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교수도 잡았다..국정원은 산업스파이와 전쟁중

김성훈,김영선 2021. 6. 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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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전쟁 60년, 정보기관의 명과 암]
② 가속화하는 정보전
5년간 국내 산업기술 106건 해외 유출


#환경플랜트 기업에 다니던 연구차장 A씨는 대기오염방지 설비 기술과 영업 기록을 중국에 넘기는 조건으로 중국 측으로부터 계약금 1800만원을 받았다. 그가 반출하려던 자료는 중국보다 기술 수준이 10년가량 앞선 환경 분야 핵심기술이었다. A씨는 자신이 재직했던 업체는 물론 관계사의 자료까지 몽땅 USB와 외장형 하드디스크에 담아 중국에 전달하려다가 국정원에 덜미가 잡혔다. 피해 업체들은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어서 이들이 갖고 있던 핵심기술이 유출됐다면 기업의 존립까지 위태로워질 뻔한 순간이었다.

첨단·과학기술이 국력을 가르는 잣대가 되면서 국정원의 안보 임무는 ‘반공’을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기술전(戰)으로 확대됐다. 과거 휴대전화와 반도체 등의 핵심기술을 국내로 이전하는 데 일조했다면 이젠 국내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방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2016년 1월~2021년 4월 총 106건의 산업기술 해외유출 사례가 적발됐다. 전기전자(40건), 디스플레이(16건), 조선(14건), 자동차·정보통신·기계(각 8건) 등의 순이다. 우리가 강세를 보이는 전기전자, 반도체, 조선 등의 업종이 다른 나라 정보요원들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35건은 국가핵심기술이다. 기술·경제적 가치나 성장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 안전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말한다. 정부는 반도체와 원전 등 70여개의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고 있다.

올해 들어 4월까지 벌써 5건의 국가핵심기술 유출이 적발되는 등 유출 속도 또한 점차 빨라지고 있다. 2018년과 2019년 각각 한 해 동안 발생한 건수(5건)와 같고, 2017년(3건)은 이미 웃도는 수준이다.

피해 기업은 중소기업이 64건으로 대기업(33건)보다 2배가량 많다. 보안역량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의 피해가 크다는 진단이다. 기술유출 피해가 확인된 50개 기업의 연구개발비와 예상 매출액 등을 토대로 기술유출 시 발생할 피해액을 추산하면 약 20조2114억원에 달한다고 국정원은 전했다.


산업유출 사건 대다수는 중국과 연계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최근 전문평가기관과 학계·업계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한·중 간 기술격차는 조선 5.3년, 반도체 5년, 2차 전지 2~4년, 디스플레이 2년, 자동차 1년 미만으로 분석됐다. 중국은 이 격차를 단시간에 따라잡기 위해 각국 경쟁업체의 기술을 무분별하게 흡수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고급 인재를 유치해 과학 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중국의 ‘천인계획’도 실상은 각국 유수의 인재들이 기술을 빼 오도록 하는 것이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우리나라도 그 피해국 중 하나다.

국내 자율주행차 핵심기술의 권위자로 알려진 카이스트(KAIST) 교수 B씨는 2017년 1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천인계획에 참여해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국정원은 천인계획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하던 중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했고, 방첩 네트워크와 빅데이터 등 첨단 조사 기법을 동원해 이 교수를 추적했다.

그 결과 B 교수는 중국 정부로부터 연구비 등을 제공받으며 카이스트가 보유한 자율주행차량 센서 ‘라이다(LIDAR)’ 관련 연구 자료를 중국 소재 대학 연구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카이스트에 천인계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 카이스트 제자 6명도 천인계획 프로젝트에 동원했다. B 교수는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바다 위를 1m 정도 떠서 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는 선박 ‘위그선’의 기술이 말레이시아로 이전될 뻔한 사건도 국정원 첩보에 기반한 것이다. 위그선은 국내 업체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국가핵심기술인데,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임직원들이 퇴사한 후 개발 실험 데이터와 설계도면, 제조공장 라인 배치도 등 영업기밀을 통째로 말레이시아에 무단 반출하려다가 적발됐다.

최근엔 수법이 고도화돼 유출 경로가 다양해지고, 추적을 피할 수 있는 ‘다크웹’을 사용하기도 한다. ‘전직 금지 약정’을 피하기 위해 직접 채용이 아닌 자문·연구용역 형식으로 위장하거나, 기술탈취 목적으로 기업 인수·합병(M&A)까지 하는 등 교묘한 수법으로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국정원은 2003년 10월 산업기술 보안 전담 조직인 ‘산업기밀보호센터’를 발족시켜 조직과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24시간 상시대응 체제를 구축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조선, 철강, 생명공학 등 핵심산업에 대해선 2018년 7월 민·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공동대처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업무가 늘어나면서 기술탈취를 노리는 해킹 시도가 확산됨에 따라 보안이 취약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해킹메일 대응훈련과 보안진단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동안 공공기관에 한정했던 사이버위협 정보 제공 범위도 민간기업까지 확대해 일선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코로나19로 주요 타깃이 되고 있는 제약·바이오 분야도 필요한 경우 국정원으로부터 사이버위협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기술유출 대응을 다각화하기 위해 국정원 각 지부의 역할도 강화하고 있다. 드론 통합 플랫폼 구축(경남), 핵심연구기관 기술유출 방지(대전), 백신 위탁생산 공장 보안관리(대구) 등 지역 특성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국정원은 전했다.

김성훈 김영선 기자 hun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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