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원전 해체 시동'..건설사, 550조 세계 시장 도전장

입력 2021. 5. 31.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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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1호기 국내 첫 해체 신청..현대건설 등 원전 건설 경험 토대로 기술 확보 잰걸음

[스페셜 리포트]



한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 고리 1호기가 해체된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5월 14일 고리 1호기를 해체하기 위한 해체 승인 신청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제출했다.

고리 1호기와 이미 가동이 중단된 월성 1호기, 가동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노후 원전 11기 등이 해체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고리 1호기는 향후 550조원으로 추산되는 원전 해체 시장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건설사들은 시작점이 될 고리 1호기 해체 사업을 따내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해체 승인 신청 후 인허가 심사에 2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리 1호기는 2023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해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종료 시점은 2037년이다. 냉각 원자로에서 사용 후 핵연료를 빼내는 작업을 시작으로 원자로 외 비방사 시설 해체에 이어 방사능 제염 등 물리적 해체 작업으로 이어진다.

해체한 시설을 잘게 나눠 보관하고 원전 부지를 복원하는 데 약 14~15년이 걸린다. 해체 작업에만 6000억원 이상, 중·저준위 방사설 폐기물 처분과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등을 감안하면 총 투입 비용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 해체에는 방사선 안전 관리·기계·전기·화학·토목·건축 등 여러 분야가 복합된 엔지니어링·융합 기술이 투입된다.

현재까지 대형 원자력 시설의 해체 경험을 가진 국가는 미국·일본·독일 정도다. 한국은 소규모 원자력 연구 시설을 해체한 경험만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고리 1호기 해체를 통해 관련 노하우를 가지게 되면 대형 원전 해체 시장에서 신규 일감을 수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 세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원전은 약 450기다. 그중 운영 연수가 30년이 넘은 원전은 305기(68%)다. 이미 영구 정지된 원전 173기 중 해체가 끝난 곳은 21기에 불과하다.



정부·한수원, 원전 해체 시장 10% 물량 확보 주력

정부와 한수원은 2035년까지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 물량의 10%를 따내겠다는 각오다. 한수원은 현재 원전 해체의 핵심 기술 58건 중 54건을 가진 상태다. 나머지 4건은 올해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월성 1호기 등 중수로 원전의 영구 정지에 대비한 중수로 해체 기술도 개발 중이다.

이를 위해 경주시에 사업비 3223억원을 투입해 원전해체연구소를 설립했다. 올해 하반기 착공해 2024년 준공을 목표로 한다. 한수원을 포함한 공공 기관이 1934억원을 출연했고 정부와 지자체는 설립 이후 연구·개발(R&D) 사업을 통한 장비 구축 등에 1289억원을 부담한다.

미국 컨설팅 업체 베이츠화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 규모는 100년 후 549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일본·독일 등 3국이 주도하는 시장인 만큼 지속적인 R&D 투자로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시장 선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단, 기술 개발과 함께 풀어야 할 숙제도 아직 많다. 고리 1호기 해체는 관련 산업 진출의 시작점이자 대표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원전 1기당 해체 폐기물 발생량은 200리터 드럼 8만 개 분량이다. 그중 제염(방사성 물질 제거 작업)이나 감용(폐기물 부피를 줄이는 기술) 과정 등으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한 후 자체 처분되는 폐기물은 6만5500드럼이다.

이를 제외한 중·저준위 폐기물은 1만4500드럼이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방사선 관리 구역에서 노동자가 입었던 작업복이나 장갑 등을 말한다. 원자로 가동 과정에서 사용하는 활성탄 등 각종 소재와 교체된 금속류 부품 등도 포함한다. 이 드럼 한 통을 처리하는 데 1519만원이 소요된다. 땅에 묻는 순수 매몰비용으로 운송비나 지방세 등은 별도다.

이 폐기물은 현재 경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으로 향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최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재처리해 ‘탄화붕소’로 바꾸는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탄화붕소는 사용된 핵연료의 안정화에 사용되는 물질로, ‘중성화 흡수체’로도 불린다.

핵연료는 사용 후에도 오랜 기간 방사성 물질을 내뿜는다. 원자로에서 꺼낼 때는 물론 저장 용기에 옮기는 동안에도 안정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중성자 흡수체가 그 역할을 한다. 중·저준위 폐기물을 탄화붕소로 활용해 매몰 문제 등은 어느 정도 해결된 모양새다.

