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폭락하자 폭증한 마포대교 검색.. 2030이 불안하다 [심층기획-'코로나 시대' 달라진 극단적 선택]

정지혜 2021. 5. 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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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셀 시작 후 커뮤니티서 많이 언급
마포서 용강지구대선 비상근무 돌입
"현재까지 투신 사례 없지만 예의주시"
한강교량서 시도 20~30대가 가장 많아
SNS 통해 타인의 삶과 비교 많아진 탓
예방 문구 같은 추상적 위로 도움 안돼
안전난간 더 높이자 시도자 크게 줄어
"마포대교는 '투신 장소' 상징성 없애야"
투신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마포대교
가상화폐 폭락으로 ‘패닉셀’(공포감에 따른 투매)이 시작된 지난달 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경찰들이 마포대교 비상근무에 돌입했다”는 내용이 화제가 됐다. 함께 공유된 경찰 신고 화면에는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서 마포대교가 많이 언급되고 있다. 순찰 강화가 필요해 보인다’는 문구가 있었다. 서울 시내 한강 다리 중 투신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가진 마포대교가 또 한 번 소환된 것이다. “마포대교 간다”는 언제부터인가 청년들이 신변을 비관할 때 자조적으로 쓰는 말이 됐다.

폭증한 ‘마포대교’ 검색량은 실제 자살 시도로 이어졌을까. 이곳을 관할하는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를 지난 24일 찾아 들은 답은 “현재까지 가상화폐 때문에 투신을 시도한 사례는 파악된 바 없다”는 것.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 마포대교가 ‘자살’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 장소가 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타인과 끝없이 비교하니 불행도 커져”

실제로 한강교량에서의 자살 시도는 20∼30대가 많은 편이다. 28일 서울기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강에서의 연령별 자살 시도는 20대가 144건으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97건으로 뒤를 이었다. 2011년부터 9년간 SOS생명의전화를 가장 많이 이용한 연령대도 20대(32.7%)였다.

서울시가 파악한 한강교량과 수변에서의 주요 자살 원인(2013년 기준)은 정신과적 증상(61%), 대인관계(24%), 금전 손실(3.2%), 만성 빈곤(1.1%) 등이다. SOS생명의전화 상담 유형 1위는 22%의 대인관계(2208건)였고 진로·학업 부담(2017건)이 20%로 뒤를 이었다.

지난 25일 서울 마포대교에서 시민 두명이 다리 난간에서 극단적인 시도를 하는 20대 남성의 손을 붙잡고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제공
청년들이 이 같은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데 대해 용강지구대 김명규 경위는 “경제적 문제도 있지만 미디어의 발달로 타인과 나의 삶을 너무 많이 비교하게 되면서 예전보다 불행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며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고민도 아직 성장단계인 청년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수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살 시도 이유나 위험군 등을 특정하고 판단하기는 사실상 힘들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3년째 이곳에서 근무 중인 김 경위는 “자살 구조 출동을 많이 나간 편인데, 마포대교로 극단적 선택을 하러 오는 이유와 각자의 사연은 너무나 다양하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가상화폐 폭락 등이 이들을 한강으로 더 이끌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날이 좋아지기만 해도 갑자기 뛰어내리는 경우가 늘어난다”고 김 경위는 전했다. 밖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충동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는 확률도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이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서울기술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의 한강교량 투신자살 시도 전체 건수는 504건. 월 평균 42건을 기록했는데 6월(76건)과 9월(53건)의 극단적 선택 시도가 가장 많았다. 늦봄과 가을, 연중 외출하기 가장 좋은 때다. 극단적 선택 시도가 가장 낮은 달은 2월(19건)이었다.

김 경위는 무엇보다 마포대교의 상징성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멀리 타 지역에서도 굳이 찾아와 뛰어내리려 할 정도”라며 “마포대교의 자살률이 월등히 높다고 특별한 조치를 더하기보다는 모든 다리의 안전장치를 똑같이 만들어 상징성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추상적인 위로보다 안전난간이 더 도움 돼
김 경위는 숱한 투신자들의 사례를 접하며 ‘어설픈 위로는 오히려 독이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한강 다리에 쓰였던 자살예방 문구가 그런 예다. 2012년 서울시가 시민 공모로 받아 써 넣은 이 문구들은 해외 광고제에서 37개의 상을 받으며 호평을 얻었지만, 이후 자살률은 되레 크게 늘어나는 역효과를 봤다. 2012년 마포대교 투신 시도자는 15명이었는데, 문구를 붙인 뒤인 2013년엔 93명, 2014년 184명으로 급증했던 것이다.
2019년 사라진 마포대교의 위로 문구
그러나 2016년 마포대교 난간 높이를 기존 1.5m에서 2.5m로 높이자 투신 시도자는 감소했다. 2016년 211명에서 2017년 163명, 2018년 148명으로 점차 줄었다. 서울시는 자살예방 문구가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2019년 마포대교에 쓰인 문구를 모두 없앴다. 김 경위는 이에 대해 “참 잘 쓴 글이 오히려 사람을 약하게도 만든다”며 “위로가 되기보다는 부정적 결심마저 강하게 만든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는 자살 시도자의 눈으로 보기보다 보편적 관점에서만 대책을 마련한 데 따른 한계일 수 있다. 김 경위는 “다리에서 뛰어내리려고 오는 분들의 마음을 일반적인 시각으로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그런 측면에서 진짜 들어야 할 사연은 구조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인데 끝내 들을 수가 없으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경위에게는 과거 눈앞에서 투신자를 구하지 못한 일 등이 남긴 트라우마도 컸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현장에 가면 ‘무조건 살리자. 놓치지 말자’는 다짐뿐이다. 경찰관들에게 현장에서 사망한 이들을 보는 것은 숙명이지만, 유가족과의 대면은 아무리 겪어도 적응이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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