 시한폭탄으로 등장한 대학 등록금 융자 빚 실태를 심층 점검해본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등록금 융자 빚

28일 미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2006년 5000억1000만달러가량이던 학자금 융자 빚이 6년 지난 2012년에는 2배 이상 늘어 1조300억달러에 달했다. 다시 2018년에는 3배가량 증가한 1조5500억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난해에는 그 규모가 1조6900억달러에 이르렀고, 올해는 이보다 더 늘어날 게 확실하다. 미국에서 대학 등록금 빚은 소비자 채무 가운데 주택 구매 융자금인 모기지 빚 10조달러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등록금 빚이 신용카드 빚이나 자동차 할부구매 빚보다 많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학 등록금 융자 빚은 1조6900억달러인 반면 자동차 구매 할부금 빚은 1조2100억달러, 신용카드 빚은 9768억1000만달러가량이라고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이 밝혔다.
대학 등록금 융자 빚 규모가 매년 증가하는 이유는 대학 재학생 중에서 융자 빚을 얻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1980∼1990년대에는 고교 졸업자 중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대학 진학자보다 높았고, 그 당시 대학생의 절반가량만 학자금 융자를 받았다고 미 외교협회(CFR)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밝혔다. 그러나 요즘에는 고교 졸업생의 3분의 2가량이 대학에 진학하고, 이들 대부분은 등록금 융자를 받는다.

미국에서 대학·대학원생 연도별 평균 학자금 빚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미 에듀케이션 데이터에 따르면 2007년에는 1인당 평균 빚이 1만8233달러였다. 이것이 2009년에는 2만467달러로 2만달러를 초과했고, 2016년에는 3만548달러로 3만달러 고지를 넘었다. 지난해에는 1인당 평균 빚이 3만6635달러(약 4136만원)에 달했다.

특히 대학원 과정인 의대 졸업생의 빚이 상대적으로 많다. 미 너드 월릿이라는 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의대생은 20만1490달러(약 2억2740만원), 치대생은 29만2169달러, 약대생은 17만9514달러, 수의대생은 14만9877달러의 빚을 진 채 교정을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대학원생 평균 빚은 8만2800달러가량이다.

대학 학자금 빚 채무 불이행 비율은 인종별로 차이가 난다. 미국에서 흑인이 백인보다 학자금 융자 빚이 많고, 채무 불이행 비율도 높다고 CFR는 지적했다. 흑인, 히스패닉은 백인보다 상대적으로 부모 도움을 받기가 어려워 채무 불이행 비율이 높다고 이 기관은 설명했다.
◆등록금 빚의 명암

미국에서 대학 등록금 빚을 떠안고 졸업하더라도 고등학교 졸업장만 쥔 채 사회에 나가는 것보다는 경제적으로 더 나은 게 현실이다. 대졸자가 고졸자보다 평균 소득이 1.5배가량 높기 때문이다. 전문대학원 석사 또는 박사 출신은 고졸자보다 소득이 2배가량 많다. 이 때문에 등록금 빚을 상환할 수 있으면 빚을 지면서라도 대학이나 대학원 교육을 이수하는 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대학 졸업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문과 출신 대졸자는 이과 출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학 졸업 후 높은 소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미국 정부는 줄곧 대학 등록금 융자를 내주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정부가 저소득층 학생에게 융자금을 대주면 이들이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해 버는 소득이 올라 더 많은 세금을 국가에 냄으로써 국가적으로 이득을 보는 투자를 하는 셈이란 논리에서다. 게다가 하버드, MIT(매사추세츠공과대), 스탠퍼드 등 미국 명문대는 경제 혁신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 대학의 연구 결과가 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어 정부로선 대학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필요성이 크다.
◆학자금 빚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파장

미국의 젊은 층이 대학 등록금 융자 빚을 갚느라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게 빚 탕감 찬성론자의 주장이다. 이런 빚은 또한 빈부 격차와 인종별 소득 격차를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미국 경제가 성장기에 있을 당시에는 학자금 빚이 있어도 졸업 후 이를 상환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러나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출생)는 그 전 세대보다 빚을 갚기가 더 어렵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코로나19 대유행 사태로 연거푸 직격탄을 맞은 MZ세대는 소득이 불안정해 빚을 상환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 베이비붐 세대의 3분의 2가량이 대학 등록금 빚을 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 비해 밀레니얼(M)세대는 그 비율이 절반에 그친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학자금 빚더미에 눌려 있으면 젊은 세대가 돈을 벌어도 주택, 자동차 등을 구매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채무 상환 지연에 따른 이자 부담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미국 경제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소비에 악영향을 미친다.

◆1만달러 탕감 vs 5만달러 탕감

바이든 대통령은 학자금 빚 탕감 필요성에는 동의한다. 그는 1인당 1만달러 탕감안을 선호했으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내 진보파 인사들은 바이든 정부에 1인당 5만달러의 빚을 탕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최근에는 5만달러 탕감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태도를 보인다.

만약 1인당 1만달러씩 탕감하면 학자금 융자 빚 규모는 1조7000억달러에서 1조3000억달러가량으로 약간 줄어들 것이라고 경제전문 채널 CNBC가 최근 보도했다. 또 현재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3분의 1가량인 1500만여명만이 빚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탕감 액수를 1인당 5만달러로 늘리면 융자금 빚 규모는 7000억달러가량으로 대폭 줄어든다. 채무자의 80%가량인 무려 3600만명가량이 빚 부담에서 벗어난다. 그렇지만 여전히 등록금 채무가 많은 사람이 문제다. 등록금 빚이 5만달러가 넘는 사람은 전체의 약 5분의 1가량이고, 등록금 대출자의 7%가량은 10만달러 이상의 빚을 떠안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학자금 빚을 탕감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 야당인 공화당 등 반대 세력이 소송전에 나설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 점을 의식해 의회로 공을 넘길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전체적인 예산 편성안의 일부로 학자금 빚 탕감 예산을 책정할 수 있으나 양측이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CNBC는 등록금 빚 탕감액을 5만달러로 늘리기는 어렵고, 1만달러 탕감안이 현실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빚 탕감 규모가 늘어나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대학 등록금을 재학 중에 성실하게 납부한 사람이 그만큼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일단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난으로 인해 오는 10월까지는 등록금 빚 상환을 유예하도록 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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