문제는 고준위 폐기물이다. 고리 1호기 해체로 발생하는 고준위 폐기물은 원전 부지에 임시 보관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원전을 운영하는 31개국 중 중간 저장 시설을 운영하지 않는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8개국에 불과하다.

정부는 현재 고준위 폐기물 중간 저장 시설이나 영구 처리장 건설 계획을 수립한 상태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부지 선정에만 12년, 건설 기간은 30년이 걸린다. 처리장 완공까지 하세월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고준위 폐기물 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기 위해 여러 이해관계인과 소통하고 있다”며 “부지 선정 등 민감한 사안은 법제화할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 건설사, ‘블루오션’ 원전 해체 시장 눈독

원전 해체 시장은 블루오션이다. 원전 해체를 경험한 국가는 미국·일본·독일 등 3개국뿐이고 관련 기술을 보유한 건설사도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정부 등에서 해체를 결정, 승인하면 실행과 수익은 건설사의 몫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건설사가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기술 확보에 나서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 왔다.

시장에선 원전 해체 시장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건설사로 현대건설을 꼽는다. 원전 해체 선진 기업인 미국 에이콤(AECOM)과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한 업무협약을 2015년 12월 체결했다.

현대건설은 고리 1~4호기와 월성 1·2호기, 영광 1~6호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원전 1·2호기, 신한울 1·2호기 등 한국의 원전 대부분을 준공한 바 있다. 아직 해체 경험은 없지만 에이콤과의 기술 협력으로 해체 시장에서 한 발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진성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대형 원자력 해체 레퍼런스를 보유한 한국의 건설사는 없는 상태지만 현대건설이 가장 가깝게 다가섰다”며 “원전 해체 사업 TF팀을 운영 중이고 경주에 원자력 발전 연구·생산·실증이 가능한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두산중공업도 원전 해체 시장을 신성장 동력으로 점찍고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독일 원전 해체 전문 기업 짐펠캄프와 해체 사업 관리와 폐기물 처리 시설 관련 협력 체계를 구축해 기술 습득에 전념하고 있다.

GS건설은 2017년 2월 ‘원전 방사화 구조물의 해체 지원 시스템 및 그 활용 방법’에 관한 특허를 취득했다. 삼성물산·대림산업·대우건설 등 원전 건설 경험이 있는 건설사들도 해체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관련 기업과 접촉하면서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文, 탈원전 정책 변화…막혔던 수출 활로 재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탈원전’으로 집약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원전 수출 협력을 약속하면서 현 정권 초기부터 내세운 탈원전 정책 기조와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공동 성명에서 “원전 산업 공동 참여를 비롯해 해외 원전 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최고 수준의 원자력 안전·안보·비확산 기준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합의가 기존 탈원전 정책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야당과 전문가 및 관련 업계는 원전 정책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미국과 원전 수출을 협력하기 위해선 탈원전 정책의 폐기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 건설사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관련 사업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대표적으로 두산중공업은 매출의 13~15%가 원전 설비·제작·유지·보수 사업에서 발생했는데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타격을 받아 왔다.

하지만 한·미 정상회담 이후 원전 수출 협력으로 정책 변화 기류가 감지되면서 건설업계는 내색 없이 ‘쾌재’를 외치고 있다. 정부의 눈치를 보며 4년간 진행이 어려웠던 원전 수출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설계 분야에 기술력이 있고 한국은 시공이나 관리 분야에 강점이 있다”며 “한·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막혔던 원천 수출 통로가 다시 뚫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형 원전 프로젝트는 다른 해외 건설 사업과 달리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국가 간 경쟁이다. 한국 역시 한수원을 중심으로 팀코리아를 구축해 입찰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 등이 주요 경쟁 상대다. 미국과 한국이 손잡으면 중국 등 다른 경쟁 국가보다 수주전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체코 등 현재 수주 경쟁이 진행 중인 원전 프로젝트는 당장 한·미 협력에 따른 결과물을 얻을 수 없겠지만 향후 발주될 사업에서는 분명한 시너지가 나타날 것으로 관측된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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